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상금 약정이 오히려 손해배상청구를 막을 수 있다? 지체상금의 함정

기업 간 계약서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조항이 있습니다.

바로 지체상금 조항입니다.

“계약상대방이 납품기한을 지체한 경우, 지체일수 1일당 계약금액의 1,000분의 1을 지체상금으로 지급한다.”

대부분의 기업은 이 조항을 상대방의 납기 준수를 압박하기 위한 제재 조항으로 생각합니다. 납품이 늦어지면 지체상금을 받고, 실제 손해가 더 크면 그 손해도 별도로 청구할 수 있다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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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상은 다릅니다.

지체상금 약정이 오히려 손해배상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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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체상금 약정의 법적 성격: 손해배상액의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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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제398조 제1항은 당사자가 채무불이행에 관한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같은 조 제4항은 위약금 약정을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합니다 (민법 제398조 제1항, 제4항).

대법원과 하급심은 공사도급계약을 비롯한 각종 계약에서 지체상금 약정이 수급인 또는 공급자의 이행지체로 인한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것이라고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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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배상액의 예정 제도는 손해의 발생 사실과 손해액에 대한 증명의 곤란을 덜고 분쟁을 미리 방지하여 법률관계를 간편하게 해결하려는 목적에서 마련된 것입니다. 따라서 채권자는 실제 손해액을 일일이 증명하지 않고도 약정된 지체상금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납품이 20일 지연되어 계약서에 따라 산정한 지체상금이 3,000만 원이라면, 발주자는 구체적인 손해액 증명 없이 3,000만 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채권자에게 유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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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실제 손해가 지체상금을 초과하더라도 초과분 청구는 원칙적으로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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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배상액의 예정은 분쟁을 예정액으로 종결하려는 약정입니다. 따라서 별도의 특약이 없는 한,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입은 통상손해는 물론 특별손해까지도 예정액에 포함되고, 채권자의 실제 손해가 예정액을 초과하더라도 그 초과분을 따로 청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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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공급업체의 납품 지연으로 다음과 같은 손해가 발생했다고 가정합니다.

손해 항목금액
생산라인 가동 중단 손해5억 원
거래처에 지급한 위약금2억 원
긴급 대체조달 비용1억 원
매출 감소 및 영업이익 상실3억 원
합계11억 원

계약에 따라 산정되는 지체상금이 5,000만 원이고 계약서에 초과손해 청구에 관한 별도 규정이 없다면, 발주자는 원칙적으로 5,000만 원을 넘는 금액을 청구하기 어렵습니다. 지체상금 조항을 두었다는 이유로 오히려 10억 원이 넘는 손해를 배상받지 못하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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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특별손해도 지체상금 예정액에 포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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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은 생산 중단 손해나 거래처에 지급한 위약금처럼 특수한 사정에서 비롯된 손해는 지체상금과 별도로 청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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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제393조 제2항은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는 채무자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하여 배상책임이 있다고 규정합니다 (민법 제393조 제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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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체상금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해석되는 경우, 납기 지연으로 발생한 통상손해뿐 아니라 특별손해도 원칙적으로 예정액 안에서 처리됩니다. 특약이 없다면 특별손해라는 이유만으로 지체상금을 초과하여 청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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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체상금으로 제한되지 않는 손해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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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상금 약정이 있다고 하여 모든 손해배상청구가 제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지체상금 약정이 어떠한 채무불이행과 손해를 대상으로 하는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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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지체상금 약정이 공사완성 지연으로 인한 손해만을 예정한 것이라면, 부실시공 등 별개의 채무불이행으로 발생한 손해까지 지체상금으로 제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지체상금 조항과 별도로 계약 해제·해지에 따른 손해배상 조항이 존재한 점도 중요하게 고려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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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다음과 같은 손해는 계약서 문언과 손해의 발생 원인에 따라 지체상금과 별도로 청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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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체상금 약정이 있으므로 모든 손해배상청구가 제한된다”거나, 반대로 “지체상금과 실제 손해는 언제나 별도로 청구할 수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지체상금 조항의 문언, 다른 손해배상 조항과의 관계, 해당 손해가 지연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 다른 계약위반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를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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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체상금이 과다한 경우 법원이 감액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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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상금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해당하는 경우, 그 금액이 부당히 과다하면 법원은 민법 제398조 제2항에 따라 적당히 감액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398조 제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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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부당히 과다한 경우’란 채권자와 채무자의 각 지위, 계약의 목적 및 내용,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동기, 채무액에 대한 예정액의 비율, 예상 손해액의 크기, 그 당시의 거래관행 등 모든 사정을 참작하여 일반 사회관념에 비추어 그 예정액의 지급이 경제적 약자의 지위에 있는 채무자에게 부당한 압박을 가하여 공정성을 잃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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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지체상금의 과다 여부는 지체상금률이 아닌 지체상금 총액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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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액 규정은 강행규정으로서, 당사자 간 합의로 감액을 배제하는 약정은 효력이 없습니다 . 법원은 당사자의 주장이 없더라도 직권으로 감액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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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자 입장에서는 지체상금이 과다하다는 이유로 감액될 경우 실제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줄어들 수 있으므로, 지체상금률을 지나치게 높게 설정하는 것이 반드시 유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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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계약서에 초과손해 청구권을 명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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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기 지연으로 거액의 손해가 발생할 수 있는 계약이라면, 단순히 지체상금률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계약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명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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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지체상금이 손해배상의 상한이 아님을 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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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특약이 있으면 예정액을 초과하는 손해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

