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사내도급은 그동안 대부분 불법파견으로 인정되어 왔습니다. 특히 포장업무처럼 제조공정과 직결된 업무에서는 적법도급으로 인정받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서울고등법원 2026. 1. 30. 선고 판결(이하 ‘대상판결’)이 철강제조업체의 포장업무에 대해 적법도급을 인정하면서, 제조업 사내도급에서 적법도급이 인정될 수 있는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새롭게 제시하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대상판결의 내용을 중심으로, 제조업 사내도급이 불법파견으로 판단되지 않기 위한 요건을 살펴보겠습니다.
1. 근로자파견 판단의 법리
가. 기본 법리
파견근로자보호법 제2조 제1호에 따르면, ‘근로자파견’이란 파견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자파견계약의 내용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고용주가 어느 근로자로 하여금 제3자를 위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경우, 그 법률관계가 파견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는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받을 것이 아니라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① 제3자가 해당 근로자에 대하여 직·간접적으로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② 해당 근로자가 제3자 소속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되어 직접 공동작업을 하는 등 제3자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③ 원고용주가 작업에 투입될 근로자의 선발이나 근로자의 수, 교육 및 훈련, 작업·휴게시간,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④ 계약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확정되고 해당 근로자가 맡은 업무가 제3자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구별되며 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⑤ 원고용주가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합니다(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 등 참조).
나. 제조업 사내도급에 대한 기존 판례 경향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는 파견법 제5조 제1항에 따라 근로자파견 대상 업무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제조업 사내도급은 대부분 불법파견으로 인정되어 왔습니다(헌법재판소 2013. 7. 25. 선고 2011헌바395 결정 참조). 특히 자동차 제조업에서는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생산공정의 사내하도급이 불법파견으로 판단되면서, 완성차 제조업 전반의 사내하도급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급부상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5다75088 판결; 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 등 참조).
3. 대상판결의 주요 내용
가. 사안의 개요
이 사건은 철강제조업을 영위하는 피고 제철소 내에서 협력업체 소속으로 포장업무를 수행해 온 원고들이 불법파견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 사안입니다. 동일한 업무에 관한 선행사건에서 이미 불법파견으로 인정된 전례가 있었고, 1심법원도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1년 6개월간의 심리 끝에 2026. 1. 30. 적법도급으로 판단하여 제1심판결을 취소하고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나. 대상판결의 판단
대상판결은 근로자파견의 핵심요체인 ‘상당한 지휘·명령’과 ‘업무의 실질적 편입’을 모두 부정하였습니다.
협력업체의 포장작업은 피고가 담당하는 냉연제품 생산공정과 완성 제품 출하공정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공정의 연계성으로 인해 피고 생산공정에 문제가 발생하면 협력업체의 포장작업도 지연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MES(제조실행시스템)를 통한 작업정보 전달도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서울고등법원은 포장업무의 특성과 수행방식, 선행공정에 미치는 영향, 작업과정에서 협력업체에게 일정 부분 존재했던 재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과적으로 상당한 지휘·명령 및 실질적 편입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4. 적법도급 인정을 위한 구체적 요건
대상판결에서 근로자파견관계의 성립을 부정한 주된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 작업표준서·작업사양서 작성·변경에 대한 협력업체의 실질적 관여
피고가 작업표준서나 작업사양서의 작성·변경에 관여한 사실이 있더라도, 실질적인 작성·변경 과정에서 포장업무에 관한 전문성을 갖춘 협력업체의 기술, 경험,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는 점이 중요하게 고려되었습니다.
이는 사용사업주가 작업표준서 작성·변경에 관여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파견의 징표가 될 수 없고, 실질적인 작성·변경 주체가 누구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협력업체가 해당 업무에 관한 전문성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작업표준서 등의 작성·변경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경우, 적법도급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2016. 12. 21. 선고 2014가합4417, 2016가합9089 판결 참조).
나. MES를 통한 정보 전달의 성격
MES 시스템을 통한 포장사양·포장규격의 전달은 고객 요청사항을 전달하는 것으로서, 도급업무 수행을 위한 정보 전달에 불과할 뿐 구속력 있는 업무지시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판시입니다. 대법원은 MES를 통한 작업정보 전달이 구속력 있는 업무지시로 기능한다고 판단한 바 있고(대법원 2022. 7. 28. 선고 2016다40439 판결), 이후 ‘MES = 불법파견’이 공식처럼 오해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MES를 활용했다는 사실만으로 일률적으로 파견의 징표라고 볼 수 없다고 명확히 판시함으로써, 전달되는 정보의 내용과 성격에 비추어 구속력 있는 업무지시로 볼 수 없는 경우에는 적법도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이는 MES, 스마트팩토리 등의 활용에 있어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다. 작업량 조절에 대한 협력업체의 재량
포장작업이 선행공정의 차질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았고, 원고들이 일정한 범위 내에서 작업량을 조절할 여지가 있었다는 점도 고려되었습니다.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작업과정에서 일정한 재량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이 점은, 사용사업주의 상당한 지휘·명령을 부정하는 중요한 근거로 작용하였습니다(창원지방법원 2019. 2. 21. 선고 2016가합53374 판결 참조).
