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현장에서 블랙박스 영상 제출 요청을 받았을 때, 많은 분들이 혼란스러워하십니다. 요청 주체에 따라 법적 의무가 완전히 다르고, 자칫 잘못 대응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정리해드리겠습니다.
1. 요청 주체별 제출 의무
가. 경찰의 요청
1) 임의제출 요청 단계
경찰이 “블랙박스 영상 좀 보여주세요”라고 요청하는 경우, 이는 임의제출 요청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제출 의무가 없습니다. 형사소송법상 임의수사의 일환이므로,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다만, 임의제출에 응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권장됩니다. 왜냐하면:
- 사고 원인 규명에 도움이 되고
- 본인에게 유리한 증거가 될 수 있으며
- 거부 시 오히려 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압수·수색영장에 의한 요청
경찰이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제출을 요구하는 경우, 반드시 제출해야 합니다. 이는 강제처분이므로 거부하면 형사처벌(공무집행방해죄 등)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영장 없이 긴급하게 압수한 경우에도 사후에 영장을 발부받아야 적법한 증거가 됩니다(형사소송법 제216조 제3항). 대법원 2021. 11. 18. 선고 2016도348 판결은 “정보저장매체에 대하여는 저장된 정보의 범위를 정하여 출력하거나 복제하여 제출받아야 하고, 이러한 방법이 불가능하거나 압수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현저히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때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정보저장매체 자체나 복제본을 임의제출받아 압수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나. 사고 당사자의 요청
사고의 상대방 당사자가 블랙박스 영상을 요청하는 경우, 제출 의무가 전혀 없습니다. 이는 순전히 사적인 요청이므로, 거부해도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실무적으로는:
- 본인에게 유리한 영상이라면 제공하는 것이 분쟁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불리한 영상이라면 굳이 제공할 필요가 없습니다
- 상대방은 법원을 통해 문서제출명령이나 증거보전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다. 보험회사의 요청
보험회사가 블랙박스 영상을 요청하는 경우도 제출 의무가 없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상황을 고려해야 합니다:
1) 본인 보험회사의 요청
본인이 가입한 보험회사가 요청하는 경우:
- 보험금 지급 심사를 위해 필요한 자료입니다
- 보험약관상 협력의무가 있을 수 있으나, 강제력은 없습니다
- 제출하지 않으면 보험금 지급이 지연되거나 불리한 판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상대방 보험회사의 요청
상대방 보험회사의 요청은 사실상 사적 요청과 동일하므로, 거부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제12조의4는 보험회사가 경찰관서에 교통사고 관련 조사기록의 열람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경찰이 작성한 공식 기록에 한정되며, 개인 소유의 블랙박스 영상까지 포함하지 않습니다.
2. 블랙박스 영상 임의 삭제 시 법적 책임
가. 증거인멸죄의 성립 여부
1) 증거인멸죄의 요건
형법 제155조 제1항은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하거나 위조 또는 변조한 증거를 사용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합니다.
증거인멸죄가 성립하려면:
-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일 것
-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할 것
- 고의가 있을 것
이 필요합니다.
