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에서 “합의하면 끝나는 거 아니에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범죄 유형에 따라 합의의 효력이 완전히 다릅니다. 오늘은 반의사불벌죄, 친고죄, 비친고죄의 차이와 실무적 의미를 상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1. 세 가지 개념의 핵심 차이
가. 친고죄(親告罪)
개념: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범죄입니다 (형사소송법 제232조 제1항).
핵심 특징:
- 고소가 없으면 아예 기소 자체가 불가능
- 고소 취소 시 공소기각 판결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5호)
- 제1심 판결 선고 전까지만 고소 취소 가능
- 고소 취소 후 재고소 불가능
대표적 예시:
나.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
개념: (일단 수사.기소는 가능하나)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범죄입니다 (형사소송법 제232조 제3항).
핵심 특징:
- 고소 없이도 수사·기소 가능 (수사의 단서일 뿐)
-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표시가 있으면 공소기각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6호)
- 제1심 판결 선고 전까지만 처벌불원 의사표시 가능
- 처벌불원 의사 철회 후 재표시 불가능
대표적 예시:
- 폭행죄 (형법 제260조 제1항, 제3항)
- 협박죄 (형법 제283조 제1항, 제3항)
- 과실치상죄 (형법 제266조 제1항, 제2항)
- 명예훼손죄 (형법 제307조, 제312조 제2항)
- 스토킹범죄 (구 스토킹처벌법 제18조 제3항)
다. 비친고죄(非親告罪)
개념: 피해자의 고소나 의사와 무관하게 검사가 직권으로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범죄입니다.
핵심 특징:
-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수사·기소 진행
- 합의 여부는 양형 참작사유일 뿐
- 피해자가 처벌불원해도 기소 가능
대표적 예시:
- 살인죄, 강도죄, 강간죄
- 사기죄, 횡령죄, 배임죄
- 상습폭행죄 (형법 제264조) – 단순폭행죄와 달리 비반의사불벌죄
- 특수폭행죄 등 가중처벌 대상 범죄
- 기타 대부분의 형사범죄
2. 실무에서 자주 발생하는 혼동 사례
가. “폭행죄는 합의하면 끝”이라는 오해
사례: 甲이 乙을 1회 폭행 → 합의 완료
- 단순폭행죄: 반의사불벌죄이므로 처벌불원 시 공소기각
- BUT, 상습폭행죄: 비반의사불벌죄이므로 합의해도 기소 가능
나. “명예훼손은 반의사불벌죄니까 합의로 처벌불원 의사 밝히면 끝”이라는 오해
사례: 甲이 인터넷에 乙의 허위사실 게시
- 형법상 명예훼손죄: 반의사불벌죄 (형법 제312조 제2항)
-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 비친고죄 (정통망법 제70조)
같은 ‘명예훼손’이라도 적용 법조에 따라 결론이 달라집니다.
다. “제1심에서 합의 못했으니 항소심에서 하면 되지”라는 오해
중요: 친고죄의 고소 취소와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 의사표시는 제1심 판결 선고 전까지만 가능합니다 (형사소송법 제232조 제1항, 제3항).
대법원은 “제1심 판결 선고 후에 비로소 고소가 취소되거나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표시가 철회된 경우에는 그 취소나 철회의 효력이 없어 공소기각의 재판을 할 수 없다”고 명확히 판시했습니다 (대법원 1985. 2. 8. 선고 84도2682 판결, 대법원 2008. 3. 27. 선고 2007도10619 판결).
실무 사례: 서울고등법원 2023. 3. 30. 선고 2023노241 판결에서, 원심판결 선고 후 피해자가 고소를 취소하고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했으나, 법원은 “제1심 판결 선고 후에 이루어진 고소 취소 및 처벌불원 의사표시만으로는 공소기각 판결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3. 실무적으로 꼭 알아야 할 포인트
가. 합의 타이밍이 결정적
제1심 판결 선고 전:
- 친고죄: 고소 취소 → 공소기각
- 반의사불벌죄: 처벌불원 → 공소기각
- 비친고죄: 합의 → 양형 참작
제1심 판결 선고 후:
- 친고죄/반의사불벌죄: 고소 취소·처벌불원 효력 없음
- 비친고죄: 여전히 양형 참작 가능
나. 공범 관계에서의 특수성
친고죄의 고소불가분 원칙: 공범 중 1인에 대한 고소 또는 고소 취소는 다른 공범에게도 효력이 미칩니다 (형사소송법 제233조).
반의사불벌죄: 고소불가분 원칙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형사소송법 제233조에 고소와 고소취소의 불가분에 관한 규정을 반의사불벌죄에 준용하는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친고죄와 달리 공범자간에 불가분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고자 함”이라고 판시했습니다.
실무 예시: 甲과 乙이 공동으로 丙을 폭행한 경우
- 丙이 甲에 대해서만 처벌불원 → 甲만 공소기각, 乙은 기소 가능
- 명예훼손죄(친고죄)라면 → 甲에 대한 고소 취소가 乙에게도 효력
다. 포괄일죄와 친고죄/반의사불벌죄
중요 원칙: 포괄일죄 중 일부가 친고죄이고 일부가 비친고죄인 경우, 비친고죄 부분만 기소 가능합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4. 10. 24. 선고 2014노2379 판결은 “포괄일죄의 일부가 비친고죄이고 나머지가 친고죄인데 친고죄 부분에 적법한 고소가 없는 경우, 검사가 비친고죄 부분에 대하여만 공소제기를 하였다고 하여 공소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라. 군형법상 특수성
군사기지 내 폭행: 군형법 제60조의6에 따라 군사기지·군사시설 내에서 군인 등을 폭행한 경우 형법 제260조 제3항(반의사불벌죄 규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서울고등법원 2023. 3. 30. 선고 2023노241 판결에서 “군사기지 내에서 발생한 폭행은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표시에도 불구하고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마. 특별법상 주의사항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업무상과실치상죄는 반의사불벌죄이나, 특정 사유(음주운전, 무면허운전 등)에 해당하면 반의사불벌죄에서 제외됩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 제2항).
근로기준법 위반: 임금체불은 반의사불벌죄입니다 (근로기준법 제109조 제2항). 제1심 판결 선고 전 합의하면 공소기각되지만, 판결 선고 후 합의는 효력이 없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3. 28. 선고 2022노1248 판결).
4. 결론: 합의가 ‘전부’가 아닌 이유
형사사건에서 합의는 중요하지만, 범죄 유형에 따라 그 효력이 완전히 다릅니다.
- 친고죄/반의사불벌죄: 제1심 판결 선고 전 합의 → 공소기각 가능
- 비친고죄: 합의 여부와 무관하게 기소 가능, 양형 참작 사유일 뿐
- 타이밍: 제1심 판결 선고 후 합의는 친고죄/반의사불벌죄에서도 효력 없음
실무에서는 사건 초기에 범죄 유형을 정확히 파악하고, 합의 가능 시점을 놓치지 않는 것이 핵심입니다. 특히 제1심 판결 선고일을 반드시 확인하고, 그 전에 합의를 완료해야 공소기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