라. 도급비 산정방식
대상판결은 작업사양서에 작업별 표준인원이 기재되어 있고 이에 따라 도급비가 산정되었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피고가 일반적 작업배치권을 행사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즉, 도급비가 투입 인원을 기준으로 산정되었다는 사정 자체는 파견의 징표가 되기 어렵습니다. 다만 도급비 산정방식은 다른 요소들과 함께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2016. 12. 21. 선고 2014가합4417, 2016가합9089 판결 참조).
마. 협력업체와 사용사업주 간의 관계
협력업체 대표이사 중 피고 임원 출신이 많다고 하더라도, 협력업체가 피고의 계열회사이고 피고가 최대주주인 점을 감안하면 이를 파견의 징표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협력업체와 사용사업주 사이의 자본관계나 인적 관계만으로는 파견의 징표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관계가 협력업체의 독립성을 부정할 정도로 실체가 없는 경우에는 달리 판단될 수 있습니다(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5다75088 판결 참조).
5. 최근 판례 동향
가. 근로자파견 판단의 핵심 요소
최근 판례들은 근로자파견 판단에 있어 ‘사용사업주의 상당한 지휘·명령‘과 ‘사용사업주 사업에의 실질적 편입‘을 핵심적인 징표로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2024. 7. 25. 선고 2020다244894 판결; 대법원 2024. 8. 23. 선고 2022다218936 판결 참조).
특히 대법원 2024. 7. 25. 선고 2020다244894 판결은 “제3자가 그 근로자에 대하여 직·간접적으로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그 근로자가 제3자 소속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되어 직접 공동작업을 하는 등 제3자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나. 도급인의 일반적·추상적 지시와 구속력 있는 지시의 구별
도급인은 일의 완성을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수급인에게 도급계약의 효율적 이행을 위한 지시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도급인의 일반적·추상적 지시는 근로자파견관계의 징표로서의 상당한 지휘·명령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며(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11. 7. 선고 2022가합567848 판결 참조), 이는 어디까지나 도급계약의 효율적 이행을 위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다. 업무의 전문성·기술성
협력업체가 해당 업무에 관한 전문성과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적법도급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대법원 2024. 8. 23. 선고 2022다218936 판결 참조). 다만, 업무의 전문성·기술성은 부차적·보완적인 고려요소에 해당하므로, 근로자파견관계 여부는 관련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합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7. 13. 선고 2020가합558260 판결 참조).
라.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업무의 의미
파견법 제5조 제1항은 “근로자파견사업은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를 제외하고 전문지식·기술·경험 또는 업무의 성질 등을 고려하여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무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를 대상으로 한다”고 규정합니다(대법원 2024. 7. 25. 선고 2020다244894 판결 참조). 따라서 해당 업무가 직접생산공정업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실무상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6. 실무상 유의사항
가. 협력업체의 독립성 확보
협력업체는 해당 업무에 관한 전문성과 기술력을 보유하고, 독립적인 기업조직과 설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아울러 작업에 투입될 근로자의 선발, 근로자의 수, 교육 및 훈련, 작업·휴게시간,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여야 합니다(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 참조).
나. 작업표준서·작업사양서 작성·변경에 대한 협력업체의 실질적 관여
사용사업주가 작업표준서나 작업사양서의 작성·변경에 관여하더라도, 실질적인 작성·변경 과정에서 협력업체의 기술, 경험,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협력업체가 해당 업무에 관한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며, 작업표준서 등의 작성·변경 과정에서 협력업체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미리 확보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 MES 등을 통한 정보 전달의 성격 명확화
MES 등을 통한 정보 전달이 도급업무 수행을 위한 정보 전달에 불과하고 구속력 있는 업무지시가 아님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전달되는 정보의 내용과 성격을 분명히 하고, 협력업체가 해당 정보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판단과 재량을 갖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라. 협력업체 근로자의 작업 재량 확보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작업과정에서 일정한 재량을 갖고 작업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사용사업주의 상당한 지휘·명령을 부정하는 실질적인 근거가 됩니다.
마. 도급비 산정방식의 합리성 확보
도급비가 투입 인원을 기준으로 산정되더라도 이것이 사용사업주의 일반적 작업배치권 행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급비 산정방식은 업무의 특성과 도급계약의 내용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대상판결은 제조업 사내도급, 특히 포장업무에서 적법도급을 인정한 최초의 선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그동안 손쉽게 파견의 징표로 인정되어 왔던 작업표준서·작업사양서의 작성·변경, MES를 통한 정보 전달, 도급비 산정방식 등이 당연히 파견의 징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으로, 향후 제조업 사내도급 사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제조업 사내도급이 불법파견으로 판단되지 않기 위해서는 ① 협력업체의 독립성 확보, ② 작업표준서·작업사양서 작성·변경에 대한 협력업체의 실질적 관여, ③ MES 등을 통한 정보 전달의 성격 명확화, ④ 협력업체 근로자의 작업 재량 확보, ⑤ 도급비 산정방식의 합리성 확보가 필요합니다.
다만, 근로자파견 여부는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되는 것이므로, 개별 사안의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제조업 사내도급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대상판결에서 제시된 기준을 참고하여, 도급계약의 내용과 실제 업무 수행 방식을 점검하고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