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인의 무단 전세계약 체결과 집주인의 책임

집주인이 관리인에게 월세계약을 맡겼고, 계약을 맡은 관리인은 마치 본인이 집주인양 임차인과 전세계약을 체결하여 전세보증금을 편취하였다. 이 경우 집주인이 임차인에게 책임을 져야할까?

가. 원칙적 책임 없음

집주인이 관리인에게 월세계약 체결 권한만을 위임했음에도 관리인이 권한을 초과하여 전세계약을 체결한 경우, 원칙적으로 집주인은 임차인에게 책임을 부담하지 않습니다. 이는 무권대리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민법 제130조).

나. 예외적 책임 인정 사유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집주인이 임차인에게 책임을 져야 할 수 있습니다:

1) 표현대리 성립 시

대리권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는 원칙적으로 본인에게 효력이 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이 관리인에게 대리권을 수여한 것으로 표시하거나, 관리인의 권한 초과 행위에 대해 임차인이 정당한 이유로 믿을 만한 상황이 있었다면 표현대리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129조).

예를 들어, 관리인이 과거 수차례에 걸쳐 집주인을 대신하여 임대차계약을 체결해 왔고, 그 과정에서 집주인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경우, 임차인 입장에서는 관리인이 일정한 범위 내의 대리권을 가지고 있다고 오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정이 있다면, 임차인이 관리인이 월세가 아닌 전세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본인의 권한을 벗어났다는 점을 인식하기 어려웠다고 평가될 수 있으며, 이는 표현대리의 요건 중 하나인 ‘정당한 이유 있는 신뢰’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또한, 건물에 대한 월세관리 업무를 일상적으로 처리해온 관리인이 임대인의 인감 도장, 위임장 등까지 관리하고 있었던 경우, 임차인이 관리인의 권한 범위 내에서 전세계약까지 체결할 수 있다고 믿은 데 합리성(정당성)이 있는 사정이 있을 경우 임대인은 표현대리책임을 집니다.

결론적으로,
관리인이 대리권의 범위를 초과해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해 집주인이 일정한 사정을 제공하거나, 임차인이 신뢰할 수 있는 정당한 사정이 있었다면, 집주인에게 계약의 효력이 미칠 수 있습니다(표현대리 성립).

2) 사용자책임 성립 시

집주인과 관리인 사이에 사용관계가 인정되고, 관리인의 불법행위가 사무집행과 관련하여 발생한 경우 집주인이 사용자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민법 제756조).

“피고들이 그들이 매수취득한 이 사건 연립주택에 관리인을 두기로 하고 위임장을 작성하여 소외(갑)에게 교부하고 소외(갑)은 소외(을)에게, 소외(을)은 소외(병)에게 위 건물의 관리를 부탁하여 소외(병)이 위 건물에 입주, 이를 관리케 된 것이라면 피고들과 소외(병)사이에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다하여도 소외(병)이 위 건물을 관리하는 사무는 그 소유자인 피고들을 위한 것이므로 피고들이 위와 같이 순차로 관리를 부탁하는 과정을 예견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제3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는 피고들은 소외(병)과 적어도 외관상 지휘감독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아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면치 못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대법원 1982. 9. 14. 선고 81다447 판결).

즉, 비록 집주인이 최종적으로 계약을 체결한 관리인과 직접적인 계약관계를 맺지 않았더라도, 그 관리인이 사실상 주택의 유지·관리 업무를 집주인의 이익을 위해 수행하고 있었다면, 집주인은 외형상 사용자로 간주되어 민법 제756조에 따른 사용자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특히 임대차계약과 같은 외부적 법률관계에서 제3자인 임차인이 집주인의 지시·감독 하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자와 계약을 체결한 경우, 그 계약의 적법성 여부와는 별도로 해당 관리인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해 집주인이 사용자로서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결국, 집주인이 대리권의 범위를 초과한 전세계약에 대해 계약상 책임은 지지 않더라도, 그로 인해 임차인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라면, 사용자로서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은 별도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이때는 불법행위가 ‘사무집행에 관련하여’ 이루어졌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됩니다.

3) 추인이 있는 경우

집주인이 관리인의 전세계약 체결 행위를 사후에 추인한 경우에는 처음부터 유효한 대리행위가 됩니다 (민법 제130조).


예를 들어, 집주인이 관리인이 체결한 전세계약의 내용을 인지한 후, 임차인으로부터 보증금 전액을 직접 수령하거나, 계약서에 서명 또는 날인하는 등 명시적·묵시적으로 해당 계약 내용을 수용한 행위를 한 경우, 이는 사후적 추인으로 보아 당초의 무권대리행위가 유효한 대리행위로 전환됩니다.

따라서, 비록 관리인이 대리권 없이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하더라도, 집주인이 그 계약내용을 인식한 상태에서 이행에 협조하거나 계약 효과를 수용했다면,
그 시점부터는 적법한 계약으로 확정되고, 집주인도 임대인으로서의 권리·의무를 부담하게 됩니다.

다. 실무상 고려사항

1) 임차인의 주의의무

임차인도 계약 체결 시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관리인의 대리권 범위를 확인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면 과실상계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판례는 “갑이 공인중개사 을과 병의 중개에 따라 등기부등본상 소유자가 망인인 주택에 관하여 망인의 장남 정의 대리인이라고 주장하는 정의 아들 무와 정 명의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임대차보증금을 지급하였다가 손해를 입자 한국공인중개사협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갑의 부주의를 과실상계 사유로 전혀 참작하지 않은 원심판결에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2. 11. 29. 선고 2012다69654 판결).

2) 관리인의 형사책임

이 경우 관리인은 집주인에 대한 업무상배임죄와 임차인에 대한 사기죄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라. 결론

집주인이 관리인에게 월세계약 권한만을 위임했다면, 관리인의 전세계약 체결은 무권대리에 해당하여 원칙적으로 집주인은 임차인에게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다만, 표현대리가 성립하거나 사용자책임이 인정되는 등의 예외적 사정이 있다면 집주인이 책임을 져야 할 수 있으므로,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른 개별적 검토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