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와 여당이 72년 만에 형법상 배임죄의 폐지를 추진한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타인에게 손해를 끼칠 때 성립하는 대표적 경제형벌 조항입니다.
배임죄는 주로 아래 분야에서 적용됩니다.
배임죄가 주로 적용된 범죄 분야
- 기업 최고경영자(CEO), 임직원 등이 회사 재산에 손해를 주고 부당한 이득을 얻은 경우
- 회사 기밀, 영업비밀 유출, 내부자 거래 등 기업 내 위법행위
- 부동산 이중매매, 위임받은 자산의 무단 처분 등 개인 재산범죄
- 횡령·사기와의 결합 사례: 관리인이나 임무수행자가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게 될 때는 사기죄와 경합하여 적용
- 특경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에서 5억 이상 이득액이 발생한 중대 경제범죄
1. 배임죄의 개념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 성립하는 범죄입니다(형법 제355조 제2항).
배임죄의 핵심 구성요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 주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란 타인과의 대내관계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그 사무를 처리할 신임관계가 존재한다고 인정되는 자를 의미합니다(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16도8447 판결 배임). 반드시 제3자에 대한 대외관계에서 그 사무에 관한 권한이 존재할 것을 요하지 않습니다(대법원 2005. 3. 25. 선고 2004도6890 판결 배임).
즉,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는 반드시 공식적인 권한이 있어야만 성립하는 게 아닙니다. 회사 내에서 신뢰관계에 기초해 타인의 일을 맡아 처리하는 위치에 있으면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회사 직원이 회사 자금을 관리하거나, 가족 중 한 사람이 다른 가족의 재산을 대신 관리하는 경우처럼, 대외적으로 법적 권한이 없어도 내부적으로 ‘믿고 맡기는 관계’가 있으면 배임죄의 전제가 되는 ‘타인의 사무 처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나. 임무위배행위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란 사무의 내용, 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혹은 신의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과 사이의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행위를 말합니다(대법원 2014. 2. 13. 선고 2011도16763 판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배임수재(예비적죄명:제3자뇌물수수)).
쉽게 말해,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란 맡은 일을 충실히 해야 하는데도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회사 돈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사람이 고의로 위험한 투자를 하거나, 계약상 금지된 거래를 몰래 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결국 “믿고 맡긴 관계”를 깨뜨리는 행위가 바로 임무위배입니다.
다. 재산상 손해
배임죄에서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 때’라 함은 현실적인 손해를 가한 경우뿐만 아니라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도 포함됩니다(대법원 2011. 5. 13. 선고 2010도16391 판결 배임). 재산상 손해의 유무에 대한 판단은 법률적 판단에 의하지 아니하고 경제적 관점에서 실질적으로 판단하여야 합니다(대법원 2009. 10. 29. 선고 2009도7783 판결 업무상배임).
즉, 배임죄는 실제로 돈이 줄어들거나 재산이 빠져나간 경우뿐만 아니라, 앞으로 손해가 날 가능성이 커진 상황만 만들어도 성립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 돈을 몰래 빼서 사용하다가 아직 회사가 직접 손실을 보지는 않았더라도, 그 돈이 회수 불가능해질 위험을 만든 것만으로도 ‘재산상 손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또 손해 여부를 따질 때는 법적인 형식보다도 경제적 실질, 즉 시장에서 봤을 때 가치가 줄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라. 주관적 요건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주관적 요건으로서 임무위배의 인식과 그로 인하여 자기 또는 제3자가 이익을 취득하고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 즉 배임의 고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인식은 미필적 인식으로도 족합니다(대법원 2004. 3. 26. 선고 2003도7878 판결 외국환거래법위반·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위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쉽게 말해,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내가 맡은 일을 어기면 회사(본인)에는 손해가 가고, 나나 제3자가 이익을 얻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점이 필요합니다. 다만 여기서 ‘알고 있었다’는 게 꼭 확실한 인식일 필요는 없고,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는 정도(미필적 인식)**도 충분하다는 겁니다.
피고인이 배임죄의 범의를 부인하는 경우에는 사물의 성질상 배임죄의 주관적 요소로 되는 사실은 고의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하여 입증할 수밖에 없습니다(대법원 2006. 12. 21. 선고 2006도2684 판결 배임).
또, 피고인이 “나는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면, 검사는 직접 고의가 있었다는 증거를 잡기 어렵기 때문에, 주변 정황증거(예: 피고인의 직책, 거래 경위, 이후 결과 등)를 통해 간접적으로 고의가 있었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2. 주요 처벌사례 및 양형
가. 법정형
- 단순배임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형법 제355조 제2항)
- 업무상배임죄: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법 제356조)
-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피해액이 5억원 이상인 경우 가중처벌
나. 양형 사례
1) 징역형 선고 사례
사례 1: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3년
피고인이 피해자 회사 명의의 법인카드를 이용하여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업무상배임 사건에서, 당심에 이르러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하여 피해자가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피고인이 이전에 동종범죄로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은 없는 점 등을 고려하여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였습니다(인천지방법원 2022. 11. 11. 선고 2022노3112 판결 배임).
