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체 A사는 수년간 연구와 시행착오를 거쳐 특정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그런데 제품 개발을 담당했던 직원이 퇴사한 뒤 동종업체를 설립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자가 A사 제품과 외형·크기·부품 배치·작동방식이 거의 같은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가격은 A사보다 낮았고, 퇴사자는 A사의 기존 거래처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영업하기 시작했습니다.
A사가 제품 판매를 중단하라고 요구하자 퇴사자는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을 참고해서 직접 개발한 것입니다. A사는 특허도 없는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특허를 등록하지 않았다면 퇴사자가 회사 제품을 그대로 베껴 판매하더라도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특허권이나 디자인권이 없더라도 상품형태 모방, 영업비밀 침해, 회사 자료의 무단 반출 및 이용 등을 근거로 판매금지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제품이 비슷하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회사가 어떤 권리를 보유하고 있는지, 퇴사자가 무엇을 가져갔는지, 제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1. 제품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불법은 아니다
먼저 냉정하게 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경쟁사가 기존 제품을 참고하여 유사한 기능의 제품을 만드는 행위가 모두 불법은 아닙니다. 시장에 공개된 제품을 분석하여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이른바 역설계(reverse engineering)도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있습니다.
특히 제품의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채택해야 하는 구조나, 동종 제품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형태는 특정 회사가 독점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부품을 수용하기 위해 제품 크기나 연결구 위치가 일정할 수밖에 없거나, 안전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구조가 유사해진 경우라면 외형이 비슷하다는 사정만으로 모방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법원도 동종 상품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채택되는 형태, 상품의 기능이나 효용을 달성하기 위해 불가피한 형태, 개성이 없는 흔한 형태는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른 상품형태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
따라서 회사가 단순히 “우리가 먼저 만들었고 상대방 제품이 우리 제품과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어떤 부분이 독자적으로 개발된 형태인지, 상대방 제품이 그 특징을 어느 정도 그대로 가져갔는지까지 구체적으로 비교해야 합니다.
2. 특허가 없어도 ‘상품형태 모방’으로 대응할 수 있다
특허권이나 디자인권을 등록하지 않았더라도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라 제품의 구체적인 형태가 보호될 수 있습니다.
부정경쟁방지법은 타인이 제작한 상품의 형상·모양·색채·광택 또는 그 결합을 모방한 상품을 양도하거나 대여·전시·수입·수출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 자목).
여기서 말하는 ‘모방’은 단순히 아이디어나 기능이 비슷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기존 제품의 형태에 의거하여 실질적으로 동일한 형태의 제품을 제작한 경우여야 합니다.
이때, 제품 전체의 외관뿐 아니라 다음과 같은 요소를 종합적으로 비교하게 됩니다.
- 제품의 전체적인 형상과 비율
- 각 구성요소의 배치와 결합관계
- 제품 표면의 모양과 색채
- 덮개·손잡이·버튼·연결부 등의 형태
- 일반적인 제품과 구별되는 특징적인 디자인
다만 상품형태 모방 규정에는 중요한 제한이 있습니다.
상품의 형태가 갖추어진 날부터 3년이 지난 경우에는 이 조항에 따른 직접적인 보호가 제한됩니다. 또한 동종 상품이 통상적으로 가지는 형태를 모방한 경우도 부정경쟁행위에서 제외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 자목 단서).
따라서 회사 제품이 오래전부터 판매된 제품이라면 상품형태 모방만 주장해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디자인권·특허권, 영업비밀 침해, 저작권 침해, 또는 상당한 투자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의 무단 사용(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 파목) 등 다른 법적 근거를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3. 퇴사자가 내부자료를 이용했다면 사건의 성격이 달라진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퇴사자가 완성된 제품을 보고 새로 개발한 것인가, 아니면 재직 중 취득한 회사 내부자료를 이용한 것인가?
퇴사자가 다음과 같은 자료를 가져가 제품 개발에 사용했다면 단순한 상품 모방을 넘어 영업비밀 침해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 설계도면과 CAD·3D 파일
- 부품명세서와 부품 조합 정보
- 금형도면과 금형 제작조건
- 원재료 배합비율
- 제조공정과 작업조건
- 시험성적서와 성능시험 결과
- 개발 실패사례와 불량 개선자료
- 제품별 원가와 견적자료
- 부품 공급처와 외주업체 정보
- 출시 전 신제품 개발자료
영업비밀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해당 정보가 ①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비공지성), ②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며, ③ 비밀로 관리된 정보에 해당해야 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경제적 가치는 해당 정보를 이용하여 경쟁상 이익을 얻을 수 있거나, 그 정보를 개발·취득하는 데 상당한 비용과 노력이 필요한 경우에 인정됩니다. 또한 접근권한 제한, 비밀표시, 보안규정, 비밀유지의무 부과 등 객관적으로 비밀정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관리가 이루어졌는지도 중요한 판단기준입니다.
따라서 설계도면이나 제조방법이 회사 내부자료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영업비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용폴더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었고, 자료에 아무런 비밀표시가 없었으며, 퇴사 시 자료 반환이나 폐기절차도 없었다면 비밀관리성이 부정될 위험이 있습니다.
반대로 다음과 같은 관리가 이루어졌다면 회사의 주장이 강해집니다.
- 자료에 ‘대외비’ 또는 ‘영업비밀’ 표시
- 부서와 직급별 접근권한 제한
- 다운로드·복사·외부전송 기록 관리
- 비밀유지서약서 및 보안서약서 작성
- 외부저장장치 사용 제한
- 퇴사 시 자료 반환·폐기 확인
- 계정 회수와 보안점검 실시
비밀유지서약서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영업비밀이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서약서와 보안관리 기록이 없다면 회사가 실제로 해당 정보를 비밀로 관리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훨씬 어려워집니다.