2) 본인 사건의 경우
본인이 피의자·피고인인 사건의 증거를 삭제하는 것은 증거인멸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형법 제155조 제4항은 “친족 또는 동거의 가족이 본인을 위하여 본조의 죄를 범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본인을 위한 증거인멸은 처벌하지 않는다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인이 당사자인 교통사고의 블랙박스 영상을 삭제하더라도 증거인멸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3) 타인 사건의 경우
다만,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면 증거인멸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 목격자로서 타인의 교통사고를 촬영한 블랙박스 영상을 삭제하는 경우
-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은 후 증거 제출을 요구받았음에도 고의로 삭제하는 경우
이러한 경우 증거인멸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나.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
형사상 증거인멸죄가 성립하지 않더라도,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1) 고의적 증거 인멸의 경우
본인에게 불리한 증거를 고의로 삭제하여 상대방의 입증을 방해한 경우:
- 법원은 증거인멸의 사실을 불리하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 상대방의 주장을 사실로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 손해배상 책임이 가중될 수 있습니다
의정부지방법원 2023. 9. 6. 선고 2022구단5166 판결은 “원고는 사건 당일 촬영된 블랙박스 영상을 전부 제출하지 아니하고 출발 당시 및 정차 후의 영상 몇 개만을 제출하였다. 각 영상은 녹화 시간이 몇 초 정도에 불과하여 해당 영상만으로는 원고 차량의 운전자가 대리운전기사였는지 술을 마신 원고였는지 추측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 원고는 ‘사건 당일의 블랙박스 영상을 노트북 바탕화면에 복사해 놓고 SD카드를 다시 차량 블랙박스에 꽂아 두는 바람에, SD카드에 사건 당일 영상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SD카드에 공교롭게도 출발 직후 및 정차 후의 영상만이 남아있다는 것이 매우 의심스럽다. 게다가 원고의 노트북 하드디스크에 대한 압수수색 결과, 해당 노트북에서 원고가 복사해 놓았다는 파일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블랙박스 영상 전부를 제출하지 못한 경위에 관한 원고의 주장은 거짓으로 보이고, 원고는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을 삭제하는 방법으로 임의로 영상을 편집한 다음 이를 제출한 것으로 강하게 추정된다”고 판시하여, 증거 인멸 시도를 매우 불리하게 평가하였습니다.
2) 과실에 의한 삭제의 경우
단순히 블랙박스 용량 부족으로 자동 삭제되거나, 실수로 포맷한 경우에는 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다만, 사고 발생을 인지한 후에는 증거 보존 의무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다. 보험 관련 불이익
보험약관상 협력의무 위반으로 다음과 같은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보험금 지급 거부 또는 감액
- 향후 보험료 인상
- 보험 계약 해지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 3. 8. 선고 2014가단5354441 판결은 음주운전 면책약관 사건에서 “갑이 사고 후 현장을 이탈하는 바람에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하지 못하였고 위드마크공식을 적용하는 것도 불가능하여 관련 형사사건에서 불기소처분을 받았으나, 사고에 이르기까지 갑의 행적, 사고 운행 전 사고차량의 블랙박스에 녹취된 갑과 일행 간의 대화 내용, 갑의 음성, 호흡수 등에 관한 감정인의 감정 결과” 등을 종합하여 음주운전 사실을 인정하고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였습니다.
3. 실무상 권고사항
가. 사고 발생 즉시 해야 할 일
1) 블랙박스 영상 즉시 백업
- 사고 발생 즉시 블랙박스 SD카드를 빼서 별도 보관하거나
- 스마트폰으로 블랙박스 화면을 촬영하거나
- 블랙박스 앱을 통해 영상을 다운로드하여 보관합니다
이는 자동 덮어쓰기로 인한 영상 손실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2) 영상 내용 확인
본인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 확인합니다. 이에 따라 제출 여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나. 경찰 조사 시
1) 임의제출 요청의 경우
- 본인에게 유리한 영상이라면 적극 제출합니다
- 불리한 영상이라면 “변호사와 상담 후 제출하겠다”고 답변할 수 있습니다
- 다만, 거부 시 의심을 받을 수 있으므로 신중히 판단해야 합니다
2) 영장에 의한 요청의 경우
- 영장을 제시받으면 반드시 제출해야 합니다
- 영장의 범위(압수 대상, 기간 등)를 확인합니다
- 원본이 아닌 사본 제출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다. 보험회사 대응 시
1) 본인 보험회사
- 보험금 청구를 위해서는 협조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 다만, 명백히 불리한 영상이라면 변호사와 상담 후 결정합니다
2) 상대방 보험회사
- 제출 의무가 없으므로, 본인에게 유리한 경우에만 제출합니다
- 불리한 경우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제공할 수 없다”고 답변할 수 있습니다
라. 영상 보존 및 관리
1) 장기 보관
- 사고 관련 영상은 최소 3년 이상 보관합니다(민법상 불법행위 소멸시효 3년)
- 인신사고의 경우 10년 보관을 권장합니다
2) 원본 보존
- 원본은 절대 삭제하지 않습니다
- 제출이 필요한 경우 사본을 제출합니다
- 원본 SD카드는 별도 보관합니다
3) 편집 금지
- 영상을 편집하거나 일부만 제출하면 증거 인멸로 의심받을 수 있습니다
- 전체 영상을 그대로 보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