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B은행으로부터 사업자금 5억 원을 대출받으면서, 자신이 C은행에 보유하고 있는 정기예금 2억 원에 대해 B은행 앞으로 근질권을 설정해 주었습니다. 이를 위해 A씨는 B은행과 근질권설정계약을 체결하고, C은행으로부터 확정일자 있는 승낙서를 받았습니다.
이후 A씨가 B은행에 대한 대출원리금을 제때 상환하지 못하자, B은행은 C은행에 대해 A씨의 예금채권 2억 원을 직접 청구하여 자신의 대출채권에 우선 변제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 질권의 기본 개념
가. 질권이란?
질권(質權)은 채권자가 채무담보를 위해 채무자 또는 제3자로부터 물건이나 권리를 제공받아 이를 점유하고, 채무가 변제되지 않을 경우 그 물건이나 권리로부터 다른 채권자보다 우선하여 변제받을 수 있는 담보물권입니다 (민법 제329조).
쉬운 예시: 친구에게 100만 원을 빌려주면서 친구의 노트북을 맡아두는 것과 비슷합니다. 친구가 돈을 갚지 않으면 노트북을 팔아서 우선적으로 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 질권의 종류
질권은 그 목적물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1) 동산질권
동산(움직일 수 있는 물건)을 목적으로 하는 질권입니다 (민법 제329조).
예시: 귀금속, 자동차, 기계설비 등
2) 권리질권
재산권을 목적으로 하는 질권입니다 (민법 제345조). 다만, 부동산의 사용·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권리(지상권, 전세권 등)는 질권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예시: 예금채권, 주식, 채권, 보험금청구권 등
2. 권리질권의 설정방법
가. 기본 원칙
권리질권의 설정은 법률에 다른 규정이 없으면 그 권리의 양도에 관한 방법에 의해야 합니다 (민법 제346조).
나. 채권질권의 설정
1) 채권증서가 있는 경우
채권을 질권의 목적으로 하는 경우 채권증서가 있는 때에는 그 증서를 질권자에게 교부함으로써 효력이 생깁니다 (민법 제347조).
예시: 회사채권이나 어음 등 증서가 있는 경우
2) 지명채권의 경우
예금채권과 같은 지명채권을 목적으로 한 질권의 설정은 설정자가 제3채무자(예: 은행)에게 질권설정 사실을 통지하거나 제3채무자가 이를 승낙하지 않으면 제3채무자 기타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합니다 (민법 제349조 제1항).
→ 예: 내가 A은행에 1,000만 원 예금이 있는데, 이 예금을 담보로 B에게 돈을 빌려주며 “예금에 질권 설정”을 해줬다고 해도, A은행에 알려주지 않으면 은행은 그 사실을 몰라서 그냥 나에게 돈을 지급해도 책임이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확정일자 있는 증서에 의하지 않으면 채무자 이외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합니다 (민법 제349조 제2항).
→ 예: 질권 설정 사실을 적은 문서를 갖고 있더라도, 공증처럼 ‘확정일자’가 찍혀 있지 않으면 다른 제3자(다른 채권자 등)에게 “이 예금은 내 담보권이 먼저다”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실무적 의미: 예금채권에 질권을 설정할 때는 은행으로부터 확정일자 있는 승낙서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3. 근질권의 개념과 법리
가. 근질권이란?
근질권(根質權)은 질권을 설정하는 당사자들이 채무의 최고액만을 정하고 채무의 확정을 장래에 보류하여 질권을 설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민법에는 근질권에 관한 명문 규정이 없지만, 판례와 학설은 일관되게 이를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쉬운 예시: 거래처와 계속적으로 거래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채권을 담보하기 위해, 미리 담보물을 제공받아 두는 것입니다. 마치 신용카드 한도액을 정해두고 그 범위 내에서 계속 사용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나. 근질권의 특징
1) 피담보채권의 불확정성
근질권 설정 당시에는 구체적인 채권액이 확정되지 않고, 일정한 계속적 거래관계에서 발생하는 불특정 다수의 채권을 담보합니다.
예시: A은행과 B회사가 대출거래약정을 체결하면서 “향후 발생하는 모든 대출채권을 담보하기 위해” B회사의 예금채권에 최고액 10억 원의 근질권을 설정하는 경우
2) 피담보채권의 범위
대출약정에 따라 차입자가 근질권자에게 현재 및 장래에 부담하는 일체의 채무가 피담보채무의 범위가 됩니다.
3) 최고액 약정의 불요
근질권의 성립에 최고액 약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실무상으로는 최고액을 정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다. 근질권의 피담보채권 확정시기
근질권의 피담보채권이 확정되는 시기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은행이 “한도대출 전체”를 담보로 예금을 잡아두는 경우처럼, 정확히 언제 ‘담보로 묶이는 금액이 확정되는지’에 따라 다른 채권자와의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제3자 압류의 경우
근질권의 목적이 된 금전채권에 대하여 근질권자가 아닌 제3자의 압류로 강제집행절차가 개시된 경우, 근질권자가 위와 같은 강제집행이 개시된 사실을 알게 된 때에 피담보채권이 확정됩니다 (대법원 2009. 10. 15. 선고 2009다43621 판결).
