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체 A사는 약 3년 동안 거래처 B사로부터 매달 제품을 발주받았습니다. B사의 요청에 맞춰 전용 금형과 생산설비까지 마련했고, 납품 일정을 맞추기 위해 직원도 추가 채용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B사는 별다른 설명 없이 이렇게 통보했습니다.
“내부 사정으로 앞으로는 발주하지 않겠습니다.”
A사의 매출 중 B사 비중은 약 60%였습니다. A사는 거래가 계속되었다면 얻을 수 있었던 매출과 영업이익을 배상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거래했다는 사실만으로 거래처가 앞으로도 계속 발주할 법적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사건의 핵심은 양측의 거래가 단순히 개별 발주가 반복된 것인지, 아니면 장래의 거래 지속까지 약속한 계속적 공급계약인지가 먼저 확인되어야 합니다.

1. 거래처는 원칙적으로 거래를 중단할 수 있습니다
기업 간 거래에서는 기본계약서를 체결한 뒤 거래처가 필요할 때마다 발주서를 보내는 방식이 흔히 사용됩니다.
그런데 기본계약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없다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 계약기간
- 연간 또는 월간 최소구매량
- 발주 예정 물량
- 독점공급 의무
- 계약 갱신 조건
- 계약 해지 사유와 사전 통보기간
이 경우 기본계약서는 제품의 가격, 납품, 검수, 하자책임 등 거래조건만 정하고, 실제 매매계약은 개별 발주가 있을 때마다 별도로 성립하는 구조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법원도 “계속적인 물품공급계약에서 구체적인 수량, 거래단가, 거래시기 등에 관하여까지 구체적으로 미리 정하고 있지 않은 이상, 계속적 물품공급계약 그 자체에 기하여 거래당사자의 채권이 바로 성립하지는 아니하며, 주문자가 상대방에게 구체적으로 물품의 공급을 의뢰하고 그에 따라 상대방이 물품을 공급하는 별개의 법률관계가 성립하여야만 채권이 성립한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발주한 제품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것은 계약 위반이 될 수 있지만, 아직 발주하지 않은 장래 물량까지 계속 주문해야 할 의무는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거래가 3년 또는 10년간 계속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장래 발주의무가 자동으로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2. 먼저 ‘개별 발주의 반복’인지 ‘계속적 공급계약’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가. 개별 발주가 각각 별개의 계약인 경우
다음과 같은 구조라면 거래처가 장래 발주를 중단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어렵습니다.
- 거래처가 필요한 수량만 수시로 발주했다.
- 최소구매량이나 예상 물량에 관한 합의가 없었다.
- 발주하지 않더라도 책임을 진다는 조항이 없다.
- 납품업체도 다른 거래처에 동일 제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
- 거래처가 매월 제공한 수요예측은 참고자료에 불과했다.
- 기본계약서에 “개별 발주서가 접수되어야 주문이 확정된다”고 정해져 있다.
이 경우 거래처가 과거에 반복적으로 발주했다는 것은 과거의 거래 실적일 뿐, 앞으로도 동일한 물량을 주문하겠다는 확정적인 약속은 아닙니다. 법원은 “이 사건 계약에서 발주 의무가 규정되어 있지 않고”, “최소 수량이나 독점적 관계도 아니므로 피고에게 개별계약 체결 의무가 없다”고 판단하여 납품업체의 청구를 기각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최근 3년간 연평균 매출이 10억 원이었으니 앞으로 3년간 30억 원의 매출을 보장받았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대로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나. 장래 거래를 예정한 계속적 공급계약인 경우
반대로 계약서 명칭이 단순한 ‘기본거래계약서’라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사정이 확인되면 계속적 공급계약이 인정될 여지가 있습니다.
- 계약기간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 연간 최소구매량이나 최소매출액이 약정되어 있다.
- 거래처가 일정 기간 독점적으로 제품을 공급받기로 했다.
- 납품업체도 경쟁업체와 거래하지 않기로 했다.
- 월별·분기별 발주계획이 구체적으로 확정되어 있었다.
- 거래처의 요청으로 전용 금형이나 전용 생산라인을 설치했다.
- 설비투자비를 일정 기간의 거래를 통해 회수하기로 협의했다.
- 계약을 해지하려면 일정 기간 전에 통보하도록 정해져 있다.
