1. 기본 개념의 차이
가. 채무불이행
채무불이행은 이미 존재하는 계약관계나 법률관계를 전제로, 채무자가 그 채무의 내용에 따른 이행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민법 제390조). 즉, 적법하게 성립한 채권·채무관계에서 채무자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경우입니다.
예시:
- A가 B에게 자동차를 1,000만 원에 팔기로 계약했는데, A가 약속한 날짜에 자동차를 인도하지 않은 경우
- 임차인이 월세를 약정한 날짜에 지급하지 않은 경우
- 공사업자가 계약에서 정한 품질기준을 지키지 않고 부실하게 공사한 경우
나. 불법행위
불법행위는 특별한 계약관계가 없는 일반인 사이에서 고의 또는 과실로 위법하게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민법 제750조). 즉, 아무런 사전 관계 없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입니다.
예시:
- 운전 중 부주의로 다른 차량을 충돌하여 손해를 입힌 경우
-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인터넷에 게시한 경우
- 공사장에서 떨어진 자재가 지나가던 행인을 다치게 한 경우
2. 주요 차이점 비교
가. 법률관계의 전제
채무불이행: 계약 등 기존의 채권·채무관계가 반드시 존재해야 합니다. 특정인 사이의 구체적·특수적 관계에서 발생합니다.
불법행위: 사전에 아무런 법률관계가 없어도 성립합니다. 일반인 상호간에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시로 비교:
- 채무불이행: 병원과 환자 사이에 진료계약이 체결된 후, 의사가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 환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 불법행위: 아무런 관계가 없던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갑자기 폭행을 당한 경우
나. 책임의 근거
채무불이행: 계약상 약속한 의무를 위반한 것이 책임의 근거입니다. 신뢰관계 위반이 핵심입니다.
불법행위: 법이 일반적으로 금지하는 행위를 한 것이 책임의 근거입니다. 사회질서 위반이 핵심입니다.
다. 입증책임
채무불이행: 채권자는 채무의 존재와 불이행 사실만 입증하면 됩니다. 채무자가 자신에게 귀책사유(고의·과실)가 없음을 증명해야 면책됩니다 (민법 제390조 단서).
불법행위: 피해자가 가해자의 고의·과실, 위법행위, 손해 발생, 인과관계를 모두 입증해야 합니다 (민법 제750조).
예시로 비교:
- 채무불이행: 물품 배송계약에서 물품이 파손되어 도착한 경우, 수령인은 파손 사실만 입증하면 되고, 배송업체가 자신의 무과실을 증명해야 합니다
- 불법행위: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식중독에 걸린 경우, 피해자가 식당의 과실, 음식과 식중독 사이의 인과관계 등을 모두 증명해야 합니다
라. 손해배상의 범위
채무불이행: 통상손해와 특별손해로 구분되며, 특별손해는 채무자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만 배상책임이 있습니다 (민법 제393조).
불법행위: 민법 제393조가 준용되어 기본적으로는 같지만, 위자료 청구가 더 폭넓게 인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민법 제763조).
마. 소멸시효
채무불이행: 일반 채권의 소멸시효인 10년이 적용됩니다 (민법 제162조).
불법행위: 피해자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입니다 (민법 제766조).
예시로 비교:
- 채무불이행: 2020년에 체결한 공사계약의 하자에 대해 2030년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 불법행위: 2020년에 발생한 교통사고는 사고 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청구해야 합니다
3. 경합 관계
가. 청구권 경합
하나의 행위가 채무불이행의 요건과 불법행위의 요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경우, 두 개의 손해배상청구권이 경합하여 발생하고, 권리자는 둘 중 어느 것이든 선택하여 행사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21. 6. 24. 선고 2016다210474 판결).
예시: 의사가 수술 중 과실로 환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 채무불이행: 진료계약상 주의의무 위반
- 불법행위: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
이 경우 환자는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 중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선택하여 청구할 수 있습니다.
나. 선택의 실익
채무불이행을 선택하는 경우:
- 입증책임이 가벼움 (채무자가 무과실 증명)
- 소멸시효가 김 (10년)
불법행위를 선택하는 경우:
- 위자료 청구가 용이함
- 공동불법행위자에 대한 연대책임 추궁 가능 (민법 제760조)
4. 실무상 구별의 중요성
가. 상계 제한
고의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을 수동채권으로 하는 상계는 금지됩니다 (민법 제496조). 그러나 고의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에는 원칙적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다만, 고의에 의한 행위가 불법행위와 채무불이행을 동시에 구성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496조가 유추적용되어 채무자는 고의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을 수동채권으로 하여 상계하더라도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습니다 (대법원 2017. 2. 15. 선고 2014다19776, 19783 판결).
나. 법인의 책임
법인의 대표기관이 법인과 계약을 체결한 거래상대방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 채무불이행: 법인만 책임
- 불법행위: 대표기관 개인도 책임을 질 수 있음 (단, 사회상규에 반하는 위법한 행위로 인정되어야 함)
5. 정리
채무불이행과 불법행위는 모두 타인에게 손해를 야기한 위법행위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채무불이행은 특정인 사이의 신뢰관계 위반이고, 불법행위는 일반인에 대한 법적 의무 위반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실무에서는 사안에 따라 어느 청구권을 행사할 것인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며, 경합하는 경우에는 각각의 요건과 효과를 별개로 판단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