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제·해지와 취소의 개념 차이
가. 해제(解除)
해제는 계약 또는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당사자의 일방이나 쌍방이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 계약의 효력을 소급적으로 소멸시키는 것을 말합니다(민법 제543조). 즉, 계약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과 같은 상태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해제권이 행사되면 계약은 소급적으로 효력을 잃게 되고, 이미 이행된 부분에 대해서는 원상회복의무가 발생합니다(민법 제548조 제1항). 또한 해제는 손해배상의 청구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민법 제551조).
나. 해지(解止)
해지는 당사자 일방이 계약을 해지한 때에는 계약은 장래에 대하여 그 효력을 잃는 것을 말합니다(민법 제550조). 해제와 달리 소급효가 없어 이미 이행된 부분은 그대로 유효하게 남습니다.
해지는 주로 임대차계약, 고용계약, 위임계약과 같은 계속적 계약관계를 종료시키는 데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임대차계약의 경우 기간의 약정이 없는 때에는 당사자는 언제든지 계약해지의 통고를 할 수 있으며, 상대방이 통고를 받은 날로부터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해지의 효력이 생깁니다(민법 제635조).
다. 취소(取消)
취소는 일단 유효하게 성립한 법률행위의 효력을 취소권자의 일방적인 의사표시에 의하여 소급적으로 소멸시키는 단독행위를 말합니다. 취소된 법률행위는 처음부터 무효인 것으로 봅니다(민법 제141조)
취소권은 제한능력자, 착오로 인하거나 사기·강박에 의하여 의사표시를 한 자, 그의 대리인 또는 승계인만이 행사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140조).
해제·해지와 취소의 주요 차이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발생원인
- 해제: 계약의 채무불이행(법정해제) 또는 계약에서 정한 해제사유의 발생(약정해제)
- 취소: 행위능력 제한, 착오, 사기·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2) 적용범위
- 해제: 주로 계약에 적용
- 취소: 계약뿐만 아니라 단독행위를 포함한 모든 법률행위에 적용
3) 효과
- 해제: 원상회복의무 발생(민법 제548조)
- 취소: 부당이득반환의무 발생(민법 제741조)
2. 계약불이행 시 바로 해제·해지할 수 있는지 여부
가. 원칙: 최고 필요
상대방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바로 해제·해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민법 제544조는 “당사자 일방이 그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상대방은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그 이행을 최고하고 그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아니한 때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채무불이행이 있는 경우에도 상대방에게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이행을 최고(催告)하고, 그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 비로소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나. 예외: 최고 없이 해제 가능한 경우
다만,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최고 없이 바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1) 채무자가 미리 이행하지 않을 의사를 표시한 경우
민법 제544조 단서는 “채무자가 미리 이행하지 아니할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최고를 요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채무자가 명시적으로 이행거절의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최고를 하더라도 무의미하므로 바로 해제할 수 있습니다.
2) 정기행위의 경우
계약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에 의하여 일정한 시일 또는 일정한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아니하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경우에 당사자 일방이 그 시기에 이행하지 아니한 때에는 상대방은 최고를 하지 아니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545조)
예를 들어, 결혼식 피로연 음식 제공 계약, 특정 행사를 위한 물품 공급 계약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3) 이행불능의 경우
채무의 이행이 불가능하게 된 경우에는 최고를 하더라도 의미가 없으므로 최고 없이 바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546조)
3. 계약불이행 시 계약 종료 방법의 상세 절차
가. 법정해제의 경우
1) 이행지체를 이유로 한 해제
가) 요건
- 채무자의 이행지체가 있을 것
-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이행을 최고할 것
- 그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않을 것
나) 절차
① 이행최고: 상대방에게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이행을 최고합니다. “상당한 기간”은 채무의 내용, 이행의 난이도, 당사자의 사정 등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정해야 합니다.
② 기간 경과 확인: 최고한 기간이 경과하였는지 확인합니다.
③ 해제의 의사표시: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 계약을 해제합니다(민법 제543조 제1항). 해제의 의사표시는 철회하지 못합니다(민법 제543조 제2항).
다) 주의사항
쌍무계약의 경우에는 채권자가 자신의 반대급부를 적법하게 이행제공하지 않는 한 채무자가 이행지체에 빠지지 않으므로 이행지체를 이유로 해제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일방 당사자가 하여야 할 제공의 정도는 그 시기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게 합리적으로 정하여야 합니다.
2) 정기행위 불이행을 이유로 한 해제
정기행위의 경우에는 이행기가 경과하면 최고 없이 바로 해제의 의사표시를 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545조).
3) 이행불능을 이유로 한 해제
이행불능의 경우에도 최고 없이 바로 해제의 의사표시를 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546조).
나. 약정해제의 경우
계약에서 해제권을 유보하거나 해제사유를 정한 경우에는 그 약정에 따라 해제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해제는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 하며(민법 제543조 제1항), 최고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30조의2는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의무 불이행, 계약불이행으로 인한 지연배상금이 계약금액의 100분의 10 이상인 경우 등을 해제·해지 사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 합의해제·합의해지의 경우
1) 의의
합의해제 또는 해제계약은 해제권의 유무를 불문하고 계약당사자 쌍방이 합의에 의하여 기존 계약의 효력을 소멸시켜 당초부터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던 것과 같은 상태로 복귀시킬 것을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계약입니다(대법원 2011. 2. 10. 선고 2010다77385 판결).
