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필요한 원자재나 제품을 공급받기로 계약했는데, 납품일을 앞두고 거래처가 갑자기 이렇게 통보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번 물량은 공급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이미 회사도 그 제품을 전제로 고객과 납품일정을 잡아놓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급하게 다른 업체를 찾아 같은 제품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당초 거래처와는 1억 원에 계약했던 물건을 새 업체에서는 1억 3,000만 원에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추가로 부담한 3,000만 원을 기존 거래처에 청구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청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다만 실제로 돈을 더 지급했다는 사실만으로 3,000만 원 전액이 당연히 손해배상액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 가격으로 대체거래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거래가 합리적인 것이었는지, 그리고 발생한 손해가 상대방의 계약위반으로 인한 것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1.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민법 제390조는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자의 고의나 과실 없이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민법 제390조).
따라서 손해배상청구를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의 채무불이행이 존재하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납품기한과 수량이 계약서에 확정적으로 기재되어 있고, 공급업체가 정당한 사유 없이 납품을 거절하거나 납품기한을 도과한 경우라면 채무불이행이 성립합니다.
반면 계약서상 공급물량이 확정되지 않았거나 별도 발주가 필요한 구조였거나, 불가항력 또는 공급중단에 관한 면책조항이 있는 경우에는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분쟁 발생 시 “왜 공급하지 않았는가”보다 먼저 계약서상 어떤 의무를 부담하고 있었는가를 정확히 확인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가. 이행거절의 경우 — 최고 없이 즉시 손해배상 청구 가능
공급업체가 납품기한 전에 “공급하기 어렵다”고 통보한 경우, 이는 이행거절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판례는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할 의사를 명백히 표시한 경우에는 채권자가 신의성실의 원칙상 이행기 전이라도 이행의 최고 없이 채무자의 이행거절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이행거절이라는 채무불이행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할 채무자의 명백한 의사표시가 위법한 것으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행거절의 의사표시는 명시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묵시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으나, 묵시적 이행거절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 의사가 명백하고 종국적으로 표시되어야 합니다.
2. 대체거래 차액의 손해배상 인정 여부
가. 원칙 — 이행이익 배상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계약해제와 아울러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그 계약이행으로 인하여 채권자가 얻을 이익, 즉 이행이익의 배상을 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행이익이란 계약으로부터 발생하는 채무가 그 내용대로 이행되는 데 대하여 채권자가 가지는 이익으로서, 채무가 그 내용에 좇아 제대로 이행되었다면 존재하였을 상태를 회복하는 것을 내용으로 합니다.
이 사안에서는 거래처에 제대로 물건을 공급하였다면 회사는 물건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물건 그 자체의 가치”가 이행이익이 됩니다.
나. 대체거래 차액의 손해 해당 여부
거래처와 1억 원에 계약했으나 거래처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회사가 1억 3,000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제품을 대체구매한 경우, 그 차액 3,000만 원은 원칙적으로 통상손해로서 손해배상의 대상이 됩니다.
민법 제393조 제1항은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은 통상의 손해를 한도로 하고, 제2항은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는 채무자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하여 배상책임이 있다고 규정합니다 (민법 제393조). 통상손해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종류의 채무불이행이 있으면 사회일반의 거래관념 또는 경험칙에 비추어 통상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범위의 손해를 말합니다.
공급업체가 납품을 이행하지 않아 수급자가 시장에서 대체물을 구입하게 되는 경우, 그 구입가격과 기존 계약가격의 차액 및 그 구입에 소요된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의 부대비용은 통상손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다. 이행거절 당시 시가가 손해액 산정의 기준
공급업체가 납품을 명백히 거절한 경우, 손해액 산정의 기준시점은 이행거절 당시의 급부목적물 시가입니다. 대법원은 “채무자의 이행거절로 인한 채무불이행에서의 손해액 산정은, 채무자가 이행거절의 의사를 명백히 표시하여 최고 없이 계약의 해제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에는 이행거절 당시의 급부목적물의 시가를 표준으로 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체거래 가격이 이행거절 당시의 시가와 부합하는 합리적인 수준이었다면 그 차액은 손해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시가보다 현저히 높은 가격으로 대체거래를 한 경우에는 그 초과 부분에 대해서는 손해로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3. 대체거래의 합리성 — 손해배상 인정의 핵심 요건
모든 거래에서 대체거래 차액 전부가 당연히 손해배상액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대체제품을 회사가 불합리하게 높은 가격으로 샀다면 그 차액이 전부 인정되기는 어렵습니다.
