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물공급계약과 동시이행항변권

A사는 기계설비를 제작해 B사에 납품했고, 설치까지 완료했습니다. 그러나 B사는 기계에 소음 및 고장 문제가 있다며 잔금 1억 원 지급을 유보하고 있습니다. 반면 A사는 설치는 끝났고, 매뉴얼·암호 등 인도 완료는 잔금 지급 이후 하겠다고 주장합니다.

누구의 주장이 타당한 것일까요?

1. 계약의 법적 성질

가. 제작물공급계약의 의미

당사자의 일방이 상대방의 주문에 따라 자기 소유의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물건을 공급하기로 하고 이에 대하여 상대방이 대가를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이른바 제작물공급계약은, 그 제작의 측면에서는 도급의 성질이 있고 공급의 측면에서는 매매의 성질이 있어 대체로 매매와 도급의 성질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 적용 법률은 계약에 의하여 제작 공급하여야 할 물건이 대체물인 경우에는 매매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만, 물건이 특정의 주문자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부대체물인 경우에는 당해 물건의 공급과 함께 그 제작이 계약의 주목적이 되어 도급의 성질을 띠게 되므로 도급에 관한 규정이 주로 적용됩니다 (대법원 1994. 12. 22. 선고 93다60632 판결, 대법원 2006. 10. 13. 선고 2004다21862 판결).

본 사안에서 A사가 B사의 주문에 따라 특정 기계설비를 제작·설치한 것이라면, 이는 부대체물에 해당하여 도급계약의 성질을 가진다고 볼 것입니다.

나. 도급계약의 특성

도급계약에서는 수급인이 일을 완성하고 도급인이 그 결과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민법 제664조). 따라서 ‘일의 완성’ 여부가 보수지급의무 발생의 핵심 요건이 됩니다.

2. 일의 완성 여부 판단

가. 일의 완성의 의미

도급계약에 있어 일의 완성에 관한 주장·입증책임은 일의 결과에 대한 보수의 지급을 청구하는 수급인에게 있고, 제작물공급계약에서 일이 완성되었다고 하려면 당초 예정된 최후의 공정까지 일단 종료하였다는 점만으로는 부족하고 목적물의 주요구조 부분이 약정된 대로 시공되어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성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대법원 2006. 10. 13. 선고 2004다21862 판결).

개별적 사건에 있어서 예정된 최후의 공정이 일응 종료하였는지 여부는 수급인의 주장에 구애됨이 없이 당해 제작물공급계약의 구체적 내용과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 목적물의 인도의 의미

제작물공급계약에서 보수의 지급시기에 관하여 당사자 사이의 특약이나 관습이 없으면 도급인은 완성된 목적물을 인도받음과 동시에 수급인에게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고, 이때 목적물의 인도는 완성된 목적물에 대한 단순한 점유의 이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도급인이 목적물을 검사한 후 그 목적물이 계약 내용대로 완성되었음을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시인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대법원 2006. 10. 13. 선고 2004다21862 판결, 대법원 2019. 9. 10. 선고 2017다272486 판결).

다. 본 사안의 검토

본 사안에서 A사는 기계설비를 제작하여 B사에 설치까지 완료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1) 매뉴얼·암호 등의 미제공

A사가 매뉴얼, 암호 등을 잔금 지급 이후에 제공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자료들이 기계설비의 정상적인 사용·운용에 필수적인 것이라면, 이는 계약에서 예정한 최후 공정이 완료되지 않았다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판례는 “수급인이 기계를 제작하여 도급인의 공장 내에 설치한 후 일정기간 동안의 시운전을 하여 성능검사가 끝난 때에 공사잔금을 지급받기로 하는 내용의 기계제작설치공사도급계약에 있어서는 민법 제670조 제1항이 규정한 제척기간 1년의 기산점은 기계를 도급인의 공장에 설치한 날이 아니라 그 시운전까지 하여 성능검사가 끝난 날”이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1994. 12. 22. 선고 93다60632 판결).

2) 소음 및 고장 문제

B사가 주장하는 소음 및 고장 문제가 사실이라면, 이는 목적물이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성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서 ‘일의 완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하자가 경미하여 계약의 목적 달성에 지장이 없는 정도라면, 일의 완성은 인정되되 하자담보책임의 문제로 처리될 수 있습니다.

