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계약을 믿고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계약대금 외에도 여러 비용이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생산설비를 납품받기로 하고 공장 내부에 설비 기초공사를 하고, 전력과 배관을 증설하고, 생산인력을 미리 투입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납품업체의 귀책사유로 결국 설비를 공급받지 못하고 계약이 해제되었습니다.
이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설비대금은 돌려받는다고 해도, 이미 공장에 쓴 돈은 어떻게 하지?”
계약이 정상적으로 이행될 것을 전제로 이미 지출한 비용도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손해배상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실제로 돈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전부 배상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비용을 왜 지출했는지, 계약 이행을 위해 통상 필요한 비용이었는지, 상대방이 그 지출 사실이나 사정을 알고 있었는지 등을 따져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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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약을 믿고 지출한 비용도 손해가 될 수 있습니다
가. 신뢰이익 배상의 근거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는 경우, 채권자는 원칙적으로 계약이 이행되었더라면 얻었을 이익, 즉 이행이익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390조, 제551조). 그런데 대법원은 이에 더하여, 계약이 이행될 것이라고 믿고 지출한 비용, 즉 신뢰이익의 배상도 청구할 수 있다고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습니다.
나. 신뢰이익으로 인정될 수 있는 비용의 예
실무상 다음과 같은 비용이 신뢰이익으로 문제될 수 있습니다.
- 설비 설치를 위한 기초공사비, 전기·가스·배관 증설비
- 계약제품 생산을 위해 별도로 구입한 원재료비
- 특정 계약 수행을 위해 투입한 외주비·용역비
- 계약 이행을 위해 별도로 제작한 시설물이나 부품 비용
- 계약 이행을 전제로 투입한 인건비나 준비비용
- 웹사이트 구축 계약 이행을 믿고 지출한 서버 구입비, 데이터베이스 사용료 등
물론 이 비용들이 언제나 전액 인정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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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핵심은 ‘그 계약 때문에 쓴 돈인가’입니다
실무에서 우선 확인해야 할 것은 비용과 계약 사이의 인과관계입니다.
예를 들어, 공장을 운영하는 회사가 설비 납품계약을 체결한 뒤 5,000만 원을 들여 전력설비를 증설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 전력설비가 문제의 기계를 설치하기 위해 특별히 필요했던 것이고, 설비업체도 계약 협의 과정에서 전력 증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계약과 비용 사이의 관련성은 비교적 명확합니다.
반대로 회사가 장래의 사업 확장을 위해 원래 계획하고 있던 전력 증설을 마침 계약 체결 이후 실시한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계약이 없었더라도 어차피 지출했을 비용이라면 상대방의 계약 위반으로 발생한 손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 분쟁에서는 단순히 영수증이나 세금계산서를 제출하는 것만으로 부족할 수 있습니다. 왜 그 비용을 지출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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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통상손해인지 특별손해인지가 중요합니다
가. 민법 제393조의 적용
민법 제393조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의 범위를 다음과 같이 규정합니다 (민법 제393조).
| 구분 | 내용 | 배상 요건 |
|---|---|---|
| 통상손해 (제1항) | 그 종류의 채무불이행이 있으면 사회일반의 거래관념·경험칙에 비추어 통상 발생하는 손해 | 채무자의 예견 여부와 무관하게 배상 |
| 특별손해 (제2항) | 당사자들의 개별적·구체적 사정에 따른 손해 | 채무자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하여 배상 |
대법원은 이 법리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범위를 판단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나. 신뢰이익(지출비용)에 대한 적용
대법원은 신뢰이익(지출비용)에 대해서도 민법 제393조를 그대로 적용합니다.
지출비용 중 계약의 체결과 이행을 위하여 통상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은 통상의 손해로서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와 상관없이 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이를 초과하여 지출한 비용은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로서 상대방이 이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에 한하여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다. 구체적 사례
통상손해로 인정된 사례:
- 채권입찰제 방식의 아파트 분양에서 주택채권 매입비용: 해당 방식의 분양에서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부대비용이므로 통상손해에 해당
- 마스크 생산장비 납품계약 이행을 위한 부직포 등 자재구입비: 통상적인 비용으로 인정
- 배급권 계약 이행을 위한 물류비, 홍보비: 통상적인 비용으로 인정
- 광고 계약 이행을 위한 영상제작비, 카피료, 소품료: 통상적인 비용으로 인정
- 공동수급협정에서 예정된 총회비용
특별손해로 판단된 사례:
- 마스크 생산장비 납품계약에서 마스크 전담 인건비: 통상적인 비용으로 보기 어렵고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배상 불인정
- 매매계약 잔금 완불 전에 지출한 설계용역비: 일응 특별손해에 해당하나, 피고가 원고의 건축 목적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인정되어 배상 인정
- 공동수급체 대표사의 채무불이행에서 제3자에게 지급한 용역비: 통상적 지출 비용으로 보기 어렵고 상대방이 인지했다는 증거 부족으로 배상 불인정
라. 특별손해 입증의 실무적 포인트
특별손해는 이를 주장하는 당사자가 상대방의 예견가능성에 대한 입증책임을 부담합니다. 즉, 이러한 특별손해가 발생할 것을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수 있었다는것을 우리쪽에서 입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경우 계약서뿐 아니라 계약 전후의 이메일, 회의록, 제안서, 사양협의 자료 등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예를 들어 계약서 특약사항에 “이 사건 토지에 관한 건축(펜션용)”이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면, 피고가 원고의 설계비용 지출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인정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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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미 지출한 비용이라고 해서 무조건 전액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 이행이익 한도 원칙
가. 과잉배상금지의 원칙
대법원은 신뢰이익(지출비용)의 배상은 과잉배상금지의 원칙에 비추어 이행이익의 범위를 초과할 수 없다고 일관되게 판시합니다.
