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나 장비를 납품받거나 시스템 구축이 끝나면 보통 검수확인서, 검수완료서, 인수확인서 등을 작성합니다.
문제는 검수할 때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였는데, 실제 가동을 시작하고 나서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입니다.
이때 납품업체에서 흔히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미 검수확인서에 서명하셨으니 하자는 더 이상 문제 삼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검수확인서에 서명했다는 이유만으로 이후의 하자 주장이 당연히 막히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봐야 할 것은 검수확인서에 어떤 문구가 적혀 있는지, 계약이 매매인지 도급인지, 문제된 하자가 검수 당시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는지, 하자를 발견한 뒤 어떤 조치를 했는지입니다.

1. 검수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하자까지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먼저 검수완료와 하자책임은 구분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생산설비를 납품받으면서 외관을 살펴보고, 정상적으로 전원이 들어오는지, 기본적인 작동이 되는지를 확인한 뒤 검수확인서에 서명한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실제 생산라인에 제품을 투입해보니 일정 수준 이상의 부하가 걸릴 때마다 설비가 멈추거나 계약에서 약속한 생산속도가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짧은 시운전이나 외관검사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따라서 검수확인서는 적어도 검수 당시 확인한 범위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는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 하나만으로 앞으로 발견될 모든 하자에 대한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계약서에 별도로 하자보증기간을 두고 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검수와 동시에 모든 하자책임이 끝나는 구조라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설비제작이나 시스템 구축은 도급계약으로 보통 평가됩니다
설비 제작, 시스템 구축, 주문제작 장비 공급계약은 계약내용에 따라 단순한 물품매매가 아니라 도급계약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법 제667조에 따르면 완성된 목적물에 하자가 있는 경우 도급인은 수급인에게 상당한 기간을 정해 하자보수를 요구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하자보수에 갈음하거나 하자보수와 함께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경우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자’로 볼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하자는 단순히 물건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에만 인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계약에서 약정한 사양이나 성능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계약서에 다음과 같은 조건이 정해져 있었다면 실제 설비가 그러한 조건에 부합하는지를 봐야 합니다.
계약상 성능조건
- 시간당 생산량 – XX
- 정밀도 및 허용오차 – XX
- 불량률 – XX
- 다른 설비와의 연동 여부 – XX
즉, 결국 중요한 것은 장비·제품이 단순히 ‘작동을 하느냐’가 아니라, ‘계약에서 정한 성능대로 작동하느냐’가 되는 것입니다.
3. 검수 당시 발견할 수 있었던 하자인지도 중요합니다
실제 분쟁에서는 하자의 성격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검수 당시 이미 외관이 파손되어 있어서 이를 조금만 살펴봐도 알 수 있었는데도 아무런 이의 없이 검수확인서에 서명했다면, 이후 그 부분을 문제 삼기는 상당히 어려워집니다.
반면 다음과 같은 문제는 검수 당시 쉽게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 일정 시간 이상 운전해야 나타나는 과열
- 특정 부하 이상에서만 발생하는 오작동
- 일정 기간 사용한 뒤 드러나는 내구성 문제
- 내부 부품이나 배선의 시공상 문제
- 외부에서 바로 확인하기 어려운 부품이나 재료의 변경
- 실제 생산공정에 투입해야 드러나는 성능 미달
이런 경우라면 단순히 검수확인서에 서명했다는 사정만으로 하자 관련 주장이 배제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공급자·수급인이 하자를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이를 알리지 않았다면 문제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민법 제672조는 수급인이 알고서도 고지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는 면책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상인 간 물품 매매라면 상법 제69조를 주의해야 합니다
만약 계약이 ‘도급’이 아니라 상인 간의 물품매매계약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판단될 경우에는 상법 제69조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상법상 상인 간 매매에서는 매수인이 목적물을 받으면 지체 없이 검사해야 하고, 하자를 발견하면 즉시 매도인에게 알려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바로 발견하기 어려운 하자 역시 6개월 안에 발견했다면 발견 후 즉시 통지해야 합니다.
