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는 본인의 동의 없이 수집할 수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회사나 기관은 어떤 형태로든 동의를 받기 위해 ‘개인정보 수집·이용 동의서’를 요구하죠.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동의가 불가능하거나, 사실상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예컨대, 산업현장에서의 안전관리 목적, 고객 응대 녹취, 또는 보안 강화를 위한 영상기록 등은 ‘동의 없이 수집할 수 없을까?’ 하는 의문을 남깁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일부 예외를 인정합니다. ‘동의 없이도 수집 가능한 경우’를 법으로 열거해 놓고, 그중 하나가 바로 ‘정당한 이익’에 근거한 처리입니다(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6호). 하지만 이 조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위법과 적법은 극명하게 갈립니다. 과연 어떤 경우에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까요?
판례를 기준으로 알아보겠습니다.
1.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6호의 의의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6호는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로서 명백하게 정보주체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경우(이 경우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과 상당한 관련이 있고 합리적인 범위를 초과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한한다)”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2. 대법원 판례
1) 대법원 2023. 6. 29. 선고 2018도1917 판결 (업무방해)
가. 사실관계
- 회사가 시설물 보안 및 화재 감시 목적으로 공장에 CCTV 51대 설치
- 근로자들의 동의나 노사협의회 협의 없이 설치
- 노조원들이 CCTV 카메라에 검정색 비닐봉지를 씌워 촬영 방해
나. 판결요지
개인정보의 수집·이용에 관한 규정은 정보주체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제한에 대한 근거가 되므로, 개인정보처리자가 개인정보를 수집함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는 경우가 원칙적인 모습이 되어야 하고, 정보주체의 동의가 없는 개인정보의 수집은 예외적으로만 인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제15조 제1항 제6호의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로서 ‘명백하게 정보주체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의 구체적인 내용과 성격, 권리가 제한되는 정보주체의 규모, 수집되는 정보의 종류와 범위,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지 못한 이유, 개인정보처리자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대체가능한 적절한 수단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다. 구체적 판단기준
이 사건에서 CCTV 설치가 제15조 제1항 제6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이유:
- 다수 근로자들의 직·간접적인 근로 현장과 출퇴근 장면을 찍고 있어 권리가 제한되는 정보주체가 다수인 점
- 직·간접적인 근로 공간과 출퇴근 장면을 촬영당하는 것은 정보주체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이 될 수 있는 점
- CCTV 설치공사를 시작할 당시 근로자들의 동의가 없었던 점
- 회사가 근로자들이 현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주간에는 시설물 보안 및 화재 감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자료가 없는 점
2) 대법원 2017. 4. 13. 선고 2014도7598 판결 (개인정보보호법위반)
가. 사실관계
- 대학 학과장이 학생에 대한 고소장에 학생의 주소, 휴대전화번호 기재
- 업무상 수집·보유하고 있던 개인정보를 고소장 작성에 이용
나. 판결요지
원심이 피고인의 행위가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6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로서 명백하게 정보주체의 권리보다 우선하며,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과 상당한 관련이 있고, 합리적인 범위를 초과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나아가 피고인의 행위는 긴급성, 보충성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
3. 하급심 판례
1) 제15조 제1항 제6호 적용을 인정한 사례
가. 서울동부지방법원 2023. 6. 9. 선고 2022나20179 판결 (손해배상)
- 사실관계: 해고무효확인소송에서 원고의 과거 근무경력에 관한 개인정보 수집·이용
- 판결요지: 피고가 해고무효확인소송에서 원고의 과거 근무경력에 관한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한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6호에 의해 허용되는 경우로 볼 수 있다고 판단
나. 부산지방법원 2023. 4. 18. 선고 2022가단335103 판결
- 사실관계: 직원의 근무지 무단이탈 확인을 위한 CCTV 이용
- 판결요지: 피고가 다른 직원들로부터 원고의 근무지 무단이탈 정황을 확인한 후 원고가 이미 그 존재를 잘 알고 있는 CCTV를 통해 원고의 근무지 무단이탈을 확인한 것은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을 달성하기 위하여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고 이러한 피고의 이익은 피고가 확인한 정보의 범위 등을 고려할 때 원고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 서울행정법원 2025. 4. 10. 선고 2024구합67368 판결
- 사실관계: 장애인 거주시설 CCTV 설치·운영
- 판결요지: 이 사건 CCTV 설치·운영은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로 명백하게 정보주체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경우로서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과 상당한 관련이 있고 합리적인 범위를 초과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해당하여 허용된다
라. 수원지방법원 2023. 4. 21. 선고 2022나83175 판결 (손해배상)
- 사실관계: 아파트 관리주체가 형사사건 및 민사사건 증거로 사진 수집·제출
- 판결요지: E 또는 피고가 이 사건 사진을 수집하여 관련 형사사건 및 민사사건에 증거로 제출한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6호에서 정한 ‘이용’으로서 정당하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신의칙을 위반하였다거나 권리남용이라고 볼 수 없다