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 대체품의 품질·규격이 기존 계약 목적물과 동일하거나 유사한지
- 대체업체 선택 당시 다른 공급업체를 찾을 수 있었는지
- 당시 시장가격이 어느 수준이었는지
- 대체거래를 얼마나 긴박하게 진행해야 했는지
예컨대 시중에서 1억 1,000만 원에 동일한 물건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별다른 이유 없이 1억 5,000만 원에 구입했다면, 추가 지출액 5,000만 원 전부를 기존 거래처에 청구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납품기한이 임박하여 즉시 공급 가능한 업체가 한 곳뿐이었고 그 업체의 가격이 1억 3,000만 원이었다면, 그 차액 3,000만 원은 합리적인 손해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4. 항공운송료·고객사 위약금 등 추가 손해의 청구 가능 여부
공급업체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는 대체구매 차액에 그치지 않습니다. 급행 항공운송료, 고객사에 지급한 지체상금 등도 청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단계부터는 특별손해 문제가 중요해집니다.
민법 제393조 제2항에 따르면 특별한 사정으로 발생한 손해는 채무자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하여 배상책임이 인정됩니다 (민법 제393조).
예컨대 계약 체결 당시 공급업체에게 “이 제품은 8월 15일까지 고객사에 납품해야 하며, 납기가 늦으면 하루 500만 원의 지체상금을 물게 된다.”고 알려두었다면, 공급업체는 납품지연으로 인한 손해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으므로 고객사에 지급한 지체상금도 배상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공급업체가 이러한 사정을 전혀 알 수 없었다면 고객사 위약금 전부를 청구하기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계약일수록 납품기한의 중요성과 계약 불이행 시 발생할 수 있는 손해를 계약서나 이메일에 명시해 두는 것이 실무상 매우 중요합니다.
5. 손해경감의무 — 회사도 손해 확대를 막아야 합니다
가. 법적 근거
우리 민법에 ‘손해경감의무’라는 명칭의 일반조항이 별도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민법 제396조는 채무불이행에 관하여 채권자에게 과실이 있는 때에는 법원이 손해배상의 책임 및 그 금액을 정함에 이를 참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민법 제396조).
대법원은 신의칙 또는 손해부담의 공평이라는 손해배상제도의 이념에 비추어 피해자에게는 손해의 확대를 방지하거나 감경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일반적인 의무가 있고, 피해자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법원이 손해배상액을 정함에 있어 민법 제763조, 제396조의 과실상계 규정을 유추적용하여 그 손해확대에 기여한 피해자의 의무불이행을 참작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나. 실무에서의 적용
공급업체의 계약위반 사실을 알았음에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장기간 방치하다가 가격이 크게 오른 뒤 대체품을 구입했다면, 그 손해 확대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먼저 계약을 위반했으니 이후 발생하는 손해는 전부 상대방 책임”이라는 생각은 법적으로 타당하지 않습니다.
계약위반을 확인한 이후에는 가능한 범위에서 신속히 대체공급처를 알아보고, 가격을 비교하며, 손해가 불필요하게 커지지 않도록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6. 계약 해제 후에도 손해배상 청구 가능
민법 제551조는 “계약의 해지 또는 해제는 손해배상의 청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민법 제551조). 따라서 상대방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계약을 적법하게 해제한 뒤 다른 공급업체와 대체계약을 체결하더라도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습니다.
다만 계약이 합의해제된 경우에는 해제 시에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하기로 특약하거나 손해배상청구를 유보하는 의사표시를 하는 등 다른 사정이 없는 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실무적으로는 기존 계약을 계속 유지하기보다 신속히 대체거래를 진행한 뒤 그로 인해 발생한 합리적인 추가비용을 손해로 청구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거래처의 계약 불이행으로 인해 대체거래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면, 그 차액은 충분히 손해배상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실제 소송에서는 ① 기존 거래처의 채무불이행(특히 이행거절의 명백성·위법성) 여부, ② 대체거래의 필요성과 합리성, ③ 대체가격이 이행거절 당시 시가에 부합하는지, ④ 항공운송료·고객사 위약금 등 추가 손해에 대한 상대방의 예견가능성, ⑤ 피해 회사 측의 손해경감 노력 여부를 종합적으로 따지게 됩니다.
계약이 깨진 직후의 대응이 이후 손해배상 청구의 성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급업체의 계약위반 사실을 서면으로 남기고, 복수 업체의 견적을 확보한 뒤 합리적인 대체거래를 진행하며, 손해 확대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는 자료를 함께 보존해 두는 것이 실무상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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