- 정당한 해지 사유가 있을 때만 계약을 종료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법원은 계속적 거래계약에서 개별계약 체결 의무가 인정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 “당사자가 당해 계약에 이른 동기와 경위, 당사자가 당해 계약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 사이에 명시적·묵시적으로 형성된 거래의 원칙, 당해 업계에 있어서의 거래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개별계약 체결이 당사자의 의무로 되는 경우, 그 의무를 부담하는 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거래를 일방적으로 중단하여 계속적 거래계약을 부당하게 파기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관계에서 채무불이행이 되고, 상대방은 그로 인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3. 계약기간이 남아 있다면 발주 중단의 책임이 커집니다
가. 계약기간 중 발주를 전면 중단한 경우
계약기간을 3년으로 정하고 연간 최소 1만 개를 구매하기로 약정했다면, 거래처가 계약기간 중 발주를 중단하는 것은 명확한 채무불이행이 됩니다.
납품업체는 원칙적으로 다음 손해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 미이행 최소구매량에 관한 이익
- 확정 발주를 믿고 구입한 원재료 비용
- 전용 포장재 및 부자재 비용
- 거래처 전용 설비의 미회수 투자비
- 계약 이행을 위해 추가 지출한 합리적인 비용
민법 제390조는 채무자가 약정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실제 배상 범위는 민법 제393조에 따라 통상손해와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특별손해로 제한됩니다(민법 제390조, 제393조).
나. 계약서상 해지절차를 위반한 경우
계약서에 “계약을 해지하려는 당사자는 90일 전에 서면으로 통보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면 이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거래처가 이러한 조항을 무시하고 즉시 발주를 중단했다면, 계약관계 자체를 영구히 유지하도록 강제하기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약정된 사전 통보기간에 해당하는 손해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90일 전 통보조항이 있다면, 납품업체가 대체 거래처를 확보하고 생산량을 조정할 수 있었던 90일 동안의 손해를 중심으로 청구 구조를 짜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4.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청구가 훨씬 어려워집니다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속적 계약은 그 성질상 당사자가 장래를 향해 해지할 수 있다고 해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 판례도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속적 계약에서는 일방적 의사표시에 의한 종료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주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 오랫동안 거래했으므로 계속 발주할 것이라고 믿었다.
- 전체 매출에서 해당 거래처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 거래가 끊기면서 회사 경영이 어려워졌다.
- 거래처가 다른 납품업체로 교체한 것은 부당하다.
거래처 의존도가 높다는 사정은 납품업체의 손해가 크다는 점은 보여주지만, 그것만으로 거래처의 발주의무를 발생시키지는 않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신의칙 위반이나 권리남용 여부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가. 장기간 거래를 전제로 대규모 투자를 요구한 경우
예를 들어, 거래처가 “앞으로 최소 5년은 거래할 예정이니 전용 설비를 설치해 달라”고 요구했고, 납품업체가 이를 믿고 수억 원을 투자했는데 거래처가 설비 설치 직후 아무런 사유 없이 발주를 중단했다면, 단순한 거래선 변경과는 다르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납품업체가 일방적으로 투자를 결정한 것이 아니라, 거래처가 장기간 거래를 약속하거나 적극적으로 투자를 요청했다는 점입니다.
반면 법원은 기본계약서에 발주예고의 구속력을 명백히 배제하는 조항이 있고, 납품업체가 재고를 미리 확보한 것이 거래처의 적극적 요구가 아닌 납품업체 자신의 경영상 판단에 불과한 경우에는 신의성실의 원칙 위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나. 발주 확약을 한 뒤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경우
예를 들어, 다음 자료가 있다면 단순한 예상 물량이 아니라 발주 확약으로 인정될 가능성을 검토해야 합니다.
- “2027년까지 연간 5만 개를 구매한다”는 이메일
- 거래처 내부 결재를 거친 구매계획서
- 확정 수량이 표시된 발주예정표
- 설비 증설을 요청하면서 물량을 보장한 회의록
- 원재료 선구매를 요청한 문자나 메신저
- 납품업체가 다른 거래를 포기하도록 요구한 자료
반대로 문서에 “예상”, “참고”, “시장 상황에 따라 변경 가능”, “구매를 보장하지 않음”이라고 기재되어 있다면 확정적인 발주의무를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법원도 발주예고에 구속력이 없다는 점이 계약서에 명시된 경우 “발주예고 단계에서 그에 따른 개별계약이 확실하게 체결되리라는 기대 내지 신뢰가 형성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5. 거래 중단이 공정거래법 위반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업은 원칙적으로 누구와 거래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거래를 중단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공정거래법 위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정거래법상 문제가 되려면 단순한 계약 위반을 넘어 거래거절이 부당하고 공정한 거래를 해칠 우려가 있어야 합니다.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5조도 부당한 거래거절과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는 행위를 불공정거래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5조 제1항 제1호, 제6호).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공정거래법상 쟁점을 별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 거래처가 납품업체에 대해 현저히 우월한 거래상 지위를 가지고 있다.