즉, 다음과 같이 규정할 수 있습니다.

“지체상금의 지급은 발주자의 실제 손해배상청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며, 실제 손해액이 지체상금을 초과하는 경우 발주자는 그 초과액을 별도로 청구할 수 있다.”

또는 지체상금을 최소손해배상액으로 정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지체상금은 납기 지연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한 최소배상액으로 하며, 발주자는 실제 손해가 지체상금을 초과함을 입증하여 그 초과손해를 청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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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예상 가능한 특별손해를 구체적으로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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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으로 “모든 손해를 배상한다”고만 규정하기보다는 해당 계약에서 실제 발생할 수 있는 손해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공급자는 납품 지연으로 인하여 발주자에게 생산중단 손해, 대체조달 비용, 고객 또는 제3자에게 지급하는 위약금·지체상금, 매출 및 영업이익 상실 등의 손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인식하며, 공급자의 귀책사유로 그러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 이를 배상한다.”

이러한 조항이 있다고 하여 모든 손해가 자동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손해 발생, 인과관계, 손해액에 관한 입증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민법 제393조). 다만 상대방이 특별한 사정을 알지 못했다는 항변을 차단하고, 지체상금 외의 초과손해를 청구할 계약상 근거를 확보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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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다른 채무불이행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분리

지체상금은 납기 지연에만 적용되고, 하자·비밀유지·지식재산권·법령 위반 등으로 인한 손해는 별도로 배상한다는 점을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지체상금 약정은 납품 지연으로 인한 손해에 한하여 적용하며, 제품의 하자, 비밀유지의무 위반, 지식재산권 침해 및 그 밖의 계약상 의무 위반으로 발생한 손해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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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손해배상책임 총액 제한 조항과의 관계 정리

계약서 뒤편에 다음과 같은 조항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급자의 손해배상책임 총액은 계약금액의 10%를 초과하지 않는다.”

앞에서 초과손해 청구권을 규정하더라도 이러한 총액 제한 조항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실질적인 손해배상청구가 다시 제한될 수 있습니다. 지체상금, 초과손해, 특별손해 및 손해배상책임 총액 제한 조항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정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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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상금 조항은 채무자에게만 불리한 조항이 아닙니다. 문구를 잘못 작성하면 실제로 막대한 손해를 입은 채권자가 스스로 손해배상액의 상한을 설정한 결과가 될 수도 있습니다. 계약서에 지체상금 조항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지체상금률이 아니라, 그 금액을 초과하는 손해를 청구할 수 있도록 계약서가 설계되어 있는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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