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의 중학생 아들(13세)이 스마트폰 게임을 하다, 아버지 명의의 휴대폰으로 100만 원 상당의 게임 아이템을 결제했습니다. 결제 후 며칠 뒤 A씨는 문자 청구서를 보고 깜짝 놀랐고, 곧바로 통신사와 게임회사에 환불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미성년자 본인 명의로 한 계약이라 취소는 어렵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럴 때, 과연 계약은 취소할 수 있을까요?
1. 사안의 정리
A씨의 13세 중학생 아들이 아버지 명의의 휴대폰으로 100만 원 상당의 게임 아이템을 결제한 후, A씨가 통신사와 게임회사에 환불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한 사안입니다. 이 경우 법적으로 계약 취소가 가능한지 검토가 필요합니다.
2. 미성년자의 행위능력에 관한 법리
가. 관련 법조문
민법 제5조(미성년자의 능력)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① 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함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권리만을 얻거나 의무만을 면하는 행위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전항의 규정에 위반한 행위는 취소할 수 있다.
또한 민법 제4조는 “사람은 19세로 성년에 이르게 된다”고 규정하여, 19세 미만은 미성년자로 봅니다.
나. 미성년자 행위능력 제한의 취지
미성년자는 아직 정신적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스스로 법률행위의 의미와 결과를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법은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법정대리인(통상 부모)의 동의 없이 한 법률행위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민법 제5조 제2항).
다. 법정대리인의 권한
미성년자의 친권자인 부모는 미성년자의 법정대리인이 되며(민법 제911조), 법정대리인은 다음의 권한을 갖습니다.
- 동의권: 미성년자의 법률행위에 대해 사전에 동의할 권한
- 취소권: 동의 없이 이루어진 법률행위를 취소할 권한 (민법 제140조)
- 대리권: 미성년자를 대리하여 법률행위를 할 권한
3. 미성년자 행위능력 제한의 예외
민법은 일정한 경우 미성년자가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도 단독으로 유효한 법률행위를 할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가. 권리만을 얻거나 의무만을 면하는 행위
민법 제5조 제1항 단서에 따라, 미성년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행위는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도 유효합니다. 예를 들어 증여를 받거나 채무를 면제받는 행위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나. 처분이 허락된 재산
법정대리인이 범위를 정하여 처분을 허락한 재산은 미성년자가 임의로 처분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6조). 예를 들어 부모가 “용돈 5만 원은 네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허락한 경우, 그 범위 내에서는 미성년자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 영업이 허락된 경우
미성년자가 법정대리인으로부터 허락을 얻은 특정한 영업에 관하여는 성년자와 동일한 행위능력이 있습니다 (민법 제8조).
4. 판례의 태도
가. 미성년자의 법률행위 취소에 관한 일반 원칙
대법원은 미성년자가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한 법률행위는 취소할 수 있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1994. 4. 29. 선고 94다1302 판결은 “미성년자의 법정대리인의 법률행위는 미성년자를 위하여 한 행위로 추정되므로 후견인의 피후견인 재산에 관한 처분행위는 피후견인인 미성년자를 대리하여 한 행위로서 미성년자에 대하여 그 효과가 발생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대법원 1994. 4. 29. 선고 94다1302 판결 소유권이전등기).
나. 신용카드 이용계약 취소 사례
미성년자의 신용카드 사용과 관련하여, 대법원 2005. 4. 15. 선고 2003다60297 판결은 중요한 법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판결에 따르면, “미성년자가 신용카드발행인과 사이에 신용카드 이용계약을 체결하여 신용카드거래를 하다가 신용카드 이용계약을 취소하는 경우 미성년자는 그 행위로 인하여 받은 이익이 현존하는 한도에서 상환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
또한 “신용카드 이용계약이 취소됨에도 불구하고 신용카드회원과 해당 가맹점 사이에 체결된 개별적인 매매계약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신용카드 이용계약취소와 무관하게 유효하게 존속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미성년자가 카드사와 맺은 ‘신용카드 이용계약’은 취소하면 효과가 사라지지만, 그 결과 카드사에 돌려줄 돈은 ‘아직 남아 있는 이익(현존이익)’만큼입니다.