4. 영업비밀이 아니더라도 업무상배임이 문제 될 수 있다
한편, 반출된 자료가 영업비밀의 모든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해서 아무런 책임도 물을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해당 자료가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지 않았고, 회사가 상당한 시간·노력·비용을 들여 제작한 영업상 주요한 자산이라면, 이를 경쟁업체에 제공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단 반출한 행위는 업무상배임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재직 중에는 업무상 적법하게 자료를 보유하고 있었더라도, 퇴사 시 반환하거나 폐기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보관한 채 경쟁사업에 이용했다면 업무상배임이 문제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회사는 영업비밀 침해 여부만 검토할 것이 아니라 다음 사항도 확인해야 합니다.
- 퇴사자가 어떤 자료를 보유하고 있었는지
- 퇴사 시 반환·폐기의무가 있었는지
- 개인 이메일이나 클라우드로 전송했는지
- 외장하드나 USB에 복사했는지
- 퇴사 후 해당 자료를 실제 제품 개발에 사용했는지
5. 가장 강력한 증거는 ‘제품이 닮았다’는 사실이 아니다
이러한 류의 사건에서 회사가 흔히 하는 실수는 두 제품의 사진만 비교하여 고소부터 하는 것입니다.
물론 제품의 유사성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대개 다음과 같이 반박합니다.
“시장에 공개된 제품을 보고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이 반박을 깨려면 제품 외형뿐 아니라 개발 경위에 관한 간접증거를 확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회사가 수년간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한 제품을 퇴사자가 불과 몇 달 만에 동일하게 출시했다면 독자 개발 가능성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회사 제품에서 발생했던 특이한 설계 오류나 불필요한 부품 배치까지 상대방 제품에서 동일하게 발견된다면 단순한 우연이나 정상적인 역설계로 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실무적으로는 다음 자료가 중요합니다.
- 퇴사 전 대량 다운로드 및 파일복사 기록
- 개인 이메일·메신저·클라우드 전송내역
- USB와 외장하드 접속기록
- 설계파일의 작성자·수정일자·메타데이터
- 퇴사자의 업무범위와 자료 접근권한
- 퇴사 직전 협력업체와 접촉한 기록
- 상대방 제품의 출시시기와 개발기간
- 두 제품의 구조·치수·부품을 비교한 감정자료
- 기존 거래처에 보낸 영업제안서와 메시지
- 회사 도면과 상대방 제품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특이점
특히 제품의 핵심 치수, 공차, 부품규격, 금형구조와 같이 완제품 외관만 보아서는 알기 어려운 정보가 동일하다면 내부자료 이용을 의심할 중요한 정황이 됩니다.
6. 내용증명부터 보내면 증거를 없앨 수 있다
제품 모방 사실을 발견하면 당장 퇴사자에게 전화하거나 경고장을 보내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증거를 확보하기 전에 상대방에게 대응 사실을 알리면 설계파일, 이메일, 메신저 대화와 거래자료가 삭제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제품 설계를 일부 변경하거나 판매페이지를 내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다음 순서로 대응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첫째, 상대방 제품을 직접 구매하고 판매페이지, 광고문구, 가격, 출시일과 거래처 영업자료를 확보해야 합니다.
둘째, 회사 서버와 퇴사자가 사용했던 업무용 컴퓨터, 이메일, 파일서버의 로그를 보존해야 합니다. 필요한 경우 디지털 포렌식을 검토해야 합니다.
셋째, 회사 제품과 상대방 제품의 구조·치수·부품·기능을 항목별로 비교해야 합니다. 단순히 “전체적으로 비슷하다”는 의견보다 구체적인 비교표가 훨씬 중요합니다.
넷째, 확보된 증거를 바탕으로 판매금지가처분, 침해금지 및 손해배상청구, 영업비밀 침해 또는 업무상배임 고소 중 어떤 절차를 먼저 진행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판매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면 본안소송의 판결을 기다리는 것보다 판매금지가처분을 우선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정경쟁방지법은 부정경쟁행위와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대한 금지·예방청구 및 손해배상청구의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4조, 제5조).
7.승패는 ‘무엇을 베꼈는지’보다 ‘어떻게 베꼈는지’에서 갈린다
퇴사자가 회사 제품과 유사한 제품을 판매한다고 해서 곧바로 불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개된 제품을 분석해 독자적으로 개발했고, 유사한 부분이 기능상 불가피하거나 업계에서 흔히 사용하는 형태라면 회사가 판매를 막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반면 퇴사자가 재직 중 취득한 설계도면, 제조공정, 부품정보, 시험자료와 원가정보를 이용하여 개발기간과 비용을 절감하고 동일한 제품을 출시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타인의 영업비밀을 참조하여 시행착오를 줄이거나 필요한 실험을 생략하는 방식으로 제품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는 것도 영업비밀의 ‘사용’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특허나 디자인등록이 없더라도 상품형태 모방, 영업비밀 침해, 영업상 주요 자산의 무단 이용 등을 근거로 판매금지와 손해배상, 경우에 따라 형사책임까지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 자목, 파목, 제2조 제2호, 제3호).

퇴사자가 “특허도 없지 않느냐”고 주장한다고 해서 회사에 아무런 권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회사 역시 “우리 직원이었으니 분명히 베꼈을 것”이라는 추측만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퇴사자의 자료 접근, 반출 정황, 비정상적으로 짧은 개발기간과 제품의 특이한 공통점까지 연결하여 입증해야 실제로 판매를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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