사례 2: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피고인들이 피해자 재단의 자금을 임의로 사용한 업무상배임 사건에서, 원심 및 당심에서 피해자 재단의 이사들이 피고인들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 의사를 표시하였고, 피고인들은 당심에서 피해금액 중 1억 2,000만 원을 지급한 점 등을 고려하여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였습니다(춘천지방법원 2023. 1. 13. 선고 2021노1042 판결 업무상배임).
사례 3: 징역 1년 6개월
피고인이 피해자 회사의 자금을 임의로 사용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배임) 사건에서, 피고인과 피해자 회사가 합의하였고 피해자 회사는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하여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였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2. 11. 3. 선고 2022노705 판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사문서위조,위조사문서행사).
2) 벌금형 선고 사례
사례: 벌금 5,000,000원
피고인이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제3자에게 처분한 배임 사건에서, 피고인이 당시 토지경계 침범을 이유로 건물철거 등을 요구받기는 하였으나 피해자는 위와 같은 사정을 알고도 토지와 함께 그 지상 건물을 매수하려 했던 점 등을 고려하여 벌금 5,000,000원을 선고하였습니다(대구지방법원 2023. 8. 31. 선고 2023노329 판결 배임).
다. 양형기준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에 따르면, 횡령·배임범죄의 경우 피해액 규모에 따라 다음과 같이 유형이 구분됩니다:
- 제1유형: 5천만원 미만
- 제2유형: 5천만원 이상 5억원 미만
- 제3유형: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
- 제4유형: 50억원 이상
각 유형별로 기본영역, 감경영역, 가중영역이 설정되어 있으며, 특별양형인자(감경요소 또는 가중요소)에 따라 권고형의 범위가 달라집니다(서울고등법원 2022. 11. 3. 선고 2022노705 판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사문서위조,위조사문서행사).
3. 다른 국가의 배임죄 규정
가.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는 배임죄를 형사처벌하지 않는 대표적인 국가입니다. 주요입법례를 찾아도 인도네시아와 같이 배임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흔치 않습니다(장순필, 『인도네시아법』, 박영사(2020년), 51-53면).
인도네시아에서는 회사에게도 범죄능력 및 형벌능력이 인정되며 주식회사도 형사범으로써 벌금, 허가취소, 재산 몰수 및 해산 등의 처벌을 받을 수 있으나, 배임죄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닙니다(장순필, 『인도네시아법』, 박영사(2020년), 51-53면).
나. 기타 국가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배임죄 또는 이와 유사한 범죄를 형사처벌하고 있습니다. 다만, 배임죄의 구성요건, 처벌범위, 법정형 등은 국가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4. 배임죄 폐지의 장/단점
정부가 배임죄 폐지를 추진하는 주된 이유는 배임죄가 규정상 추상적이고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누적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기업 경영자는 의사결정에 대한 형사처벌의 불확실성, 경미한 의무 위반에 대해서도 수사와 처벌이 남용되는 문제, 그리고 이로 인해 경영 혁신과 투자 의지가 저해되는 부작용을 호소해 왔습니다.
반면, 배임죄를 폐지할 경우의 부정적 영향은 아래와 같습니다.
가. 재산권 보호의 공백
배임죄가 폐지될 경우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여 본인에게 재산상 손해를 가하는 행위에 대한 형사적 제재가 불가능해집니다. 이는 재산권 보호에 있어 중대한 공백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특히 횡령죄는 재물을 객체로 하는 반면, 배임죄는 재산상 이익을 객체로 한다는 점에서 배임죄가 폐지되면 재물 이외의 재산상 이익에 대한 침해행위는 형사처벌이 불가능해집니다.
나. 신임관계 보호의 약화
배임죄는 타인과의 신임관계를 기초로 하는 범죄입니다. 배임죄가 폐지되면 신임관계에 기초한 사무처리에 있어서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하는 행위에 대한 형사적 제재가 불가능해지므로, 신임관계 보호가 크게 약화될 것입니다.
다. 회사 경영의 투명성 저하
회사의 임직원이 회사에 손해를 가하는 행위에 대한 형사적 제재가 불가능해지면, 회사 경영의 투명성이 저하되고 주주 및 채권자 등 이해관계인의 이익이 침해될 우려가 있습니다.
특히 상법 제622조의 특별배임죄가 폐지되면 회사 임원의 배임행위에 대한 형사적 제재가 불가능해지므로, 회사 지배구조의 건전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습니다(임재연, 남궁주현, 『회사소송[제4판]』, 박영사(2021년), 259-260면, 홍복기 외 7인, 『회사법: 사례와 이론[제7판]』, 박영사(2021년), 758면).
라. 금융거래 질서의 혼란
금융기관 임직원의 부정대출 등 배임행위에 대한 형사적 제재가 불가능해지면, 금융거래 질서가 크게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는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협하고 국민경제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마. 민사적 구제수단의 한계
배임죄가 폐지되더라도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는 가능하지만, 민사적 구제수단만으로는 배임행위를 효과적으로 억제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배임행위자가 무자력인 경우 실질적인 피해회복이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민사소송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므로, 피해자가 민사적 구제수단만으로는 충분한 보호를 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5. 결론
형사책임을 폐지하는 것은 과도한 형벌을 줄이고, 기업 활동의 자유와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대신 형벌의 억지력이 사라지면서 피해자 구제는 소송 부담으로 전가되고, 대체 제도의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제재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우려입니다. 결국 “형사처벌 대신 돈으로 책임지게 한다”는 구조가 사회적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