반면 가맹점과의 개별 매매계약(물건 산 계약)은 별일 없으면 그대로 유효입니다. 즉, 카드 계약을 취소해도 물건 산 약속 자체가 자동으로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다. 법정대리인의 동의 입증책임
수원지방법원 2021. 6. 8. 선고 2020나5508 판결은 “미성년자라고 하여 법률행위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며 미성년자의 법률행위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지 아니한 경우에는 이를 취소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하면서도,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었다는 점에 대한 입증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측에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수원지방법원 2021. 6. 8. 선고 2020나5508 판결 대여금).
즉, 미성년자와 거래를 한 상대방이 미성년자의 법정대리인(부모)의 동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합니다.
라. 사술을 사용한 경우의 예외
다만, 대법원 1971. 6. 22. 선고 71다940 판결은 “미성년자가 사술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성년자로 믿게 하고 한 의사표시는 이를 취소할 수 없다”고 판시하여, 미성년자가 적극적으로 성년자인 것처럼 속인 경우에는 취소권이 제한될 수 있음을 밝혔습니다 (대법원 1971. 6. 22. 선고 71다940 판결 근저당권설정등기말소).
5. 실무상 유의사항 및 팁
가. 신속한 취소 의사표시
미성년자의 법률행위를 취소하고자 하는 경우, 가능한 한 신속하게 취소 의사를 명확히 표시해야 합니다. 취소권은 추인할 수 있는 날로부터 3년, 법률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내에 행사해야 하므로(민법 제146조), 시간이 지체되면 불리할 수 있습니다.
나. 취소 의사표시의 방법
취소 의사표시는 구두로도 가능하지만, 분쟁 예방을 위해 내용증명우편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취소 의사표시에는 다음 내용을 명확히 기재해야 합니다:
- 미성년자의 인적사항(성명, 생년월일)
- 법정대리인의 인적사항 및 관계
- 취소하고자 하는 계약의 내용
-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체결된 계약임을 명시
- 민법 제5조에 따른 취소 의사 표시
다. 현존이익 반환의 범위
민법 제141조 단서는 “제한능력자는 그 행위로 인하여 받은 이익이 현존하는 한도에서 상환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합니다.
예를 들어, 게임 아이템의 경우, 이미 사용하여 소진한 부분은 현존이익이 아니므로 반환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아직 사용하지 않고 계정에 남아있는 아이템이나 게임머니는 현존이익으로 볼 수 있어 반환해야 할 수 있습니다.
라. 결제 취소 절차
실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1) 1차: 게임회사 및 통신사에 직접 연락
- 미성년자임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가족관계증명서 등) 제출
-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결제임을 설명
- 민법 제5조에 따른 취소권 행사 의사 표시
2) 2차: 내용증명 발송
- 1차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내용증명우편 발송
- 취소 의사를 명확히 하고 일정 기한 내 환불 요구
3) 3차: 한국소비자원 또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신고
- 분쟁조정 신청
- 전자상거래 관련 소비자 피해 구제 요청
4) 4차: 법적 조치
- 소액사건심판 또는 민사소송 제기
- 필요시 가처분 신청
5) 입증자료 확보
취소권 행사를 위해서는 다음 자료를 미리 확보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 미성년자임을 증명하는 서류(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등본 등)
- 결제 내역서
- 게임 계정 정보
- 법정대리인이 동의하지 않았음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
6. 본 사례의 해결
가. 법률관계 분석
본 사안에서 13세 중학생은 명백한 미성년자이며, 100만 원 상당의 게임 아이템 결제는 법률행위에 해당합니다.
