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이사 퇴직금과 배임죄의 경계

회사를 오랫동안 이끌어온 대표이사가 퇴직하면서 “그동안 고생한 만큼 퇴직금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대표이사의 퇴직금은 본인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돈이 아닙니다. 잘못 설계하면 단순한 민사 분쟁을 넘어 형사상 배임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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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표이사 퇴직금의 법적 성격: 이사 ‘보수’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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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상법상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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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이사의 보수는 정관에 금액을 정하지 않은 경우 반드시 주주총회 결의로 정해야 합니다 (상법 제388조). 여기서 ‘보수’에는 월급, 상여금뿐만 아니라 퇴직금과 퇴직금 중간정산금도 포함됩니다.

나. 근로자 퇴직금과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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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대표이사는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에 해당하므로, 근로기준법 소정의 퇴직금 규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대법원 1973. 9. 25. 선고 73다468 판결). 대표이사의 퇴직금은 상법 제388조에 따른 보수 결정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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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퇴직금 결정 절차를 밟지 않은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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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퇴직금 청구권 자체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정관이나 주주총회 결의 없이 대표이사가 스스로 퇴직금을 결정한 경우, 그 퇴직금 청구권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법원은 “정관 등에서 이사의 보수 또는 퇴직금에 관하여 주주총회의 결의로 정한다고 규정되어 있는 경우, 그 금액·지급방법·지급시기 등에 관한 주주총회의 결의가 있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는 한 이사의 보수나 퇴직금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명확히 판시하고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8. 23. 선고 2017가합551641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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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퇴직금 중간정산도 마찬가지입니다

퇴직금 중간정산금은 일반적인 퇴직금과 달리 이사의 재직 중에 지급의무가 발생하는 것으로, 퇴직금의 지급시기와 방법에 관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따라서 퇴직금 액수에 관한 주주총회 결의만으로는 부족하고, 중간정산에 관한 별도의 주주총회 결의가 있어야만 이사는 중간정산금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19. 7. 4. 선고 2017다17436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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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퇴직금이 ‘과도’한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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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배임죄 해당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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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회사)에게 손해를 가한 때 성립합니다.

대표이사는 회사의 재산을 관리하는 자로서 회사에 대한 선관주의의무와 충실의무를 부담합니다. 따라서 대표이사가 합리적 범위를 벗어난 과도한 퇴직금을 스스로 결정하여 수령하는 행위는 배임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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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과도한 퇴직금’을 판단하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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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퇴직금이 합리적 수준을 벗어났는지를 판단할 때 다음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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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실무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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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사회나 주주총회 없이 대표이사 혼자 결정한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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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표이사니까 내가 정한다”는 논리는 법적으로 통하지 않습니다. 이는 가장 전형적인 배임 위험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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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족회사에서 형식적으로만 승인한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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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구성원(가족 주주)끼리 도장만 찍는 방식으로 주주총회 결의를 거쳤더라도, 그 결의의 내용이 회사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 경우에는 배임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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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회사가 적자 상태인데 거액의 퇴직금을 지급한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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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재무 상태가 악화된 상황에서 수억 원의 퇴직금을 지급하는 것은 배임 판단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실제로 법원은 대표이사 가지급금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퇴직금 지급률을 인위적으로 높게 설정한 임원퇴직금 지급규정을 제정하고 이에 따라 퇴직금을 중간정산한 사안에서 배임죄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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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퇴직 직전에 갑자기 유리한 규정을 만들어 지급한 경우

퇴직을 앞두고 기존 기준보다 훨씬 높은 지급률을 소급 적용하는 퇴직금 규정을 새로 만들어 지급하는 것은 사후 설계로 의심받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퇴임을 앞둔 대표이사가 종전의 5배에 해당하는 퇴직금 지급률을 소급 적용하는 규정을 제정하고 주주총회에서 통과시킨 경우, 이는 이사의 충실의무를 위반하여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배임행위에 해당하고 주주총회 결의를 거쳤더라도 무효라는 것이 판례의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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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주총회 승인을 받았으면 괜찮은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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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가장 흔한 오해입니다. 주주총회 승인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배임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회사의 대표이사는 이사회 또는 주주총회의 결의가 있더라도 그 결의내용이 회사 채권자를 해하는 불법한 목적이 있는 경우에는 이에 맹종할 것이 아니라 회사를 위하여 성실한 직무수행을 할 의무가 있으므로, 대표이사가 임무에 배임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주주 또는 회사 채권자에게 손해가 될 행위를 하였다면 그 회사의 이사회 또는 주주총회의 결의가 있었다고 하여 그 배임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명확히 판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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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표이사 퇴직금, 실무적으로 안전하게 설계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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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임원 퇴직금 지급규정을 미리 마련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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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 산정 기준(지급률, 산정 방식 등)을 퇴직 전에 미리 정관 또는 주주총회 결의를 거쳐 명확히 설정해 두어야 합니다. 퇴직 직전에 갑자기 규정을 만들거나 지급률을 대폭 올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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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주주총회의 실질적 승인을 받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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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인 도장 찍기가 아니라, 퇴직금의 금액·지급방법·지급시기 등에 관하여 실질적인 심의와 결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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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회사의 재무 상태를 반드시 고려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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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매출, 자산, 손익 상황에 비추어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수준의 퇴직금이어야 합니다. 회사가 적자 상태이거나 채무 초과 상태에서 거액의 퇴직금을 지급하는 것은 배임 위험이 매우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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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일반 근로자 퇴직금과의 균형을 유지할 것

임원 퇴직금이 일반 근로자 퇴직금의 수배에 달하는 경우, 그 합리적 근거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법원은 통상적인 근로자 퇴직금의 7배 규모의 퇴직금을 1인 주주 겸 대표이사가 자신에게 지급하기로 한 규정의 효력을 부정한 사례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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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이사 퇴직금은 단순한 보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잘못 설계하면 회사 내부 분쟁 → 민사 소송 → 형사 배임으로 이어지는 심각한 법적 리스크가 됩니다.

특히 중소기업에서는 “원래 이렇게 해왔다”는 관행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관행이 아니라 절차의 적법성과 금액의 합리성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나중에 누가 보더라도 합리적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구조를 미리 만들어 두어야 한다.”

퇴직금 설계 단계에서부터 법률 전문가의 검토를 받는 것이 가장 확실한 예방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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