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민사소송에서 패소하여 판결이 확정된 뒤, 오래된 휴대전화에서 상대방과의 통화 녹음파일을 발견했습니다. 녹음에는 상대방이 재판에서 주장한 내용과 정반대되는 대화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 녹음파일을 재판부가 들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텐데, 재심을 청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 경우 민사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새로운 증거의 발견은 그 자체로 민사 재심사유는 아니다.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은 확정된 종국판결에 대하여 재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사유를 제한적으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 법관의 위법한 관여(제1호·제2호), 대리권의 흠(제3호), 법관의 직무범죄(제4호), 형사처벌받을 타인의 행위로 인한 공격·방어방법 제출 방해(제5호), 위조·변조된 문서(제6호), 증인 등의 거짓 진술(제7호), 판결 기초 재판·행정처분의 변경(제8호), 중요사항에 대한 판단 누락(제9호), 선행 확정판결과의 저촉(제10호), 허위 주소 기재로 인한 공시송달(제11호) 등이 그것입니다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이 규정은 예시가 아닌 제한적 열거입니다. 따라서 위 각 호에 해당하지 않는 사유를 들어 재심의 소를 제기하면 부적법하여 각하됩니다.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가 “무죄 등을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를 재심사유로 규정하는 것과 달리, 민사소송법에는 ‘새로운 증거의 발견’을 독립적인 재심사유로 규정한 조항이 없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사정은 원칙적으로 민사재심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 재판 후 새로운 계약서나 녹음파일, 문자메시지를 발견한 경우
- 기존 증거보다 신빙성이 높은 감정자료를 뒤늦게 확보한 경우
- 당시 제출하지 못했던 증인을 새롭게 찾은 경우
- 소송대리인이 중요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은 경우
녹음파일의 내용이 아무리 결정적이라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확정판결을 다시 심리해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2. 중요한 것은 녹음파일이 아니라 ‘무엇을 증명하는가’이다
다만 새로 발견한 녹음파일이 아래와 같이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각 호에서 정한 재심사유를 증명하는 자료로 기능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 상대방이 위조문서를 제출한 사실이 밝혀진 경우
확정판결의 증거가 된 계약서나 확인서 등이 위조·변조된 경우에는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제6호의 재심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이때 위조된 문서는 단순히 판결에 인용된 것으로는 부족하고, 판결주문의 이유가 된 사실인정의 직접적 또는 간접적 자료로 제공되어, 법원이 이를 참작하지 않았더라면 당해 판결과는 다른 판결을 하였을 개연성이 있는 경우여야 합니다.
또한 단순히 “문서가 위조된 것 같다”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2항은 제6호 사유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처벌받을 행위에 대하여 유죄의 판결이나 과태료부과의 재판이 확정된 때, 또는 증거부족 외의 이유로 유죄의 확정판결이나 과태료부과의 확정재판을 할 수 없을 때에만 재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2항). 이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제기된 재심의 소는 재심사유의 존부를 판단할 필요도 없이 각하됩니다.
나. 증인이 재판에서 거짓 진술한 사실이 밝혀진 경우
판결의 증거가 된 증언이 거짓이었다면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제7호의 재심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위 제6호와 마찬가지로 위증죄의 유죄판결이 확정되거나, 증거부족 외의 이유로 유죄의 확정판결을 할 수 없는 경우여야 합니다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2항). 단순히 녹음 내용과 증언 내용이 다르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재심이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아가 위증이 재심사유가 되려면 그 거짓 진술이 판결주문에 영향을 미치는 사실인정의 자료로 제공된 경우, 즉 그 진술이 없었더라면 판결의 주문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일응의 개연성이 있어야 합니다.
다. 상대방이 증거 제출을 형사처벌받을 행위로 방해한 경우
상대방의 형사처벌받을 행위로 인하여 당사자가 판결에 영향을 미칠 공격 또는 방어방법의 제출을 직접 방해받은 경우에는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제5호의 재심사유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상대방이 협박·사기 등의 방법으로 당사자의 방어방법 제출을 막았다는 사실이 녹음파일로 확인되는 경우입니다.
다만 상대방의 허위 주장 때문에 법원이 사실인정을 그르치게 된 경우는 이에 해당하지 않고, 당해 소송절차에서 당사자의 공격·방어방법 제출이 직접 방해받은 경우에 한합니다.
3. 당시 제출할 수 있었던 증거를 놓친 경우에는 더욱 어렵다
녹음파일이 원래부터 당사자의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었지만 이를 확인하지 못한 경우라면 재심은 더욱 어렵습니다.
재심은 확정판결의 법적 안정성을 희생시키면서 구체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비상수단입니다 . 따라서 당사자가 기존 재판에서 충분히 주장하고 증거를 제출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를 놓친 경우까지 구제하는 절차가 아닙니다.
특히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단서는, 당사자가 상소에 의하여 재심사유를 이미 주장하였거나 이를 알고도 주장하지 아니한 때에는 재심의 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이 ‘보충성’ 원칙에 따라 다음과 같은 사정은 통상 재심사유가 되기 어렵습니다.
- 휴대전화에 녹음파일이 있었지만 검색하지 못한 경우
- 소송대리인에게 녹음파일을 전달하지 않은 경우
- 증거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은 경우
- 변호사가 해당 증거를 제출하지 않은 경우
- 판결 후 녹취록이나 감정서를 새로 작성한 경우
이러한 문제는 원칙적으로 항소나 상고 과정에서 다투어야 합니다.
4. 재심사유가 있더라도 기간을 놓치면 안 된다
민사재심은 기간 제한도 매우 엄격합니다 (민사소송법 제456조).
| 구분 | 내용 |
| 단기 제소기간 | 판결 확정 후 재심사유를 안 날부터 30일 이내 (불변기간) |
| 장기 제소기간 | 판결 확정 후 5년 이내 |
| 예외 | 재심사유가 판결 확정 후에 생긴 때에는 5년의 기간은 그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기산 |
30일의 불변기간은 당사자가 재심사유를 안 날부터 진행됩니다. 예컨대 위증죄의 유죄판결이 확정된 경우에는 그 확정 사실을 안 날부터, 공소시효가 완성된 경우에는 그 완성 사실을 안 날부터 기산됩니다.
따라서 위조문서, 위증 또는 증거은폐 가능성을 확인했다면, 추가 증거를 모으기 전에 먼저 재심제기기간이 언제부터 진행되는지를 검토해야 합니다.

결정적 증거와 재심사유는 다르다
민사재심 상담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증거만 있었다면 제가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재심에서 판단하는 첫 번째 문제는 그 증거가 판결을 바꿀 만큼 중요한지가 아닙니다.
민사소송법 제451조가 정한 재심사유가 존재하는지가 먼저입니다.
판결 확정 후 녹음파일이나 새로운 자료를 발견했다면 다음 순서로 검토해야 합니다.
- 단순히 기존 주장을 뒷받침하는 추가 증거인지, 아니면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각 호의 재심사유를 증명하는 자료인지
- 위조문서·위증·형사처벌받을 행위에 의한 증거제출 방해를 증명하는 자료라면, 관련 형사판결 확정 또는 증거부족 외의 불기소처분 등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2항의 추가 요건을 갖출 수 있는지
- 재심사유를 안 날부터 30일이 지나지 않았는지, 판결 확정 후 5년이 지나지 않았는지
- 재심 이외에 별도의 손해배상청구 등 다른 대응방법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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