→ 예: 내가 은행 예금을 담보로 잡아두고 있는데, 다른 채권자가 그 예금을 먼저 압류해서 집행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담보로 묶이는 빚의 범위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유: 제3채무자가 전부명령이나 추심명령에 따라 금원을 제3자에게 지급하거나 법원에 공탁하게 되면 금전채권이 소멸하고, 그 결과 근질권도 소멸하게 되므로, 근질권자는 강제집행절차에 참가하거나 근질권을 실행하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법원 2009. 10. 15. 선고 2009다43621 판결).
→ 예: 은행이 압류한 채권자에게 돈을 보내버리면 내 근질권이 사라지므로, 근질권자는 “나도 담보권자다”라고 강제집행에 참여해서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실무적 의미: 근질권자는 제3자의 압류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추가로 발생한 채권을 근질권의 피담보채권에 포함시킬 수 없습니다.
→ 예: 압류 사실을 알고 난 뒤 새로 발생한 이자, 연체금 등은 담보 범위에 자동으로 붙지 않으므로, 그 이후의 금액은 보호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2) 변제기 도래 여부
근질권의 피담보채권은 변제기일 도래와 상관없이 근질권자가 강제집행이 개시된 사실을 알게 된 때에 확정됩니다. 질권설정 동의확인서에 변제기가 도래해야 질권실행을 요청할 수 있다고 기재되어 있더라도, 이는 질권실행 요청 시의 요건일 뿐이며 피담보채권 확정시기와는 무관합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0. 1. 14. 선고 2019가단5008194 판결).
빚 갚을 날짜가 아직 안 와도, 다른 채권자가 예금을 압류해 집행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담보로 묶이는 금액은 그때 확정돼 더 늘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4. 예금채권 근질권의 실무
가. 설정 절차
1) 근질권설정계약 체결
질권설정자(채무자 또는 제3자)와 질권자(채권자) 사이에 근질권설정계약을 체결합니다.
2) 제3채무자의 승낙
예금이 예치된 은행(제3채무자)으로부터 확정일자 있는 승낙을 받습니다 (민법 제349조).
실무 팁: 은행의 “이의를 유보하지 않은 승낙”을 받는 것이 질권자에게 유리합니다. 이 경우 은행은 예금채권의 부존재를 이유로 질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게 됩니다 (대법원 1997. 5. 30. 선고 96다22648 판결).
3) 통장과 인장의 관리
실무상 통장은 근질권자가 점유하고, 인장은 근질권설정자가 점유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나. 질권 설정 후 입금된 금원의 처리
질권 설정 이후에 예치된 금원에 대해서도 질권의 효력이 미치는지가 문제됩니다.
1) 법리
질권 설정 이후에 이루어진 예금에 대한 채권은 지명채권으로서 일종의 장래채권이므로, 장래채권에 대한 질권 설정이 가능한지에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2) 요건
판례는 장래채권의 양도성을 인정하면서 양도의 요건으로 특정성과 발생가능성 내지 발생 개연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장래에 입금될 예금액에 대하여 질권의 효력이 미치도록 하려면:
- 질권 설정 시점에 예금채권에 관한 기본적 권리관계가 어느 정도 확정되어 있어 해당 예금채권의 특정이 가능해야 하고
- 예금액의 입금이 가까운 장래에 발생할 것임이 상당한 정도로 기대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C회사로부터 매달 25일에 고정적으로 300만 원의 용역대금을 받는 계약을 이미 체결해 두었다고 해보겠습니다. 이 경우
(1) 계약이 이미 존재하므로 장래 입금될 돈이 “어디서, 어떤 근거로” 생기는지 특정이 가능하고
(2) 매달 반복적으로 지급되는 구조이므로 “곧 발생할 것이 거의 확실한 채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장래의 입금 예정액에 대해 은행에 질권을 설정하면, 판례가 요구하는 ‘특정성’과 ‘발생 개연성’ 요건을 충족하게 됩니다.
반대로, “언젠가 누군가가 입금해 줄지도 모르는 돈”처럼 근거가 불확실한 장래 기대이익은 기본적 권리관계가 확정되지도 않았고, 언제 발생할지 예측도 어려우므로 질권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다. 질권의 실행
1) 직접청구권
질권자는 질권의 목적이 된 채권을 직접 청구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353조 제1항).
채권의 목적물이 금전인 때에는 질권자는 자기채권의 한도에서 직접 청구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353조 제2항).
예시: B은행은 A씨의 C은행에 대한 예금채권을 직접 C은행에 청구하여 자신의 대출채권에 우선 변제받을 수 있습니다.
2) 변제기 전 도래의 경우
채권의 변제기가 질권자의 채권의 변제기보다 먼저 도래한 때에는 질권자는 제3채무자에 대하여 그 변제금액의 공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질권은 그 공탁금에 존재합니다 (민법 제353조 제3항).
