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업 대표님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불안감에 컨설팅 업체에 적지 않은 비용을 지출하고, 두꺼운 안전보건 매뉴얼을 만들어 서랍 속에 보관해 두십니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하면, 그 매뉴얼만으로는 대표가 면책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형식만 갖춘 회사”라는 불리한 정황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1. 법원은 ‘시스템의 존재’가 아니라 ‘이행 여부‘를 봅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 제1항 제1호는 경영책임자에게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의무를 부과합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제1호)
여기서 핵심은 ‘구축’과 ‘이행’이 모두 요구된다는 점입니다.
수사기관이 중대재해 사건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실제로 이행했는가”
이 질문은 두 단계로 나누어집니다.
① 시스템이 존재했는가
② 그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했는가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①까지는 갖춥니다. 문제는 법원이 ②를 중심으로 판단한다는 점입니다.
실제 판결에서도 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안전보건관리체계의 이행 여부를 판단합니다.
- 위험성 평가를 했다고 기재되어 있으나 → 실제 현장 위험요소가 제거되었는지
- 교육을 실시했다고 기재되어 있으나 → 사고 유형과 관련된 교육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는지
- 점검을 했다고 기재되어 있으나 → 지적사항이 실제로 개선되었는지
이 “연결고리”가 입증되지 않으면, 서류는 법적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매뉴얼은 출발점일 뿐이고, 책임을 가르는 것은 “실행의 인과관계”입니다.
2. 수사기관은 ‘사고 원인 → 경영책임자 책임’ 순서로 수사합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6조에 따라 경영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과 중대산업재해 결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이때, 수사는 통상 다음 순서로 진행됩니다.
- 사고 원인 특정 (예: 안전장치 미설치, 노후 설비 방치)
- 해당 위험을 사전에 인지할 수 있었는지 검토
- 인지 가능했다면 → 왜 조치하지 않았는지 확인
- 그 책임을 경영책임자에게 연결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핵심 질문은 이것입니다.
“경영책임자가 이 위험을 알 수 있었는데도 방치한 것 아닌가?”
중대재해처벌법위반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 확보의무가 이행되지 않은 채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이를 방치한다는 인식과 중대산업재해 발생에 관한 예견가능성이 있었을 것을 요합니다.
이 질문을 깨지 못하면, 대부분 책임이 인정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를 깨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실행의 흔적“입니다.
3. 중소기업에서 반복되는 구조적 실패 패턴
실제 사건들을 보면, 처벌받는 회사들은 거의 동일한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 ‘복사형 매뉴얼 + 현장과의 단절’
즉, 매뉴얼은 존재하지만, 아래와 같은 경우입니다.
- 해당 사업장의 공정과 맞지 않거나,
- 실제 작업 방식과 괴리되어 있고,
- 현장에서는 아무도 참고하지 않는 경우
이 상태에서는 매뉴얼이 오히려 불리한 증거가 됩니다. “이렇게 하라고 규정되어 있는데 왜 이행하지 않았느냐”는 공격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법원은 컨설팅 업체에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의뢰하였으나 관련 자료를 제공하지 않는 등 컨설팅 업무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아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업무의 진행이 지지부진하던 중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사안에서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나. 보고 체계는 있지만 ‘경영책임자에게 도달하지 않거나’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음’
현장에서 이상 징후는 대부분 먼저 감지됩니다.
문제는 아래와 같이 경영책임자에게 제대로 보고되지 않거나 보고되었으나 조치가 되지않는 경우입니다.
- 작업자 → 팀장 → 관리자 단계에서 묻히거나
- 보고는 되었지만 조치가 실행되지 않는 경우
특히 첫번째 경우, 법원은 이렇게 봅니다.
“보고 체계가 있었다면 경영책임자는 알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즉, 대표이사가 ‘몰랐다’는 주장은 쉽게 무너집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의 무관심, 위험의 방치와 안전규정의 미준수 관행의 묵인 등을 막기 위해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부과하는 법률이기 때문입니다.
다. 점검은 하지만 ‘결재용 문서’로 끝남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은 경영책임자에게 반기 1회 이상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의무가 이행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 인력 배치나 예산 추가 편성 등 관리상의 조치를 할 의무를 부과합니다.
그런데 실제 문서를 보면 아래와 같은 수준에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이상 없음”
- “문제 없음”
- “지속 관리 예정”
이경우 수사기관이나 판례는 제대로 된 점검이 없었다고 판단합니다. 오히려 아래와 같이 판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가 있었는데도 발견하지 못했다면 관리 소홀, 발견했는데도 조치 기록이 없다면 더 큰 문제”
어느 쪽이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4. 경영책임자가 실제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구조
결국 핵심은 단순합니다. “경영책임자가 개입한 흔적”을 남겨야 합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개입은 형식적인 결재라인이 아닙니다. 아래와 같은 구조를 갖추고 실행해야 합니다.
가. 위험요소가 ‘경영책임자에게 도달’하는 구조
- 현장 리스크가 경영책임자까지 보고되는 보고 라인 확보
- 일정 수준 이상의 위험은 자동으로 경영책임자에게 보고되도록 설정
-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이 해당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는지 반기 1회 이상 평가·관리
나. 경영책임자의 ‘지시와 판단’이 기록으로 남는 구조
- 단순 서명이 아니라 “설비 교체”, “작업 중지”, “외부 점검 실시” 등 구체적 지시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야 합니다.
- 중대산업재해 발생 등 긴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작업중지, 근로자 대피, 위험요인 제거 등에 관한 매뉴얼은 종사자 전원에게 공유되어야 합니다.
다. 지시가 실제로 ‘이행되었는지 확인’하는 구조
- 조치 완료 여부 확인 기록
- 미이행 시 재지시 또는 책임 추궁 기록
이 세 가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이행했다”는 구조가 완성됩니다.
많은 대표님들이 “문서가 부족해서 처벌받는다”고 생각하십니다.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문서는 이미 충분합니다. 문제는 그 문서가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7조는 법인에 대해 최대 50억 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고, 경영책임자 개인에게는 징역형까지 예정하고 있습니다. 판례를 보면 법원이 중점적으로 보는 포인트는 단순합니다.
“최소한의 관리 구조라도 작동하고 있었는지”입니다.
반대로,아래와 같은 경우는 처벌가능성이 높습니다.
- 위험이 반복적으로 방치되었거나
- 보고 체계가 형식에 그쳤거나
- 대표의 개입 흔적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
지금 필요한 것은 매뉴얼을 더 두껍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대표의 판단과 지시가 실제로 현장을 바꾸고 있는지, 그 구조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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