2) 요건
계약이 합의해제되기 위하여는 계약의 성립과 마찬가지로 계약의 청약과 승낙이라는 서로 대립하는 의사표시가 합치될 것(합의)을 요건으로 하며, 이와 같은 합의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쌍방당사자의 표시행위에 나타난 의사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일치하여야 합니다(대법원 2011. 2. 10. 선고 2010다77385 판결, 대법원 1992. 6. 23. 선고 92다4130,92다4147 판결).
계약의 합의해제는 명시적으로뿐만 아니라 당사자 쌍방의 묵시적인 합의에 의하여도 할 수 있으나, 묵시적인 합의해제를 한 것으로 인정되려면 계약이 체결되어 그 일부가 이행된 상태에서 당사자 쌍방이 장기간에 걸쳐 나머지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함으로써 이를 방치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당사자 쌍방에게 계약을 실현할 의사가 없거나 계약을 포기할 의사가 있다고 볼 수 있을 정도에 이르러야 합니다(대법원 2011. 2. 10. 선고 2010다77385 판결).
물론 계약을 합의해제할 때에 원상회복에 관하여 반드시 약정을 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매계약을 합의해제하는 경우에 이미 지급된 계약금, 중도금의 반환 및 손해배상금에 관하여는 아무런 약정도 하지 아니한 채 매매계약을 해제하기만 하는 것은 우리의 경험칙에 비추어 이례에 속하는 일입니다(대전지방법원 2017. 5. 25. 선고 2015나103331 판결, 금동희, 『민법의 체계』, 박영사(2023년), 473-474면).
3) 효력
합의해제·해지의 요건과 효력은 그 합의의 내용에 의하여 결정되고 이에는 해제·해지에 관한 민법 제543조 이하의 규정은 적용되지 않습니다(대법원 1997. 11. 14. 선고 97다6193 판결).
라. 계속적 계약의 해지
1) 임대차계약의 해지
가) 기간의 약정이 없는 경우
임대차기간의 약정이 없는 때에는 당사자는 언제든지 계약해지의 통고를 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635조 제1항). 상대방이 통고를 받은 날로부터 다음의 기간이 경과하면 해지의 효력이 생깁니다:
- 토지, 건물 기타 공작물: 임대인이 해지를 통고한 경우 6월, 임차인이 해지를 통고한 경우 1월
- 동산: 5일
나) 기간의 약정이 있는 경우
임대차기간의 약정이 있는 경우에도 당사자 일방 또는 쌍방이 그 기간 내에 해지할 권리를 보류한 때에는 위 규정을 준용합니다(민법 제636조).
다) 차임연체를 이유로 한 해지
건물 기타 공작물의 임대차에는 임차인의 차임연체액이 2기의 차임액에 달하는 때에는 임대인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640조).
2) 위임계약의 해지
위임계약은 각 당사자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689조 제1항). 다만, 당사자 일방이 부득이한 사유 없이 상대방의 불리한 시기에 계약을 해지한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합니다(민법 제689조 제2항).
4. 주의사항
가. 주된 채무와 부수적 채무의 구별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려면, 당해 채무가 계약의 목적 달성에 있어 필요불가결하고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면 계약의 목적이 달성되지 아니하여 채권자가 그 계약을 체결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라고 여겨질 정도의 주된 채무이어야 하고, 그렇지 아니한 부수적 채무를 불이행한 데에 지나지 아니한 경우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없습니다(대법원 2005. 11. 25. 선고 2005다53705, 53712 판결).
계약상의 의무 가운데 주된 채무와 부수적 채무를 구별함에 있어서는 급부의 독립된 가치와는 관계없이 계약을 체결할 때 표명되었거나 그 당시 상황으로 보아 분명하게 객관적으로 나타난 당사자의 합리적 의사에 의하여 결정하되, 계약의 내용·목적·불이행의 결과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야 합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7. 12. 선고 2022가단5394338 판결).
나. 경미한 불이행의 경우
급부의무에서 사소한 불이행이 있더라도 신의칙상 해제가 허용되지 않습니다.객관적으로 보아 채무불이행의 내용이나 정도가 경미한 경우에는 해제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다. 해제의 의사표시
해제는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 하며(민법 제543조 제1항), 일단 한 해제의 의사표시는 철회하지 못합니다(민법 제543조 제2항). 따라서 해제의 의사표시를 하기 전에 신중하게 검토하여야 합니다.
라. 손해배상청구
계약의 해지 또는 해제는 손해배상의 청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합니다(민법 제551조). 따라서 계약을 해제·해지하더라도 별도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5. 소결
계약 상대방이 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바로 해제·해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원칙적으로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이행을 최고하고 그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 비로소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다만, 채무자가 미리 이행하지 않을 의사를 표시한 경우, 정기행위의 경우, 이행불능의 경우에는 최고 없이 바로 해제할 수 있습니다.
해제는 계약의 효력을 소급적으로 소멸시키는 것이고, 해지는 장래에 대하여만 효력을 잃게 하는 것이며, 취소는 행위능력 제한, 착오, 사기·강박 등을 이유로 법률행위의 효력을 소급적으로 소멸시키는 것으로 각각 그 개념과 요건, 효과가 다릅니다.
계약불이행 시 계약을 종료시키고자 하는 경우에는 해당 계약의 성질, 불이행의 내용과 정도, 계약의 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적절한 방법을 선택하여야 하며, 특히 주된 채무의 불이행인지 부수적 채무의 불이행인지, 경미한 불이행인지 여부 등을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