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로스팅 사업을 하는 A 씨는 카페를 운영하는 B 씨와 3개월 동안 매주 특정 날짜에 원두 100kg을 납품하기로 계약했습니다.
계약 첫 달, A 씨는 원두를 볶는 로스팅 공장이 위치한 지역에 100년 만의 기록적인 초대형 태풍이 덮치는 바람에 공장 일부가 침수되고 정전이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A 씨는 약속된 날짜에 원두 100kg을 납품하지 못했습니다.
이경우, A씨는 B씨에게 채무불이행 책임을 부담할까요?
이때 문제되는 것이 불가항력 이라는 개념입니다.
1. 불가항력 조항의 의미
가. 기본 개념
불가항력(Force Majeure) 조항이란 계약 체결 당시 예측할 수 없었던 사건이나 상황으로 인해 계약 이행이 불가능하게 된 경우, 당사자의 책임을 면제하거나 계약 내용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 조항입니다.
불가항력은 “계약당사자의 통제범위를 벗어난 사태의 발생 등의 사유로 인하여 공사이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경우로서 계약당사자 누구의 책임에도 속하지 아니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나. 법적 성격
불가항력은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채무자의 고의나 과실없이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 해당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면하게 하는 사유입니다(민법 제390조).
다만, 금전채무의 불이행에 관하여는 채무자가 불가항력을 가지고 항변할 수 없습니다(대법원 1956. 2. 25. 선고 4288민상455 판결).
2. 불가항력 조항의 중요성
불가항력 조항이 없는 경우, 당사자는 다음과 같은 위험에 노출됩니다:
- 예측 불가능한 사태로 인한 계약 불이행 시 손해배상 책임
- 계약 해제/해지 시 위약금 부담
- 법적 분쟁 발생 시 불확실한 결과
특히 국제건설계약과 같이 장기간 수행되는 계약에서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정홍식 외, 『국제건설에너지법-이론과실무[제2권]』, 박영사(2019년), 370면).
3. 불가항력 사유의 예시
가. 법령상 예시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32조는 다음을 불가항력 사유로 규정합니다:
- 태풍, 홍수 기타 악천후
- 전쟁 또는 사변
- 지진, 화재
- 전염병, 폭동
- 기타 계약당사자의 통제범위를 벗어난 사태의 발생
나. FIDIC 계약조건의 예시
FIDIC 계약조건 제19.1조는 다음을 예시합니다 (정홍식 외, 『국제건설에너지법-이론과실무[제2권]』, 박영사(2019년), 362면):
- 전쟁, 교전, 테러
- 천재지변(지진, 홍수, 태풍 등)
- 전염병
- 정부의 조치
- 법령의 제·개정
다만, “…include, but not limited to…”라는 문구를 통해 예시되지 않은 상황도 불가항력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명확히 합니다 (정홍식 외, 『국제건설에너지법-이론과실무[제2권]』, 박영사(2019년), 362면).
다. 불가항력으로 인정되지 않는 사례
IMF 사태 “이른바 IMF 사태 및 그로 인한 자재 수급의 차질 등은 불가항력적인 사정이라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02. 9. 4. 선고 2001다1386 판결).
파업 일반적으로 시공자의 직원들이나 하수급인의 현장 파업은 불가항력이 아닌 것으로 봅니다 (정홍식 외, 『국제건설에너지법-이론과 실무[제1권]』, 박영사(2017년), 643-644면).
경제적 곤란 경제적 비용상승을 포함한 경제적 곤란은 불가항력으로 보지 않습니다 (정홍식 외, 『국제건설에너지법-이론과실무[제2권]』, 박영사(2019년), 370면).
