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을 앞둔 환자가 병상에서 남긴 말은 법적으로 유언이 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상속 분쟁 실무에서 매우 자주 등장합니다.
민법은 유언의 방식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법정 요건과 방식을 갖추지 못한 유언은 무효입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상태의 환자가 병상에서 구두로 남긴 의사표시를 구수증서 유언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하면서, “병상 유언“의 효력 판단 기준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1. 유언의 방식 — 민법이 정한 5가지
민법 제1060조는 “유언은 본법의 정한 방식에 의하지 아니하면 효력이 생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유언에 관한 엄격한 요식성을 요구합니다.
민법 제1065조에 따라 유언의 방식은 ① 자필증서, ② 녹음, ③ 공정증서, ④ 비밀증서, ⑤ 구수증서의 5종으로 한정됩니다.
이 중 앞의 4가지는 보통방식의 유언이고, 구수증서 유언만이 특별방식의 유언입니다. 특별방식의 유언은 보통방식의 유언이 불가능한 경우에만 보충적으로 인정되므로, 보통방식의 유언이 가능한데도 구수증서 방식으로 유언을 한 경우에는 무효가 됩니다.
2. 구수증서 유언이란 무엇인가
구수증서 유언은 질병이나 기타 급박한 사유로 인하여 자필증서·녹음·공정증서·비밀증서의 방식에 의한 유언을 할 수 없는 경우에, 유언자가 말로 유언 내용을 진술하고 증인이 이를 받아 적어 법이 정한 절차를 거치는 방식입니다 (민법 제1070조 제1항). 즉, 임종이 임박한 위급한 상황에서 최후의 의사를 남길 수 있도록 마련된 예외적 제도입니다.
민법 제1070조 제1항에 따라 구수증서 유언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합니다.
가. 질병 기타 급박한 사유로 다른 방식의 유언을 할 수 없을 것
1) 요건의 의미
이 요건은 구수증서 유언의 가장 핵심적인 요건입니다. 급박한 사유가 없는데도 구수증서로 유언하면 그것은 무효가 됩니다.
판례는 자필증서·녹음·공정증서 및 비밀증서의 방식에 의한 유언이 객관적으로 가능한 경우에는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1999. 9. 3. 선고 98다17800 판결).
2) 판단 기준 — 최근 대법원의 입장
최근 대법원은 환자가 말을 할 수 있었다는 사정 하나만으로 다른 유언 방식이 가능했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즉,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고 있고 사망이 임박한 상황에서는 분명히 말은 나오더라도 문서를 직접 작성하거나 공증 절차를 진행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많으므로, 유언자의 건강 상태, 호흡기 착용 여부, 사망까지의 시간, 당시 주변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나. 2인 이상의 증인이 적법하게 참여할 것
유언자가 2인 이상의 증인의 참여로 그 1인에게 유언의 취지를 구수하여야 합니다 (민법 제1070조 제1항). 증인능력이 없는 사람이 증인으로 참여하면 원칙적으로 유언이 무효가 될 수 있으므로, 증인의 적법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를 ‘구수’할 것
‘유언취지의 구수’란 말로써 유언의 내용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을 뜻합니다.
라. 구수를 받은 자가 이를 필기·낭독할 것
구수를 받은 증인이 유언 내용을 필기하고 이를 낭독하여야 합니다 (민법 제1070조 제1항).
마. 유언자와 증인이 정확함을 승인한 후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할 것
유언자와 증인이 필기 내용이 정확함을 승인한 후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하여야 합니다 (민법 제1070조 제1항).
바. 급박한 사유 종료 후 7일 이내에 법원에 검인 신청을 할 것
구수증서 유언은 그 증인 또는 이해관계인이 급박한 사유가 종료한 날로부터 7일 이내에 법원에 검인을 신청하여야 합니다 (민법 제1070조 제2항). 이 검인은 구수증서 유언의 성립요건으로서, 기간 내에 검인을 받지 못하면 유언의 효력이 없습니다.