이러한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제품 하자를 이유로 계약해제, 대금감액 또는 손해배상청구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매도인이 제품의 하자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경우에는 매도인이 보호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업 간 납품분쟁에서는 하자가 있었던 사실만큼이나 언제 하자를 발견했고, 언제 상대방에게 통지했는지가 중요합니다.
가능하면 전화가 아니라 이메일이나 공문을 통해 하자에 대해 남겨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나중에 분쟁이 생기면 이러한 기록이 하자 발생과 통지 시점을 입증하는 자료가 됩니다.
상법 제69조의 6개월 규정도 다소 주의해서 봐야 합니다.
대법원은 상법 제69조가 상인 간 매매에서 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에 관한 특칙이라고 보면서, 계약상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을 이유로 하는 채무불이행 손해배상청구에까지 당연히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즉, ‘물건을 받은 지 6개월이 넘었으니 이제 아무 청구도 하지 못한다’라고 단정하는 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고, ‘하자가 있으니 언제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도 정확한 표현은 아닌 것입니다.
결국 해당 계약이 어떤 성격인지, 상대방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무를 부담했는지, 현재 문제 삼는 것이 하자담보책임인지 채무불이행책임인지 등을 함께 봐야 합니다.
5. 결국 검수확인서에 어떻게 써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검수확인서’라는 제목이 같다고 해서 법적 의미도 모두 같은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본 계약에 따른 검수가 완료되었음을 확인한다.”
는 정도의 문구와,
“매수인은 목적물을 최종적으로 검사하였으며 현재 및 장래의 일체의 하자에 대하여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
는 문구는 의미가 상당히 다릅니다.
후자의 경우 공급자는 이를 근거로 하자책임이 면제됐다거나 매수인이 향후 이의를 제기할 권리를 포기했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이런 문구가 있다고 해서 언제나 모든 하자에 대해 면책된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별도의 하자보증조항이 있는지, 공급자가 하자를 알고 있었는지, 해당 문구가 어디까지의 하자를 대상으로 하는지 등을 함께 봐야 합니다.
계약서는 특정 문장 하나만 떼어 놓고 보기보다는 검수조항, 하자보증조항, 손해배상조항, 책임제한조항을 전체적으로 연결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6. 검수 후 하자가 발견됐다면 무엇부터 확인해야 할까
검수 이후 문제가 발생했다면 우선 다음 자료부터 정리해보아야 합니다.
가. 계약서
검수조건, 성능보증, 하자보증기간, 책임제한, 손해배상, 하자통지기간 등과 관련된 조항을 확인합니다.
나. 검수확인서
단순히 납품이나 검수가 완료되었다는 내용인지, 하자에 대한 이의제기까지 포기한다는 취지가 포함되어 있는지 살펴봅니다.
다. 하자 발생 및 통지자료
최초로 문제가 발생한 시점과 상대방에게 이를 알린 시점을 정리합니다.
이메일, 문자, 작업일지, 장애기록, A/S 요청내역 등이 중요합니다.
라. 계약상 사양과 실제 성능을 비교할 수 있는 자료
‘품질이 좋지 않다’거나 ‘원하는 만큼 성능이 나오지 않는다’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계약서나 제안서에 약정된 성능과 실제 측정결과를 비교할 수 있어야 하자 주장이 명확해집니다.

검수확인서는 분명 중요한 문서입니다.
아무런 이의 없이 검수를 마치고 서명까지 했다면 공급자 입장에서는 계약상 의무를 정상적으로 이행했다는 자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검수확인서에 서명한 순간 모든 하자책임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검수 당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던 문제인지, 실제 가동 이후에야 확인할 수 있는 하자인지, 계약에서 별도의 성능보증이나 하자보증을 정하고 있는지, 상대방이 하자를 미리 알고 있었는지, 하자를 발견한 뒤 언제 어떻게 통지했는지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기업 간 설비·장비 거래는 계약이 매매인지 도급인지에 따라 적용되는 법리부터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검수 후 문제가 발생했다면 “이미 검수가 끝났으니 방법이 없다”고 단정하기보다는 계약서와 검수서류, 하자 발생자료, 상대방과 주고받은 통지 내역을 함께 놓고 먼저 법률관계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