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체 A사는 발주자 B사와 설비 제작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계약서에는 납품기한을 넘기면 하루마다 계약금액의 일정 비율을 지체상금으로 지급하도록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작이 시작된 뒤 B사는 설비의 크기, 부품 배치, 제어방식, 안전장치 사양을 계속 변경했습니다. A사는 변경된 도면에 맞춰 이미 제작한 부품을 폐기하고 다시 발주해야 했고, B사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느라 작업이 중단된 기간도 있었습니다. 결국 납품은 당초 기한보다 한 달 늦어졌고, B사는 계약서대로 지체상금을 공제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A사는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발주자가 도면을 계속 변경해서 납품이 늦어진 것인데, 왜 우리가 지체상금을 부담해야 합니까?”
이 경우 A사는 지체상금을 전부 지급해야 할까요?

1. 지체상금의 법적 성질과 기본 구조
지체상금은 공급업체(수급인)가 약정된 기한까지 일을 완성하지 못한 경우 지급하기로 미리 정한 손해배상액입니다.
법원은 일관되게 이를 민법 제398조의 손해배상액 예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체상금 약정이 있으면 발주자(도급인)는 납품 지연이라는 채무불이행 사실만 증명하면 되고, 실제 손해액을 따로 입증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대로 공급업체가 지체상금 지급을 면하려면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없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합니다(민법 제390조 단서).
2. 발주자의 설계변경으로 지연된 기간은 지체일수에서 제외될 수 있다
가. 원칙
납품이 늦었다고 해서 공급업체가 모든 지연기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수급인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이행이 지연된 경우 그 기간은 지체일수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일관되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나. 구체적 적용 사례
실제 판결에서 발주자 귀책사유로 지체일수가 제외된 사례들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사례 | 제외된 기간 | 근거 |
| 설계변경으로 공사 중단 | 47일 | 설계변경 및 감리자 승인 대기로 지연되었던 경우 |
| 선행공정(골조공사) 지연 | 39일 | 선행공정 완료 전 착공이 불가했던 경우 |
| 사선폐지로 인한 설계변경 | 14일 | 수급인의 책임 없는 사유로 지연된 경우 |
| 설치 위치 변경(설계변경) | 일부 | 수급인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지연된 경우 |
| 건축주의 수정 요청 | 전 지연기간 | 지연이 피고의 수정 요청 때문었던 경우 |
따라서 A사의 경우, B사가 제작 도중 도면이나 사양을 변경하여 재작업이 필요해졌거나, B사의 승인이 늦어져 후속 작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면, 그로 인해 불가피하게 지연된 기간은 지체일수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
3. 설계변경이 있었다고 납품기한이 자동으로 연장되는 것은 아니다
실무에서 공급업체가 가장 자주 하는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 발주자가 도면을 여러 차례 변경했다.
- 중간에 추가 요구사항이 있었다.
- 담당자의 승인이 늦었다.
- 발주자 측과 계속 협의하느라 작업이 지연됐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만으로 납품기한이 당연히 연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설계변경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약정된 완공기일이 변경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가. 면책을 위한 입증 수준
지체일수 자체를 제외받으려면 단순히 “설계변경이 있었다”는 것을 넘어, 그 변경 때문에 일정 기간 동안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지연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만약 설계변경이 납기 지연의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되었을 뿐, 작업 자체를 완전히 중단시킨 것이 아니라면, 지체일수 전부를 제외받기는 어렵고 지체상금 감액 사유로만 고려될 수 있습니다.
나. 주장의 구체성이 핵심
다음과 같은 막연한 주장은 부족합니다.
도면이 여러 번 변경됐으므로 한 달 정도는 납기가 연장됐다고 봐야 한다.
대신 다음과 같이 지연 과정을 날짜와 공정 단위로 특정해야 합니다.
6월 3일 주요 부품의 규격이 변경되어 기존 제작분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변경 부품을 재발주하여 입고되기까지 12일이 소요되어 해당 기간 동안 후속 조립 공정을 진행할 수 없었다.
6월 18일 제어방식 변경안을 제출했으나 B사의 승인이 6월 27일에 이루어져, 그 사이 9일 동안 배선 및 프로그램 작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결국 분쟁의 핵심은 변경 횟수가 아니라 변경으로 인해 중단된 구체적인 공정과 그 기간을 어떻게 증거로 입증하느냐 입니다.
4. 공급업체의 자체적인 지연사유가 겹치면 전부 면책되기는 어렵다
발주자의 설계변경과 공급업체의 자체 지연사유가 함께 발생한 경우에는 문제가 더 복잡해집니다.
