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관계
원고 A회사는 석유화학 제품을 제조·판매하는 회사이고, 피고 B는 A회사 영업팀 소속 대리급 직원이다.
B는 회사의 명시적 위임이나 대표권을 부여받지 않았음에도, 거래처 C와 “석유화학 제품 100톤 공급계약”을 체결하였다. 계약서에는 A회사의 상호와 직인을 사용하였고, 거래처 C는 B가 회사 영업을 전담하는 직원임을 신뢰하여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후 A회사는 “B는 계약 체결 권한이 없으므로 무효”라며 이행을 거절하였다. 이에 거래처 C는 상법상 표현대리 규정에 따라 계약의 효력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쟁점
- 회사 직원이 권한 없이 체결한 계약이 회사에 효력이 있는가?
- 상법상 표현대리가 성립하려면 어떤 요건이 필요한가?
1. 기본 개념 정리
가. 대리권이란?
대리권이란 다른 사람(본인)을 대신하여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합니다. 회사 직원이 회사를 대신해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가 핵심입니다.
나. 대리권의 종류
- 유권대리: 실제로 대리권이 있는 경우
- 무권대리: 대리권이 없는 경우
- 표현대리: 대리권은 없지만 상대방이 대리권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2. 구체적인 판단 기준
가. 유권대리가 인정되는 경우
직원에게 실제로 회사를 대리할 권한이 있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 회사가 직원에게 명시적으로 계약 체결 권한을 부여한 경우
- 직원의 직책상 당연히 그러한 권한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대표이사.대표등)
나. 표현대리가 인정되는 경우
표현대리란 실제로는 대리권이 없지만, 대리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외관이 형성되어 이를 신뢰한 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해 본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제도입니다 (민법 제125조, 제126조).
직원에게 실제 대리권은 없지만, 회사가 상대방에게 대리권이 있는 것처럼 표시한 경우입니다.
민법 제125조(대리권수여의 표시에 의한 표현대리)에 따르면, “제삼자에 대하여 타인에게 대리권을 수여함을 표시한 자는 그 대리권의 범위내에서 행한 그 타인과 그 제삼자간의 법률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성립요건:상대방의 선의·무과실/본인의 대리권 수여 표시/표시된 대리권 범위 내의 행위
민법 제126조 (권한을 넘은 표현대리)에서는, “대리인이 그 권한외의 법률행위를 한 경우에 제삼자가 그 권한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본인은 그 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3. 실제 판례 사례들
가. 표현대리가 인정된 사례
부산지방법원 2020. 1. 10. 선고 2019나51918 판결에서는 다음과 같은 경우 표현대리를 인정했습니다:
“D은 이 사건 공사 현장에서 현장소장의 직함을 사용하며 피고가 수행하는 공사를 지휘·감독하였던 점, D이 사용하던 명함에도 지위가 피고의 이사로 표시되어 있었던 점, 피고 대표이사도 건축주 측 직원과 대화하면서 D을 피고의 ‘직원’이라고 말하였던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는 상법 제124조의 명의대여자책임 또는 민법 제125조의 표현대리책임에 따라 원고에게 이 사건 공사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회사가 직원에게 현장소장이라는 직함과 명함을 사용하게 하고, 대표이사가 그를 회사 직원이라고 소개했다면, 거래상대방이 그 직원에게 계약 체결 권한이 있다고 믿을 만했으므로 회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 표현대리가 부정된 사례
서울서부지방법원 2019. 6. 13. 선고 2018가합40914 판결에서는 다음의 경우에서 표현대리 성립을 부정했습니다:
“이 사건 확인서 작성일인 2015. 6. 18. 당시 피고 회사의 대표이사는 K이 아닌 M인 사실이 인정되고, K에게 별도로 대표권 내지 대리권이 수여되었음을 인정할 만한 자료가 제출된 바도 없으므로, K은 피고 회사를 대표 내지 대리하여 이 사건 약정을 체결할 권한이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
단순히 회사 직원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대리권이 인정되지 않으며, 실제 대표이사가 아닌 사람이 체결한 계약은 회사에 효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4. 결론
위 사례에서 직원에게 대리권이 있다고 인정될지 살펴보면,
가. 민법 제125조 적용 가능성
본 사례에서 A회사가 B에게 명시적으로 대리권을 수여한 표시가 있었는지가 핵심입니다.
긍정적 요소:
- B가 A회사의 상호와 직인을 사용하여 계약 체결
- B가 영업팀 소속으로 영업업무를 담당
- C가 B를 회사의 영업 전담 직원으로 신뢰
부정적 요소:
- A회사의 명시적 위임이나 대표권 부여 없음
- 단순한 영업팀 소속 대리급 직원
나. 민법 제126조 적용 가능성
B에게 기본적인 영업 관련 대리권이 있었다면, 그 권한을 넘어선 계약 체결에 대해 상대방이 정당한 신뢰를 가졌다면 제126조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판단 기준:
- B의 직책과 통상적인 권한 범위
- 100톤 규모 계약이 B의 권한 범위를 벗어나는지 여부
- C가 B에게 그러한 권한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결론적으로는,
1) 표현대리 성립 가능성
성립 어려움: 단순히 영업팀 소속 대리급 직원이라는 사실만으로는 100톤 규모의 공급계약을 체결할 권한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대법원 1984. 7. 24. 선고 83다카1819 판결에 따르면:
“표현대리 제도는 대리권이 있는 것 같은 외관이 생긴데 대해 본인이 민법 제125조, 제126조 및 제129조 소정의 원인을 주고 있는 경우에 그러한 외관을 신뢰한 선의 무과실의 제3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그 무권대리 행위에 대하여 본인이 책임을 지게 하려는 것”
즉, 영업팀 대리급직원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외관상 회사를 대표하여 계약을 체결할 권한이 있는것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래의 사항을 추가적으로 고려할 필요는 있습니다.
- A회사가 B의 상호·직인 사용을 실제로 허락했는지
- B의 과거 영업 관행과 회사의 묵인 여부
- 계약 규모가 B의 통상적 권한 범위를 벗어나는지
- C의 신뢰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추가)실무상 주의사항
가. 회사 입장에서
- 직원에게 대리권을 부여할 때는 명확한 권한 범위를 정해야 합니다
- 직함이나 명함 사용을 허락할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표현대리 책임 발생 가능)
- 대리권이 없는 직원의 행위에 대해서는 즉시 상대방에게 통지해야 합니다
나. 거래상대방 입장에서
단순히 명함이나 직함만으로 대리권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계약 체결 전에 상대방 직원의 대리권을 확인해야 합니다
중요한 계약의 경우 회사 대표이사나 권한 있는 임원과 직접 계약하는 것이 안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