3. 구수증서 유언 효력이 인정된 사례(판례)정리
[위암 말기 환자의 병실 구수 유언]
가. 사실관계
- 유언자: 위암 등으로 투병 중, 유언 이틀 후 사망
- 유언 당시 ‘mental drowsy’ 상태(자극 없으면 계속 자지만, 깨우면 반응하고 대답 가능)
- 유언장을 직접 작성하려다 손이 떨려 포기, 말하기는 힘들어 하는 상태
- 같은 병실 환자(L)와 그 보호자(M)가 증인으로 참여, M이 필기·낭독 후 유언자·M·L이 기명날인
- 유언 후 7일 이내 법원에 검인 신청 완료
나. 법원의 판단 (유효 인정)
- 다른 방식의 유언이 가능한 상태였다는 피고들의 주장에 대해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
- 유언자의 건강상태와 유언에 이르게 된 경위를 종합하여 질병으로 인해 다른 방식의 유언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인정
- 증인 2인 참여, 필기·낭독, 기명날인, 검인 신청 등 모든 요건 충족
다. 핵심 포인트
말하기 힘들어 하는 상태였더라도 사람들과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하였고, 다른 방식의 유언이 가능했다는 반증이 없으면 구수증서 유언의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봄
[응급실에서 산소마스크·레빈 튜브 착용 상태의 유언]
가. 사실관계
- 유언자: 십이지장 게실 천공·복막염으로 응급실 후송, 수술 직전 유언, 수술 후 3일 만에 사망
- 유언 당시 부분 재호흡 마스크(산소마스크)와 레빈 튜브(코에 삽입하는 의료기기) 착용 상태
- 증인 S가 등기필증을 보여주며 “이 부동산이 맞는지” 질문 → 유언자가 “맞다”고 답변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방식으로 확인
- 유언 후 이틀 만에 검인 신청 완료
나. 법원의 판단 (유효 인정)
- 레빈 튜브를 착용하더라도 말할 때 불편함은 있으나 의사소통에 큰 지장은 없다는 의사 진술 등을 근거로 구수 가능성 인정
- 부동산 지번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등기필증을 확인한 것은 제3자가 미리 작성한 서면에 따른 질문·답변 방식이 아니라, 유언자가 스스로 유언을 하던 중 지번을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
- 유언자의 이전 유서 내용과 이 사건 유언 내용이 일치하는 점 등 유언자의 진의에 따른 구수임을 인정
다. 핵심 포인트
산소마스크·레빈 튜브 착용 상태에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였고, 부동산 지번 확인을 위해 등기필증을 보여준 것은 유언자의 진의에 따른 구수의 일환으로 봄
[폐암 말기 환자의 병실 구수 유언]
가. 사실관계
- 유언자: 폐암 말기, 유언 8일 후 사망
- 유언 당시 불분명한 발음으로 한두 마디 정도 말할 수 있는 상태
- 변호사가 필기, 증인 2인 참여, 검인 완료
- 유언 다음날 생일 자리에서 가족들과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였음
나. 법원의 판단 (유효 인정)
- 발음이 불분명하더라도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였던 점을 근거로 구수 요건 충족 인정
- 구수증서 유언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효력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
다. 핵심 포인트
발음이 불분명하더라도 의사소통 자체가 가능하였다면 구수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볼 수 있음
4. 요건 위반 시의 효과
위 요건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그 유언은 무효입니다.
5. 실무상 자주 문제되는 상황과 유의사항
가. 병상 유언이 문제되는 대표적 상황
1) 임종 직전 가족에게 구두로 재산 귀속을 이야기한 경우
가족들이 “고인의 뜻이 분명했다”고 주장하더라도, 법원은 당시 상황과 형식 요건을 함께 검토합니다. 가족만 들은 말은 법이 정한 증인 요건과 절차를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아 유언으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2) 의료진이나 간병인이 유언 내용을 받아 적은 경우
증인의 적법성, 기록의 정확성, 낭독 절차 이행 여부 등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랐는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따랐다면 유언이 유효가 될 수 있습니다.
3) 환자가 의식은 있었지만 매우 쇠약한 상태였던 경우
다른 유언 방식이 정말 불가능했는지, 유언 내용이 자발적인 것이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됩니다. 최근 대법원 판례는 이부분을 완화해서 보았습니다.
나. 실무적 유의사항
- 구수증서 유언은 예외적 방식인 만큼 증거와 절차가 더욱 중요합니다. 적법한 증인 참여와 절차적 요건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 급박한 상황이라면 구수증서 유언 요건을 엄격하게 갖추고, 누가 어떤 방식으로 유언 내용을 들었는지, 어떤 증인이 있었는지, 어떤 기록이 남았는지를 분명히 해 두어야 합니다.
- 7일 이내의 검인 신청 기간을 반드시 준수하여야 합니다.
구수증서 유언은 임종 직전의 유언자가 최후의 의사를 남길 수 있도록 마련된 예외적 제도이지만, 그 예외성 때문에 오히려 요건이 엄격하고 분쟁 위험도 큽니다. 최근 대법원은 병상에서 남긴 구두 유언도 상황에 따라 효력이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면서도, 구수증서 유언은 여전히 엄격한 요건 아래에서만 인정되는 예외적 방식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결국 유언 분쟁의 핵심은 “말했는가”가 아니라, 법이 정한 방식에 맞게 마지막 의사가 남겨졌는가에 있습니다. 상속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생전에 법적 방식에 맞춰 유언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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