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빼낸 문서, 증거로 쓸수 있나요?

직장 내 괴롭힘, 부당해고, 퇴직금 누락…
이런 문제로 소송을 준비하던 직원이 회사 내부 문서를 몰래 복사해서 증거로 법원에 냈다고 가정해보죠.

그런데 회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문서, 무단으로 유출된 겁니다. 위법수집 증거니까 배제해 주세요.”

과연 법원은 이 문서를 받아줄까요?

위법수집증거, 흔히 “위수증”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1.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의 의의

가. 개념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이란 위법한 절차에 의하여 수집된 증거, 즉 위법수집증거(illegally obtained evidence)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법칙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수사기관이나 당사자가 법을 어기면서 증거를 수집한 경우, 그 증거가 아무리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중요하더라도 재판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원칙입니다.

나. 법적 근거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명시하여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

다. 입법 취지

이 법칙은 위법한 압수·수색을 비롯한 수사과정의 위법행위를 억제하고 재발을 방지함으로써 국민의 기본적 인권 보장이라는 헌법 이념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법원 2019. 7. 11. 선고 2018도20504 판결). 헌법 제12조는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압수·수색에 관한 적법절차와 영장주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으며, 형사소송법은 이를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2. 위법수집증거 배제의 판단 기준

가. 중대한 위법

모든 절차 위반이 증거배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중대한 위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증거능력이 배제됩니다 . 중대한 위법이란 ‘due process의 기본이념에 반하는 경우’ 또는 ‘정의감에 반하고 문명사회의 정의감에 충격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박현준, 한상훈, 『경찰과 형사사법』, 박영사(2020년), 221-222면).

나. 구체적·개별적 판단

위법수집증거 배제 여부는 침해된 법익과 위법의 정도를 고려하여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절차 조항의 취지와 그 위반의 내용 및 정도, 구체적인 위반 경위와 회피가능성, 절차 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권리 또는 법익의 성질과 침해 정도 및 피고인과의 관련성, 절차 위반 행위와 증거수집 사이의 인과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대법원 2023. 6. 1. 선고 2018도18866 판결).

3. 2차적 증거(독수의 과실 이론)

가. 개념

독수의 과실이론(fruit of the poisonous tree doctrine)이란 위법하게 수집된 제1차 증거(독수)에 의하여 발견된 제2차 증거(과실)의 증거능력도 배제하는 이론입니다.

나. 적용 원칙

수사기관이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물론, 이를 기초로 하여 획득한 2차적 증거 역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대법원 2023. 6. 1. 선고 2018도18866 판결).

다. 예외적 증거능력 인정

다만 수사기관의 절차 위반 행위가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증거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것이 형사 사법 정의를 실현하려고 한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예외적인 경우라면, 법원은 그 증거를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23. 6. 1. 선고 2018도18866 판결).

2차적 증거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1차적 증거수집과 관련된 모든 사정들과 함께, 1차적 증거를 기초로 하여 다시 2차적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발생한 모든 사정들까지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주로 인과관계 희석 또는 단절 여부를 중심으로 전체적·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합니다 (대법원 2023. 6. 1. 선고 2018도18866 판결).

4. 형사소송에서의 취급

가. 원칙적 배제

형사소송에서는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에 따라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원칙적으로 증거로 할 수 없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

나. 당사자 동의와 무관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위법수집증거를 증거로 함에 동의하였다고 하더라도,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선언한 영장주의의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당사자의 동의에 의하여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예외를 만든다면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의 실효성을 위태롭게 할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 적용 범위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은 수사기관이 위법하게 증거를 수집한 경우에만 적용됩니다. 따라서 개인이 타인의 주거에 침입하여 수집한 증거를 검사에게 제출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이 법칙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다만, 수사기관이 피고인 아닌 자를 상대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원칙적으로 피고인에 대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습니다.

5. 민사소송에서의 취급

가. 법적 규정의 부재

민사소송법에는 위법수집증거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명문의 규정이 없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와 같은 규정이 민사소송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 판례의 태도

판례는 “민사소송법에는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규정이 없고 형사소송법이 정한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이 민사소송에 유추된다고 볼 수도 없으며, 갑 제5호증이 그 증거능력을 배제할 정도로 위법하게 수집되었다고 보이지도 않으므로” 증거능력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수원지방법원 2021. 07. 14 선고 2020나77121 판결).