예를 들어 B사가 도면을 변경했지만, 당시 A사도 자재를 확보하지 못했거나 인력 부족으로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설계변경이 없었더라도 납품이 늦어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경우 A사가 단순히 B사의 설계변경만을 이유로 해당 기간 전체를 지체일수에서 제외해 달라고 주장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 분쟁에서는 지연 원인을 다음과 같이 나누어 분석해야 합니다.
| 구분 | 처리 방향 |
| B사의 설계변경으로 작업이 전면 중단된 기간 | 지체일수에서 제외 주장 가능 |
| 변경사항과 관계없이 진행할 수 있었던 작업 | A사의 귀책사유로 처리 |
| A사의 자재·인력·공정관리 문제로 지연된 기간 | A사의 귀책사유로 처리 |
| 양측의 사유가 동시에 영향을 준 기간 | 지체상금 감액 사유로 고려 |
즉, 발주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일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전체 지체상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5. 지체상금이 과다한 경우 법원이 감액할 수 있다
설령 지체일수 전부를 제외받지 못하더라도, 지체상금 약정에 따라 산정된 금액이 부당하게 과다한 경우 법원은 민법 제398조 제2항에 따라 이를 적당히 감액할 수 있습니다.
감액 여부는 다음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합니다.
- 당사자의 지위
- 계약의 목적 및 내용
- 지체상금을 예정한 동기
- 계약금액에 대한 지체상금의 비율
- 지체의 사유 및 경위
- 지체상금의 총액
- 그 당시의 거래관행
특히 지체의 사유가 수급인의 지체책임을 면할 정도에 이르지 않더라도, 그 사유를 포함한 제반 사정을 감안하여 지체상금을 감액할 수 있습니다. 즉, 발주자의 설계변경이 완전한 면책 사유가 되지 않더라도 감액 사유로는 충분히 작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감액 사유로 인정한 바 있습니다.
- 건축주 측의 설계변경이 공사 지연의 원인 중 하나가 된 경우
- 선행공사 지연, 공사 내용 변경 등이 일부 영향을 준 경우
- 도급인의 설계변경 지시, 도면 제공 지연 등 사정
6. “구두로 납기를 늦춰주기로 했다”는 주장도 위험할 수 있다
설계변경 과정에서 발주자 담당자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정도 변경이면 일정은 조금 늦어져도 됩니다.”
“우리가 도면을 늦게 줬으니 납기는 다시 협의하시죠.”
공급업체는 이를 믿고 별도의 서면 없이 변경 작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쟁이 발생하면 발주자는 정식으로 납품기한을 연장해 준 사실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발주자의 구두 발언만으로는 계약의 내용을 변경시키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특히 계약서에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다면 공급업체가 더욱 불리해집니다.
- 계약변경은 서면합의로만 가능하다.
- 납기연장은 발주자의 사전 서면승인을 받아야 한다.
- 담당자의 구두협의는 계약변경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설계변경 요청을 받았다면 단순히 변경된 도면만 확인할 것이 아니라, 그 변경이 납기와 대금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서면으로 남기는 것이 중요하며, 이때 단순히 담당자의 의견을 기재하는 정도가 아니라 상대방 회사의 권한있는 대표의 서명도 필요합니다.
특히 변경요청을 받을 때마다 다음과 같은 취지로 즉시 서면 통지해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본 변경사항을 반영하기 위해 기존 제작분의 재작업과 부품 재발주가 필요하며, 이에 따라 납품예정일이 기존 8월 1일에서 8월 18일로 변경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변경된 납품일정을 승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통지가 없다면 발주자는 “설계변경에는 동의했지만 납품기한 변경에는 동의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7. 계약서에는 설계변경과 납기조정 절차를 함께 정해야 한다
설계·제작·개발계약에서는 단순히 지체상금률만 정할 것이 아니라 변경관리 절차를 함께 두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발주자의 요청 또는 책임 있는 사유로 설계, 규격, 수량, 작업범위가 변경되거나 승인·자료제공이 지연되는 경우, 그로 인하여 합리적으로 필요한 기간만큼 납품기한은 연장된다.”
여기에 다음 사항도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 변경요청의 서면 방식
- 공급업체의 비용·납기 영향 통지기한
- 발주자의 승인기한
- 승인 대기기간의 처리
- 추가비용 부담 주체
- 발주자 귀책기간의 지체일수 제외
- 양측의 지연사유가 겹친 경우의 처리

발주자가 도면이나 사양을 변경하여 납품이 지연되었다면, 그 기간에 대한 지체상금은 제외되거나 감액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계변경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공급업체의 책임이 자동으로 면제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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