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 만든 프로그램, 회사가 계속 썼다가 3,960만 원 배상한 이유

1. 10년 가까이 사용한 프로그램인데, 왜 회사 것이 아닐까요?

수치 지도 제작 회사에 다니던 직원 A는 2005년 입사해 지도 제작·납품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그는 2006년경부터 2014년경까지 리습(LISP)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해 수치지도 제작·편집 자동화 프로그램들을 스스로 개발했습니다. 회사가 시킨 일이 아니었지만, 프로그램이 유용하다 보니 다른 직원들도 사용하기 시작했고 회사 업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습니다.

2017년 A가 퇴사하면서 회사에 프로그램 사용 중단을 요구했습니다. 회사는 이를 거부했고, A는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회사는 “재직 중 개발한 프로그램이니 회사의 업무상저작물”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A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대법원도 회사의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누가 프로그램을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그 저작권이 법적으로 누구에게 귀속되느냐였습니다.

2. 업무상저작물이 되려면 ‘기획’이 있어야 합니다

저작권법은 원칙적으로 저작물을 직접 창작한 사람을 저작자로 봅니다(저작권법 제2조 제2호). 다만 예외적으로, 일정한 요건을 갖춘 ‘업무상저작물’은 실제 창작자가 아닌 회사가 저작자가 됩니다.

저작권법 제2조 제31호는 업무상저작물을 “법인·단체 그 밖의 사용자의 기획 하에 법인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자가 업무상 작성하는 저작물”로 정의하고, 제9조는 그 저작자를 회사 등으로 규정합니다. 컴퓨터프로그램의 경우 일반 저작물과 달리 회사 명의로 공표할 필요도 없습니다(저작권법 제9조 단서).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바로 회사의 ‘기획’ 이 있었는지입니다.

대법원은 회사의 기획이 인정되려면 “회사가 일정한 의도에 따라 저작물의 작성을 구상하고, 구체적인 제작을 직원에게 명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21. 9. 9. 선고 2021다236111 판결). 반드시 서면으로 개발을 지시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묵시적인 기획도 가능합니다. 다만 묵시적 기획이 인정되려면, 회사의 의사가 명시적으로 드러난 경우와 동일하게 볼 수 있을 정도의 객관적인 사정이 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근무시간에 개발했는지, 회사 컴퓨터를 사용했는지만으로 결론이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3. 회사가 오래 사용했다는 사실도 결정적이지 않습니다

이 사건에서 A는 애초에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입사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본래 업무는 수치지도 제작과 납품이었고, 프로그램 개발은 주된 담당 업무가 아니었습니다. 법원은 회사가 프로그램 개발을 구상하고 A에게 제작을 명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고, 명시적·묵시적 기획 모두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해당 프로그램은 회사의 업무상저작물이 아니라 직원 A의 저작물로 인정되었습니다. 회사는 퇴사 이후에도 프로그램을 계속 사용한 데 따른 저작권 침해 책임을 지게 되었고, 법원은 저작권법 제125조 제2항에 따라 통상 사용료 상당액인 3,960만 원을 손해액으로 인정했습니다(대법원 2021. 9. 9. 선고 2021다236111 판결).

이 판결에서 회사가 간과한 것은 프로그램의 유용성과 프로그램에 대한 권리는 별개라는 점입니다. 직원이 만든 도구 덕분에 생산성이 높아지고 회사가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고 해서, 그 도구의 저작권까지 당연히 회사가 취득하는 것은 아닙니다.

4. 저작권이 직원에게 있다면, 퇴사할 때 프로그램을 삭제해도 될까요?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와 회사가 해당 프로그램을 사용할 권한이 있는지는 별개의 쟁점입니다.

직원이 저작권을 보유하더라도, 회사에 일정 범위의 사용을 허락했을 수 있습니다. 명시적인 계약이 없더라도 프로그램을 제공한 경위, 사용 목적, 당사자의 의사 등에 따라 묵시적인 이용허락이 인정될 여지가 있습니다(저작권법 제46조). 다만 재직 중 사용을 허락했다는 사실만으로 퇴사 후 무기한 사용까지 허락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직원의 저작권이 인정된다는 사실과 회사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을 임의로 삭제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퇴사하면서 회사 컴퓨터에 저장된 업무 관련 파일을 임의로 삭제하는 행위는, 그 파일을 직원 본인이 작성한 것이라 하더라도 회사가 전자기록으로서의 효용을 지배·관리하고 있는 이상 형법 제366조의 전자기록등손괴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대구지방법원 2022. 1. 12. 선고 2021노2277 판결 등 참조). 삭제 대상과 경위, 회사 업무에 미친 영향 등에 따라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도 별도로 문제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프로그램을 둘러싼 분쟁에서는 적어도 다음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쟁점핵심 질문
저작권 귀속프로그램의 저작자는 회사인가, 직원인가?
이용 권한회사가 프로그램을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가?

직원이 만든 프로그램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용 중단 요구가 언제나 정당한 것도 아니고, 회사 업무에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사용할 권리가 당연히 발생하는 것도 아닙니다.

5.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점은 퇴사 때가 아닙니다

이 판결을 보면 회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보다, 언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직원이 처음 업무 자동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다른 직원들과 공유하기 시작했을 때, 회사는 저작권 관계를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직원의 자발적인 개발물이라면 회사가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이용허락을 받거나, 필요한 경우 저작재산권 양도계약을 체결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프로그램이 잘 작동하는 동안에는 저작권 문제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직원이 퇴사하거나 갈등이 발생한 이후에야 권리 관계를 확인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요즘은 전문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AI를 활용해 업무용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엑셀 매크로와 간단한 자동화 도구를 직접 개발하는 일이 어렵지 않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직원의 자발적인 업무 개선을 장려할 필요가 있지만, 그 과정에서 개발된 프로그램을 장기간 회사 자산처럼 사용하려면 최소한 권리 관계는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실무적으로는 다음 사항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급여를 지급했다는 사실이 그 직원이 스스로 개발한 모든 업무 도구의 저작권까지 취득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직원이 만든 프로그램을 회사가 계속 사용하고 싶다면, 그 권리가 실제로 회사에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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