4. 관련 판례
가. 불가항력 인정 사례
코로나19 사태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5. 25. 선고 2020가단5261441 판결)
임대차계약에서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90일 이상 영업을 계속할 수 없을 경우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고, 코로나19로 매출이 90% 이상 감소한 사안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위 점포에서의 매출이 감소한 것은 임대차계약에서 정한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90일 이상 자신의 영업을 계속할 수 없을 경우’에 해당하고, 위와 같은 계약해지조항이 없다고 하더라도 사정변경의 원칙에 따라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위 임대차계약은 적법하게 해지되어 종료되었다”
나. 불가항력 불인정 사례
수변구역 규제 (수원지방법원 2022. 6. 17. 선고 2020나98692 판결)
증축설계용역계약에서 수변구역 지정으로 인한 건축연면적 제한으로 인허가를 받을 수 없게 된 사안에서:
“이 사건 계약 제11조 제1항에서 불가항력 사유의 하나로 열거한 ‘정부의 규제’는 원칙적으로 계약 체결 후 생긴 규제에 국한된다고 보아야 하고, 다만 계약 체결 전부터 있던 규제라도 그 존재를 알거나 확인하는 것이 불가항력에 가까울 정도로 극히 어려운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불가항력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위 수변구역 지정과 건축연면적 제한은 이 사건 계약 제11조 제1항에서 정한 불가항력에 해당하는 정부의 규제로 볼 수 없다”
노동조합 파업 (부산지방법원 2017. 10. 26. 선고 2017가합43056 판결)
가스공급계약에서 제강소의 노동조합 파업으로 가스공급이 중단된 사안에서:
“이 사건 파업은 이 사건 계약 제3조 제4항이 정한 ‘불가항력의 사항이 아닌 요인’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불가항력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다. 특약의 유효성
불가항력 위험 부담 특약 (대법원 1963. 5. 15. 선고 63다111 판결)
“불가항력으로 인한 손해를 계약당사자의 일방만이 부담한다는 내용의 특약을 하였다 하더라도 이를 당연무효라고 할 수 없다”
5. 실무상 팁
가. 계약서 작성 시 주의사항
명확한 정의 규정
- 불가항력 사유를 구체적으로 열거
- “포함하되 이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문구 추가
- 해당 프로젝트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조항 작성 (이기수 외 2인, 『보험해상법[제9판]』, 박영사(2015년), 574-575면)
절차 규정
- 불가항력 발생 시 통지 의무 및 기한 명시
- 증명 책임 및 방법 규정
- 협의 절차 명시
효과 규정
- 공기 연장 여부
- 추가 비용 부담 주체
- 계약 해제/해지 요건 및 절차
- 손해배상 면제 범위
나. 불가항력 주장 시 유의사항
입증 책임 불가항력을 주장하는 당사자가 다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 예측 불가능성
- 회피 불가능성
- 당사자의 통제 범위 밖의 사건
- 계약 이행에 대한 직접적 영향
통지 의무 대부분의 계약은 불가항력 발생 시 즉시 또는 일정 기간 내 상대방에게 통지할 것을 요구합니다. 통지를 게을리하면 불가항력 항변이 배척될 수 있습니다.
손해 경감 의무 불가항력 사유가 발생하더라도 당사자는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합리적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정홍식 외, 『국제건설에너지법-이론과실무[제2권]』, 박영사(2019년), 349-350면).
다. 준거법에 따른 대응
영미법 준거 계약
- 불가항력 조항이 없으면 구제받기 어려움
- 계약서에 상세한 불가항력 조항 필수
- Frustration 법리나 Impracticability 법리의 적용 가능성 검토 (정홍식 외, 『국제건설에너지법-이론과실무[제2권]』, 박영사(2019년), 352-353면)
대륙법 준거 계약
- 법률상 불가항력 규정 존재
- 다만 계약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바람직
- 사정변경의 원칙 등 다른 법리와의 관계 고려 (정홍식 외, 『국제건설에너지법-이론과실무[제2권]』, 박영사(2019년), 352-353면)
라. 국제건설계약 특유의 고려사항
현지 상황 파악
- 현지에서 무엇을 통제할 수 없는지 이해
- 예견할 수 없는 기후 조건의 정의가 국가마다 다를 수 있음 (정홍식 외, 『국제건설에너지법-이론과 실무[제1권]』, 박영사(2017년), 643-644면)
관련 계약과의 연계
- EPC계약, 연료공급계약, O&M계약 등과 백투백(back-to-back) 구조 확보
- 하나의 계약에서 불가항력으로 면책되더라도 다른 계약에서 책임을 지는 상황 방지 (정홍식 외, 『국제건설에너지법-이론과실무[제2권]』, 박영사(2019년), 161-162면)
마. 최근 이슈 대응
코로나19 팬데믹
- 전염병은 전통적인 불가항력 사유
- 다만 구체적 영향과 인과관계 입증 필요
- 정부의 방역 조치, 국경 폐쇄 등도 고려 대상
기후변화
- 이상기후 현상의 빈도 증가
- “예측 가능성” 기준의 변화 가능성
- 계약서에 구체적 기준 명시 필요
6. 체크리스트
계약서 검토 시 다음 사항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불가항력의 정의가 명확한가? □ 불가항력 사유가 구체적으로 열거되어 있는가? □ 예시적 열거인지 한정적 열거인지 명확한가? □ 통지 의무와 기한이 규정되어 있는가? □ 입증 책임과 방법이 명시되어 있는가? □ 불가항력의 효과(공기연장, 비용부담 등)가 명확한가? □ 계약 해제/해지 요건이 규정되어 있는가? □ 손해배상 면제 범위가 명확한가? □ 관련 계약들과 일관성이 있는가? □ 준거법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는가?
불가항력 조항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당사자를 보호하는 중요한 안전장치입니다. 계약 체결 시 충분한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검토하고, 해당 프로젝트의 특성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