3. 동시이행의 항변권

가. 동시이행 항변권의 의의

민법 제536조 제1항은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은 상대방이 그 채무이행을 제공할 때까지 자기의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동시이행항변권은 쌍무계약에서 한쪽이 상대방이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거나 이행제공을 하기 전까지 자기 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쉽게 말해, “너 먼저 해야 나도 한다”는 원칙으로, 매매계약에서 돈을 아직 안 준 사람에게 소유권이전의무를 거절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도급계약에서 수급인의 일의 완성 및 목적물 인도의무와 도급인의 보수지급의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동시이행관계에 있습니다 (민법 제665조 제1항).

나. 본 사안에의 적용

1) A사의 주장

A사는 설치를 완료하였으므로 B사가 잔금을 지급해야 매뉴얼·암호 등을 제공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A사가 완전한 이행제공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B사에게 먼저 대금지급을 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B사의 주장

B사는 소음 및 고장 문제를 이유로 잔금 지급을 유보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하자가 실제로 존재하고 그것이 계약의 목적 달성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라면, B사는 A사가 완전한 이행(하자 보수 포함)을 제공할 때까지 동시이행항변권을 행사하여 잔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다. 관련 판례

대법원 2019. 9. 10. 선고 2017다272486 판결은 “도급계약의 당사자들이 ‘수급인이 공급한 목적물을 도급인이 검사하여 합격하면, 도급인은 수급인에게 보수를 지급한다’고 정한 경우 ‘검사 합격’은 법률행위의 효력 발생을 좌우하는 조건이 아니라 불확정기한”이라고 판시하였습니다.

또한 “수급인이 도급계약에 따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도급인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그와 같은 하자확대손해로 인한 수급인의 손해배상채무와 도급인의 보수지급채무 역시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2005. 11. 10. 선고 2005다32197 판결).

4. 하자담보책임

가. 하자담보책임의 의의

도급인이 인도받은 목적물에 하자가 있는 것만을 이유로, 하자의 보수나 하자의 보수에 갈음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아니하고 막바로 보수의 지급을 거절할 수는 없습니다 (대법원 1991. 12. 10. 선고 91다33056 판결).

다만, 도급계약에 있어서 완성된 목적물에 하자가 있는 때에 민법 제667조 제2항에 의하여 도급인이 수급인에 대하여 그 하자의 보수에 갈음하여 또는 보수와 함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는 민법 제667조 제3항에 의하여 민법 제536조가 준용되는 결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수급인이 가지는 보수채권과 동시이행관계에 있습니다 (대법원 2005. 11. 10. 선고 2005다32197 판결).

나. 본 사안의 검토

B사가 주장하는 소음 및 고장 문제가 경미한 하자에 해당한다면, B사는 하자보수청구권 또는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으나, 이를 이유로 잔금 전액의 지급을 거절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하자보수에 갈음하는 손해배상채권과 잔금채권은 동시이행관계에 있으므로, B사는 손해배상액 상당액의 범위 내에서 잔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반면, 소음 및 고장 문제가 중대하여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정도라면, 이는 ‘일의 완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B사는 잔금 지급의무를 부담하지 않습니다.

5. 사례 해결

가. A사의 입장

A사가 잔금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다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1) 일의 완성

기계설비가 계약 내용대로 제작·설치되어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성능을 갖추었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매뉴얼·암호 등이 계약상 인도 대상에 포함되는 경우, 이를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일의 완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2) 하자의 부존재 또는 경미성

B사가 주장하는 소음 및 고장 문제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경미하여 계약의 목적 달성에 지장이 없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나. B사의 입장

B사가 잔금 지급을 거절하기 위해서는 다음을 주장·입증해야 합니다.

1) 일의 미완성

매뉴얼·암호 등이 제공되지 않아 기계설비를 정상적으로 사용·운용할 수 없다면, 일의 완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2) 중대한 하자의 존재

소음 및 고장 문제가 계약의 목적 달성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중대하다면, 일의 완성이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동시이행항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6. 실무상 팁

가. 계약서 작성 시 유의사항

나. 분쟁 예방 및 해결 방안

다. 소송 시 고려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