2) 제15조 제1항 제6호 적용을 부정한 사례
가. 서울행정법원 2017. 7. 14. 선고 2014구합17746 판결 (해임처분취소)
- 사실관계: 공무원이 고소장에 피해자의 주소, 휴대전화번호 기재
- 판결요지: 피고인이 업무상 수집·보유하고 있던 피해자의 주소, 휴대전화번호를 고소장에 기재한 행위가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6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로서 명백하게 정보주체의 권리보다 우선하며,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과 상당한 관련이 있고, 합리적인 범위를 초과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나. 서울북부지방법원 2014. 5. 29. 선고 2014노202 판결 (개인정보보호법위반)
- 사실관계: 학과장이 학생에 대한 고소장에 학생의 주소, 휴대전화번호 기재
- 판결요지: 피고인이 G을 고소함에 있어서, 피고인이 개인정보처리자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이미 알고 있던 G의 이름 이외에, G의 주소, 휴대전화번호 등의 개인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기는 어렵고, G의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G을 고소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피고인의 이익이 G의 권리보다 명백히 우선한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위와 같은 이유로도 피고인의 위 행위가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6호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다. 서울북부지방법원 2014. 2. 7. 선고 2013고정2030 판결 (개인정보보호법위반)
- 사실관계: 고소장 작성시 개인정보 이용
- 판결요지: 피고인이 G을 고소함에 있어서 G의 주소, 휴대전화번호 등의 개인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기는 어렵고, G의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G을 고소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피고인의 이익이 G의 권리보다 명백히 우선한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피고인의 위 행위가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6호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라. 전주지방법원 2015. 2. 6. 선고 2014고정766 판결 (개인정보보호법위반)
- 사실관계: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 신청시 근로자 개인정보 이용
- 판결요지: 피고인은 적어도 이 사건 신청에 있어서 제3채무자인 피해자들의 성명, 피압류채권의 종류와 수액 및 피해자들의 근무장소인 합자회사 D회사의 주소 등을 기재하는 방법으로도 제3채무자를 특정하여 이 사건 신청을 할 수 있었으므로 피고인이 합자회사 D회사의 대표사원으로서 업무상 수집·보유하고 있던 피해자들의 개인 주소, 주민등록번호를 이 사건 신청 과정에서 이용한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6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
마. 대전지방법원 2018. 1. 26. 선고 2017고정881 판결 (개인정보보호법위반)
- 사실관계: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개인정보 게시물 배포·부착
- 판결요지: 피고인이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각 게시물을 배포하고 부착한 것을 두고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6호가 규정하는 명백히 정보주체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경우라거나 사회상규에 반하지 아니하는 행위로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되지 않는다
바. 청주지방법원 2016. 9. 30. 선고 2016노304 판결 (개인정보보호법위반)
- 사실관계: 개인정보 이용 관련
- 판결요지: 이는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 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로서 명백하게 정보주체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6호가 정한 허용된 개인정보의 이용으로, 형법 제20조의 ‘법령에 의한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
사. 부산지방법원 2022. 9. 2. 선고 2022노103 판결 (개인정보보호법위반)
- 사실관계: 조합 대의원회의에서 영상 상영
- 판결요지: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6호에 따른 개인정보의 이용 요건에 대해 상세한 검토를 거쳐 해당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판단
4. 판례상 판단기준 종합
가. 대법원이 제시한 종합적 고려요소
-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의 구체적인 내용과 성격
- 권리가 제한되는 정보주체의 규모
- 수집되는 정보의 종류와 범위
-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지 못한 이유
- 개인정보처리자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대체가능한 적절한 수단이 있는지 여부
나. 적용 인정 경향
- 소송 관련 증거 수집·제출 목적
- 근로자 관리 목적(단, 제한적)
- 시설 보안 목적(단, 엄격한 요건 하에)
- 장애인 등 보호가 필요한 상황
다. 적용 부정 경향
- 고소장 작성시 개인정보 기재(대안적 수단 존재)
- 광범위한 개인정보 수집·이용
- 다수의 정보주체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
- 대체수단이 명백히 존재하는 경우
5. 실무상 시사점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6호의 적용은 매우 제한적이며, 법원은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는 것이 원칙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동의 없는 개인정보 처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아래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명백한 우선성: 개인정보처리자의 이익이 정보주체의 권리보다 명백하게 우선해야 함
–상당한 관련성: 정당한 이익과 상당한 관련이 있어야 함
–합리적 범위: 합리적인 범위를 초과하지 않아야 함
–대체수단 부존재: 다른 적절한 수단이 없어야 함
–종합적 판단: 위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신중한 판단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