다. 실무상 경향

민사재판 실무에서는 자유심증주의를 근거로 위법수집증거의 증거능력을 대체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다만, 증거수집과정이 위법하더라도 모든 증거자료를 토대로 법관이 임의로 심증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증거능력이 있는 증거방법에 대해 적법한 증거조사를 거친 증거자료를 토대로 심증을 형성하는 것이 올바른 자유심증주의라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한충수, 『민사소송법[제3판]』, 박영사(2021년), 445-446면).

6. 실제 사례

가. 형사사건 사례

1) 압수·수색영장 관련성 위반 사례

서울남부지방법원 판사가 발부한 압수·수색·검증영장에 기하여 압수한 메모지 2장이 영장 기재 혐의사실과 무관한 별개의 증거를 압수한 것으로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습니다 (대법원 2023. 6. 1. 선고 2018도18866 판결).

이 사건에서 법원은 압수·수색영장에 기재한 혐의사실과 관련되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서 압수·수색영장의 혐의사실과 사이에 객관적, 인적 관련성이 인정되는 것만 압수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2) 휴대전화 임의제출 및 전자정보 탐색 사례

피고인이 아동복지법위반 범행과 관련된 정보에 한하여 휴대전화를 탐색하는 것에 동의하였으나, 수사기관이 이를 넘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관련 정보까지 탐색한 사례에서, 법원은 동의 범위를 벗어난 전자정보는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하고, 이에 기초한 2차적 증거들도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부산고등법원 (울산) 2023. 6. 15. 선고 2022노125 판결).

3) 참고인 위법 임의동행 사례

참고인을 위법하게 임의동행하여 수집한 증거에 대하여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이 적용된 사례가 있습니다 (청주지방법원 2009. 6. 25. 선고 2009노132 판결).

법원은 “참고인의 경우에는 수사기관이 수사단계에서 그 신병을 강제로 확보할 수 있는 강제구인과 같은 수단이 형사소송법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형사소송법의 취지에서 본다면, 수사의 협조자에 불과한 참고인에 대한 수사에서는 범죄혐의가 있는 피의자의 경우보다 임의성 내지 당사자의 자발성 요건이 더욱 엄격히 요구되는 것이고 위법수사 억제를 위해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을 적용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고 판시하였습니다.

4) 압수목록 미교부 사례

수사기관이 압수수색검증영장을 집행하면서 피고인에게 압수조서와 압수목록을 작성하지 않고 피압수자에게 압수목록을 교부하지 않아 형사소송법을 위반한 사례에서, 법원은 “압수목록의 교부가 피압수자 등이 압수물에 대한 환부·가환부신청을 하거나 압수처분에 대한 준항고를 하는 등 권리행사절차를 밟는 가장 기초적인 자료가 되는 점에서 압수·수색 후 압수목록의 미교부는 영장주의 및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적법절차원칙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대구지방법원 2022. 6. 10. 선고 2021노1868 판결).

나. 민사사건 사례

1) 건물인도 청구 사건

건물인도 청구 사건에서 법원은 “민사소송법에는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규정이 없고 형사소송법이 정한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이 민사소송에 유추된다고 볼 수도 없으며, 갑 제5호증이 그 증거능력을 배제할 정도로 위법하게 수집되었다고 보이지도 않으므로” 증거능력을 인정하였습니다 (수원지방법원 2021. 07. 14 선고 2020나77121 판결).

2) 행정소송 사례

자동차운전면허취소처분취소 사건에서 법원은 “행정소송법에는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의 증거능력 배제에 관한 규정이 없고, 행정소송법 제8조 제2항에 의해 준용되는 민사소송법에도 그에 관한 규정이 없으며, 검사에게 진실의무를 부여하고 피고인에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실질적 무기대등을 통해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형사소송과 대등한 당사자 사이의 공방을 전제로 하는 민사소송 및 행정소송을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으므로, 형사소송의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이 행정소송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부산고등법원 (창원) 2014. 11. 20 선고 2014누10830 판결).

7. 실무상 유의사항

1) 증거수집 과정의 기록화

증거를 수집할 때는 그 과정을 상세히 기록해 두어야 합니다. 나중에 증거능력이 다투어질 경우, 적법한 절차에 따라 증거를 수집했음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최신 판례 동향 파악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에 관한 판례는 계속 발전하고 있으므로, 최신 판례 동향을 지속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특히 전자정보, SNS 등 새로운 형태의 증거에 대한 판례가 축적되고 있으므로 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3) 사전 법률 자문

증거수집 방법이 적법한지 불확실한 경우에는 사전에 법률 자문을 받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재판에서 사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증거수집 과정에서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