예를 들어 갑이 A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B에게 받을 돈(채권)을 질권으로 잡아두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B가 갑에게 갚아야 할 돈의 변제기(예: 3월 1일)가, 갑에게 A가 갚아야 할 돈의 변제기(예: 6월 1일)보다 먼저 도래했다면, 갑은 B에게 “지금 갚을 돈을 나에게 직접 주지 말고, 법원에 공탁하세요”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공탁해 둔 돈이 질권의 목적물이 되어, 갑은 자신의 채권 변제기가 되었을 때 그 공탁금에서 우선 변제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라. 질권설정자의 권리 제한
질권설정자는 질권자의 동의 없이 질권의 목적된 권리를 소멸하게 하거나 질권자의 이익을 해하는 변경을 할 수 없습니다 (민법 제352조).
여기서 “질권의 목적된 권리를 소멸하게 하는 행위”에는 면제나 상계와 같은 행위뿐만 아니라 채권의 추심이나 변제의 수령 등과 같은 행위도 포함됩니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2019. 8. 21. 선고 2019가단971 판결).
예를 들어 갑이 A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A가 B에 대해 가지고 있는 1,000만 원짜리 채권을 질권으로 잡았다고 해보겠습니다.
이 경우 A는 함부로 B에게 채권을 없애는 행동을 하면 안 됩니다.
예를 들면,
- 면제: “B야, 너 그 1,000만 원 안 갚아도 돼.”
- 상계: “B가 나에게 100만 원 빌려간 게 있으니 서로 없던 일로 하자.”
- 추심·변제 수령: “B에게서 1,000만 원 받아서 내가 먼저 써버려야겠다.”
이런 행동을 하면 질권자가 담보로 잡아둔 권리가 사라지거나 약해져서 질권자의 이익이 침해되기 때문입니다.
5.실무상 유의사항
가. 확정일자 있는 승낙의 중요성
예금채권에 질권을 설정할 때는 반드시 은행으로부터 확정일자 있는 승낙을 받아야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349조 제2항).
갑이 은행에 있는 자신의 예금채권을 담보로 A에게 돈을 빌려줬다고 해보겠습니다.
이때 질권이 다른 제3자(예: 다른 채권자, 압류권자 등)에게도 효력을 가지려면,
- “이 예금채권에 질권이 설정되었습니다”
라는 은행의 승낙(확정일자 포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은행은 예금채권의 제3채무자이기 때문에,
은행이 확정일자 있는 승낙을 해줘야 외부에서도 ‘이 예금은 이미 질권이 잡혔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은행 승낙 없이 그냥 둘 경우:
- 나중에 다른 채권자가 예금을 압류해버리거나
- 질권 설정 사실을 모르고 중복하여 담보를 잡을 수도 있어
갑이 담보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됩니다.
나. 이의 유보 없는 승낙
은행이 질권 설정에 대하여 이의를 유보하지 않고 승낙한 경우, 은행은 예금채권의 부존재를 이유로 질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습니다 (대법원 1997. 5. 30. 선고 96다22648 판결).
다. 질권해지 통지
갑이 예금채권에 질권을 잡아 둔 상태에서, 은행에 “질권 해제합니다”라는 팩스를 보냈다고 가정해봅시다.
은행 직원은 그 팩스를 보고 “아, 질권이 끝났구나”라고 믿고, 질권설정자인 예금주가 예금청구를 하면 질권설정자에게 예금을 지급(변제)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갑과 질권설정자 사이에서 질권 해제에 관한 합의가 완전히 성립하지 않은 상태였더라도, 은행이 팩스를 진짜 해제 통지라고 믿은 선의의 제3자라면 은행의 변제는 유효가 되고 갑은 은행에게 “왜 돈을 줬냐”며 다시 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즉, 은행이 질권자가 해제했다고 믿을 만한 외형(팩스)을 보고 처분했다면, 선의인 은행은 보호받는다는 취지입니다.
라. 피담보채권의 소멸과 질권
피담보채권이 전부 소멸한 경우 질권도 소멸합니다.
마. 부당이득 반환
질권자가 피담보채권을 초과하여 질권의 목적이 된 금전채권을 추심하였다면, 그 중 피담보채권을 초과하는 부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률상 원인이 없는 것으로서 질권설정자에 대한 관계에서 부당이득이 됩니다 (대법원 2011. 4. 14. 선고 2010다5694 판결).
예를 들어 갑이 A에게 1,000만 원을 빌려주고, A가 B에 대해 가진 1,500만 원의 금전채권을 질권으로 잡았다고 해보겠습니다.
갑은 B로부터 돈을 받아낼(추심할) 수 있지만, 그 목적은 어디까지나 1,000만 원(피담보채권)을 회수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갑이 B로부터 1,500만 원 전액을 받았다면, 그 중 1,000만 원은 담보로서 정당하게 받는 돈,
하지만 초과한 500만 원은 법적 원인 없이 받은 돈이 됩니다. 따라서 이 초과분 500만 원은 A에게 돌려줘야 할 부당이득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