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난품과 선의취득

B씨는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명품시계 한 점을 시가의 절반 가격(150만 원)에 판매한다는 글을 보고 A씨에게 연락했습니다. A씨는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는 B씨의 말을 믿고, 신분증 확인이나 영수증 확인도 없이 현금으로 시계를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시계의 진짜 주인 C씨가 나타나 “그 시계는 도난당한 내 물건이니 돌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A씨는 “나는 선의로 산 것이니 내 소유가 됐다”며 거절했습니다.

1. 선의취득 제도의 의의

가. 선의취득이란?

선의취득은 무권리자(소유권이 없는 사람)로부터 동산을 양수한 사람이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진정한 소유자가 아닌 사람으로부터 물건을 샀더라도 그 물건의 소유권을 취득하게 되는 제도입니다 (민법 제249조).

나. 제도의 취지

동산은 부동산과 달리 등기제도가 없어 누가 진정한 소유자인지 외부에서 알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동산 거래에서는 “점유”가 권리의 공시방법이 되는데, 이러한 점유를 믿고 거래한 선의의 양수인을 보호하여 거래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 선의취득 제도입니다.

2. 선의취득의 요건

민법 제249조에 따르면, 선의취득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합니다.

가. 목적물이 동산일 것

선의취득의 대상은 동산이어야 합니다. 다만, 선박·자동차·항공기 등 등기·등록을 공시방법으로 하는 동산은 선의취득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명품시계는 일반 동산에 해당하므로 이 요건은 충족됩니다.

나. 양도인이 무권리자일 것

양도인(B씨)이 목적물에 대한 처분권한이 없는 무권리자여야 합니다 .

본 사례에서 B씨는 도난당한 시계를 판매한 것이므로 무권리자에 해당합니다.

다. 유효한 거래행위가 있을 것

양도인과 양수인 사이에 동산물권 취득에 관한 유효한 거래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동산의 선의취득은 “양도인이 무권리자라고 하는 점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흠이 없는 거래행위”이어야 성립합니다 (대법원 1995. 6. 29. 선고 94다22071 판결).

본 사례에서 A씨와 B씨 사이에 매매계약이 체결되었으므로 이 요건은 충족됩니다.

라. 평온·공연하게 점유를 취득할 것

“평온”이란 강박 등 위법한 수단에 의하지 않고 점유를 취득하는 것을 의미하고, “공연”이란 은밀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점유를 취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 사례에서 A씨는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공개적으로 거래했으므로 평온·공연한 점유 취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 선의·무과실로 점유를 취득할 것

가) 선의의 의미

“선의”란 양도인이 무권리자임을 알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 무과실의 의미

“무과실”이란 양도인이 무권리자임을 알지 못한 것에 과실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법 제197조 제1항에 따라 점유자의 선의와 평온·공연은 추정되지만, 무과실은 선의취득을 주장하는 자가 증명해야 합니다 (대법원 2004. 11. 26. 선고 2003다56816 판결).

3. 도품·유실물에 대한 특례 (민법 제250조)

가. 원칙

선의취득의 요건을 갖춘 경우에도, 그 동산이 도품이나 유실물인 때에는 피해자 또는 유실자는 도난 또는 유실한 날로부터 2년 내에 그 물건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250조).

이는 도난이나 유실의 경우 진정한 소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점유를 상실한 것이므로, 거래안전보다 진정한 소유자의 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은영, 『리갈마인드 물권법』, 박영사(2013년), 171-172면).

나. 도품의 의미

민법 제250조, 제251조 소정의 “도품”이란 원권리자로부터 점유를 수탁한 사람이 적극적으로 제3자에게 부정 처분한 경우와 같은 위탁물 횡령의 경우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대법원 1991. 3. 22. 선고 91다70 판결, 서울고등법원 1967. 9. 15. 선고 67나955 판결).

본 사례의 시계는 C씨로부터 도난당한 것이므로 “도품”에 해당합니다.

4. 사례의 해결

가. A씨의 선의 여부

A씨가 선의인지 여부를 판단해야 합니다.

나. A씨의 과실 여부 – 핵심 쟁점

본 사례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A씨에게 과실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가) 과실 인정 사유

다음과 같은 사정들은 A씨에게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시가의 절반이라는 현저히 저렴한 가격: 명품시계를 시가의 절반인 150만 원에 구입한 것은 정상적인 거래가격이 아닙니다.

신분증 미확인: A씨는 B씨의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영수증 미확인: 명품시계의 경우 통상 정품 영수증이나 보증서가 있는데, 이를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는 사정: B씨가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고 한 것은 의심스러운 사정입니다.

판례는 “매도자의 신원확인절차를 거쳤다고 하여도 장물인지의 여부를 의심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거나, 매수물품의 성질과 종류 및 매도자의 신원 등에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면 그 물건이 장물임을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게을리 하여 장물인 정을 모르고 매수하여 취득한 경우에는 업무상과실장물취득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2019. 1. 10. 선고 2018고정1005 판결).

나) 유사 판례

유사한 사안에서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했습니다:

다. 결론

본 사례에서 A씨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과실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① 명품시계를 시가의 절반 가격에 구입하면서도 의심하지 않은 점

② 신분증이나 영수증 등 기본적인 확인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은 점

③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는 의심스러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거래를 진행한 점

따라서 A씨는 무과실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여 선의취득이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라. 도품 특례의 적용

설령 A씨에게 과실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 시계는 도품이므로 민법 제250조에 따라 진정한 소유자인 C씨는 도난당한 날로부터 2년 내에 A씨에게 시계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5. 최종 결론

본 사례에서 A씨는 C씨에게 시계를 반환해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이유는:

가. 1차적으로

A씨가 시계를 취득함에 있어 과실이 인정되어 선의취득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 2차적으로

설령 A씨에게 과실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 시계는 도품이므로 민법 제250조에 따라 C씨는 도난당한 날로부터 2년 내에 반환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실무상 유의사항

중고거래, 특히 고가의 명품을 거래할 때는 다음 사항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가. 매도인의 신원 확인

매도인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그 정보를 기록해 두어야 합니다.

나. 정품 여부 확인

명품의 경우 정품 영수증, 보증서, 정품 등록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합니다.

다. 적정 가격 확인

시가에 비해 현저히 저렴한 가격인 경우 의심해야 합니다.

라. 취득 경위 확인

매도인이 해당 물건을 어떻게 취득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러한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선의취득이 인정되지 않아 물건을 반환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지급한 대금도 회수하지 못하는 이중의 손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