- 납품업체가 사실상 해당 거래처에 종속되어 있다.
- 부당한 가격 인하나 비용 전가를 거부하자 보복으로 거래를 중단했다.
- 경쟁사업자와 거래했다는 이유로 공급량을 축소했다.
- 합리적인 이유 없이 특정 사업자를 시장에서 배제하려 했다.
- 계약종료를 통보하기 전부터 공급량이나 발주량을 비정상적으로 축소했다.
다만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는 당사자의 거래상 지위, 시장 구조, 거래중단 사유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므로 일반적인 계약 분쟁보다 요건이 엄격합니다.
6. 손해배상이 인정되더라도 ‘줄어든 매출 전부’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거래처의 발주 중단이 계약 위반으로 인정되더라도 손해액 산정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매출액은 손해액이 아닙니다. 제품을 생산하고 납품하려면 원재료비, 물류비, 외주비, 판매수수료 등 각종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손해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계산합니다.
예상 매출액 − 제품 생산과 납품을 위해 추가로 지출했어야 할 비용 = 발주 중단으로 상실한 이익(이행이익)
법원도 계속적 거래계약이 부당하게 파기된 경우 “배상하여야 할 손해의 범위는 거래계약이 계속되었더라면 얻을 수 있었던 이익, 즉 이행이익의 배상에까지 미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가. 이미 확정된 발주의 취소
가장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쉬운 부분입니다. 거래처가 발주서를 발행했고 납품업체가 이를 승낙했다면 개별 계약이 성립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거래처가 일방적으로 주문을 취소했다면 해당 발주 물량의 생산비용과 예상이익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나. 이미 구입한 원재료와 전용 재고
다음 비용도 손해가 될 수 있습니다.
- 다른 거래처에 사용할 수 없는 전용 원재료
- 거래처 상표가 인쇄된 포장재
- 거래처 규격에만 맞는 부품
- 이미 생산했지만 납품하지 못한 완제품
다만 원재료나 완제품을 다른 곳에 판매하거나 재활용할 수 있다면 그 가액은 손해액에서 공제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법원은 납품업체가 거래 중단 이후 피고의 상호가 기재된 제품을 온라인 쇼핑몰에서 직접 판매하여 재고를 상당 부분 소진한 사정을 고려하여 거래처의 책임을 30%로 제한한 사례도 있습니다.
다. 전용 금형과 생산설비의 미회수 비용
전용 설비의 전체 취득가격을 곧바로 청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상당 기간 설비를 사용하여 투자비를 일부 회수했다면 다음과 같이 계산해야 합니다.
설비 투자금 − 감가상각 또는 이미 회수한 금액 − 다른 용도로 전환할 수 있는 잔존가치 = 미회수 투자손해
거래처가 설비투자를 요청했고, 일정 거래기간을 통해 투자비를 회수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는 자료가 중요합니다. 반면 법원은 투자비용이 통상적인 지출 비용으로 보기 어렵거나 산정 근거가 부족한 경우 이를 인정하지 않은 바 있습니다.
라. 장래 영업이익
장래 영업이익은 가장 큰 금액을 청구할 수 있지만 입증이 가장 어렵습니다. 법원은 장래 영업손실의 발생 자체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증거를 요구합니다.
기본적으로 다음 자료가 필요합니다.
- 최근 3년 또는 5년간 월별 발주량
- 제품별 매출액과 매출총이익
- 원재료비·외주비·운송비 등 변동비
- 월별 발주 전망 자료
- 확정된 계약기간과 최소구매량
- 거래처의 설비투자 요청 자료
- 거래 중단 후 대체 매출 발생 여부
- 대체 거래처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 자료
특히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거래가 영구적으로 지속되었을 것을 전제로 수년간의 이익을 청구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대체 거래처를 찾는 데 통상적으로 필요했을 합리적인 기간 또는 계약서상 사전 통보기간을 중심으로 손해를 계산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장기간 거래한 거래처가 갑자기 발주를 중단하면 납품업체로서는 부당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거래 중단 분쟁에서는 단순히 과거 매출자료만 계산할 것이 아니라, 거래처가 앞으로도 발주할 계약상 의무를 부담했는지부터 증거를 통해 확인해야 합니다. 그 의무가 입증되지 않으면 매출이 크게 감소했더라도 손해배상청구는 인정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상담이 필요한 경우 상단의 “상담 문의/예약“을 이용해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