“다만 지출비용 상당의 배상은 과잉배상금지의 원칙에 비추어 이행이익의 범위를 초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떤 계약을 정상적으로 이행했더라도 얻을 수 있었던 경제적 이익이 5,000만 원 정도였다면, 계약을 믿고 1억 원을 지출했다고 해서 곧바로 상대방에게 1억 원 전부를 배상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경우 배상받을 수 있는 신뢰이익의 상한은 이행이익인 5,000만 원이 됩니다.
나. 이행이익이 신뢰이익보다 작은 경우
반대로 이행이익이 신뢰이익보다 작은 경우에는 이행이익 한도 내에서만 배상이 인정됩니다. 이 경우 채권자는 이행이익 상당액만 배상받을 수 있습니다.
다. 이행이익의 입증
이행이익 한도 원칙이 적용되려면 이행이익이 얼마인지가 먼저 확정되어야 합니다. 이행이익의 입증이 없는 경우 신뢰이익 배상 청구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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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미 지출한 비용과 영업이익을 함께 청구할 때도 주의해야 합니다 — 중복배상 금지
가. 원칙: 이행이익과 신뢰이익은 선택적 청구
신뢰이익의 배상은 이행이익의 배상에 갈음하여 청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따라서 이행이익과 신뢰이익을 중첩적으로 청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나. 예외: 지출비용과 순이익(일실이익)의 병행 청구
다만 대법원은 지출비용(신뢰이익)과 일실이익(이행이익)을 함께 청구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단, 이 경우 중복배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일실이익은 제반 비용을 공제한 순이익에 한정됩니다.
“계약의 일방 당사자가 상대방의 이행을 믿고 지출한 비용도 그러한 지출사실을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고 또 그것이 통상적인 지출비용의 범위 내에 속한다면 그에 대하여도 이행이익의 한도 내에서는 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다만 이러한 비용 상당의 손해를 일실이익 상당의 손해와 같이 청구하는 경우에는 중복배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일실이익은 제반 비용을 공제한 순이익에 한정된다고 보아야 한다.”
다. 구체적 예시
예를 들어 계약이 정상적으로 이행되었다면 매출 5억 원을 올릴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위해 원재료비와 인건비 등 4억 원이 필요한 사업이었다면 5억 원 전체가 이익은 아닙니다. 이미 지출한 비용 4억 원을 별도의 손해로 청구하면서 예상 매출 5억 원까지 그대로 더하는 방식으로 손해를 계산하면 중복이 발생합니다.
이 경우 지출비용 4억 원과 순이익 1억 원(= 5억 원 – 4억 원)을 합산한 5억 원이 청구 가능한 손해의 상한이 됩니다.
따라서 실제 소송에서는 손해항목을 단순히 나열하기보다 각 비용의 성격과 손해액 산정 구조를 먼저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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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실제 분쟁에서는 이런 자료를 확보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계약이 이미 틀어지고 난 뒤 손해자료를 만들려고 하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기업 간 거래에서는 계약서를 체결한 부서와 실제 공장투자를 집행한 부서가 달라 상대방이 투자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계약 이행을 전제로 상당한 비용을 투입하는 거래라면 처음부터 자료를 남겨두는 것이 좋습니다.
① 비용을 지출하게 된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
설비 사양서, 견적서, 발주서, 공사계약서, 내부 투자품의서 등이 해당합니다.
② 상대방이 그 투자를 알고 있었다는 자료
이메일이나 회의록에서 “기계 설치를 위해 9월까지 전력공사를 완료하겠다”, “설비 반입 전에 기초공사를 마치겠다”는 내용이 오갔다면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특별손해의 경우 상대방의 예견가능성에 대한 입증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당사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③ 실제 지출금액을 입증할 자료
세금계산서, 계약서, 계좌이체내역, 원장, 비용명세서 등이 필요합니다.
④ 그 시설이나 자재를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지 여부
계약이 깨졌더라도 다른 사업에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설비라면 지출액 전체를 손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반대로 해당 계약을 위해 주문제작하여 다른 곳에는 사용할 수 없는 시설물이나 자재라면 손해 인정에 유리한 사정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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