게임 아이템 결제는 미성년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행위(권리만을 얻는 행위)가 아니라 대가를 지급하고 아이템을 구매하는 쌍무계약이므로, 민법 제5조 제1항 단서의 예외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또한 100만 원은 통상적인 용돈 범위를 명백히 초과하는 금액이므로, 법정대리인이 처분을 허락한 재산의 범위(민법 제6조)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나. 취소권 행사 가능 여부
1) 원칙적 취소 가능
A씨의 아들이 법정대리인인 A씨의 동의 없이 게임 아이템을 결제한 것이므로, 민법 제5조 제2항에 따라 A씨는 이 계약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통신사와 게임회사가 “미성년자 본인 명의로 한 계약이라 취소는 어렵다”고 답변한 것은 법률적으로 타당하지 않습니다. 미성년자 본인 명의로 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실 자체가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계약임을 의미하므로, 오히려 취소 사유가 됩니다.
2) 사술 사용 여부 검토
다만, 미성년자가 적극적으로 성년자인 것처럼 속였다면 취소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 1971. 6. 22. 선고 71다940 판결 근저당권설정등기말소).
그러나 본 사안에서는 13세 중학생이 단순히 아버지 명의의 휴대폰으로 결제한 것일 뿐, 적극적으로 성년자임을 사칭하거나 신분증을 위조하는 등의 사술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예외는 적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3) 법정대리인 동의 입증책임
게임회사나 통신사가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었다고 주장한다면, 그 입증책임은 게임회사나 통신사에 있습니다 (수원지방법원 2021. 6. 8. 선고 2020나5508 판결 대여금). 본 사안에서 A씨가 동의한 사실이 없으므로, 게임회사나 통신사는 이를 입증할 수 없을 것입니다.
4) 현존이익 반환 문제
계약이 취소되면 원칙적으로 쌍방은 원상회복의무를 부담합니다. 다만, 민법 제141조 단서에 따라 미성년자는 “그 행위로 인하여 받은 이익이 현존하는 한도에서” 상환할 책임이 있습니다.
게임 아이템의 경우:
- 아직 사용하지 않고 계정에 남아있는 아이템 → 현존이익으로 반환 필요
- 이미 사용하여 소진한 아이템 → 현존이익이 아니므로 반환 불요
실무적으로 게임 아이템은 대부분 사용 즉시 소진되거나 게임 진행에 활용되므로, 현존이익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A씨는 전액 환불을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5) 구체적 해결 방안
- 즉시 취소 의사 표시
A씨는 게임회사와 통신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내용증명우편을 발송해야 합니다:
“본인의 13세 미성년자 아들이 2025년 ○월 ○일 본인의 동의 없이 귀사의 게임 아이템 100만 원 상당을 결제하였습니다. 이는 민법 제5조 제1항에 위반하는 법률행위이므로, 같은 조 제2항에 따라 이를 취소합니다. 귀사는 즉시 결제를 취소하고 결제금액 전액을 환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소비자 분쟁조정 신청
게임회사나 통신사가 환불을 거부하는 경우, 한국소비자원에 소비자 분쟁조정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미성년자의 게임 과금 문제는 소비자원에서 자주 다루는 사안이므로, 조정을 통해 해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법적 조치
분쟁조정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경우, 소액사건심판 또는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100만 원은 소액사건에 해당하므로(3,000만 원 이하), 비교적 간이한 절차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 신용카드사 또는 통신사 결제 취소
아버지 명의의 휴대폰으로 결제가 이루어진 경우, 통신사의 소액결제 서비스를 통해 결제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경우 통신사에 직접 결제 취소를 요청할 수 있으며, 통신사가 거부하는 경우 신용카드사에 이의제기(chargeback)를 신청할 수도 있습니다.
7. 결론
A씨의 13세 아들이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100만 원 상당의 게임 아이템을 결제한 행위는 민법 제5조 제2항에 따라 취소할 수 있습니다.
통신사와 게임회사의 “미성년자 본인 명의로 한 계약이라 취소는 어렵다”는 답변은 법률적 근거가 없으며, A씨는 취소권을 행사하여 전액 환불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