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분쟁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부동산을 유언대용신탁으로 맡겨놨습니다.”
“사망하면 형에게 넘어가도록 해놨다는데, 그럼 저는 아무것도 못 받는 건가요?”
“이미 은행에서 형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까지 마쳤습니다.”
이 경우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미 신탁재산이니까 상속재산이 아니다.”
“상속재산이 아니면 유류분도 청구할 수 없다.”
최근 상속 분쟁에서는 유언대용신탁이 유류분 분쟁의 핵심 쟁점이 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아래에서 유언대용신탁과 유류분의 관계를 차례로 설명드리겠습니다.

1. 유언대용신탁이란 무엇인가
유언대용신탁은 말 그대로 “유언을 대신하는 신탁”입니다. 신탁법 제59조는 ① 수익자가 될 자로 지정된 자가 위탁자의 사망 시에 수익권을 취득하는 신탁, 또는 ② 수익자가 위탁자의 사망 이후에 신탁재산에 기한 급부를 받는 신탁을 유언대용신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신탁법 제59조).
예를 들어 아버지가 건물 한 채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아버지는 생전에 해당 건물을 은행(수탁자)에 신탁합니다. 그리고 신탁계약서에 다음과 같이 정합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내가 수익을 받는다.”
“내가 사망하면 장남 A에게 이 건물을 귀속시킨다.”
그러면 아버지가 사망한 후 신탁계약에 따라 건물은 A에게 이전됩니다. 별도의 유언검인 절차도 필요 없고, 상속재산 분할협의도 필요 없습니다. 최근에는 자산가들 사이에서 상당히 많이 활용되고 있는 제도입니다.
// 유언대용신탁은 2011년 신탁법 전부 개정 시 도입된 제도로, 본래 사실상 유언과 동일한 효과를 발생시키면서도 민법상 유언 및 상속의 법리를 따르지 않는 제도로 설계되었습니다. 민법이 정한 엄격한 유언 방식(자필증서, 공정증서 등)을 갖추지 않아도 되고, 위탁자는 원칙적으로 언제든지 수익자를 변경하거나 신탁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유연한 상속설계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2. “신탁재산은 상속재산이 아니다”는 주장
신탁이 설정되면 법률상 소유자는 수탁자인 은행이 됩니다. 즉 부동산 등기부를 보면 더 이상 피상속인 명의가 아닙니다. 부동산의 신탁에서 수탁자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게 되면 대/내외적으로 소유권이 수탁자에게 완전히 이전되게 됩니다.
그래서 재산을 받은 상속인 측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이미 그 건물은 아버지 재산이 아니었다.”
“상속재산이 아니므로 유류분도 인정될 수 없다.”
언뜻 들으면 맞는 말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신탁이 설정된 순간 소유권은 수탁자에게 이전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유류분을 피할 수 있을까요?
3. 유류분 제도의 기본 구조
유류분이란 피상속인의 재산 처분의 자유를 일정 범위에서 제한하여, 상속인에게 최소한의 상속분을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민법은 직계비속과 배우자에게는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직계존속에게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민법 제1112조).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은 피상속인이 상속개시 시에 가진 재산의 가액에 증여재산의 가액을 가산하고 채무의 전액을 공제하여 산정합니다 (민법 제1113조 제1항). 그리고 유류분권리자가 피상속인의 증여 및 유증으로 인하여 그 유류분에 부족이 생긴 때에는 부족한 한도에서 그 재산의 가액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1115조 제1항).
4. 유언대용신탁이 유류분 제도를 무력화할 수 있는가
만약 “신탁재산은 상속재산이 아니므로 유류분 대상이 아니다”는 주장이 모두 인정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버지가 가진 재산이 100억 원이라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사망 직전에 모든 재산을 유언대용신탁에 넣고 장남에게만 귀속되도록 설정합니다. 그러면 다른 자녀들은 유류분을 전혀 주장할 수 없게 됩니다. 결국 유류분 제도 자체가 사실상 무력화됩니다.
하급심 판례에서는 이러한 취지를 반영한 판결을 내리고 있습니다. 법원도 결국 형식보다는 “실질”을 보기 때문입니다.
5. 법원이 보는 핵심: ‘실질’
유언대용신탁은 형식상 신탁계약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보면 “내가 죽으면 이 재산은 A에게 준다”는 것으로, 일반적인 유증이나 사인증여와 매우 유사합니다.
법원은 이 실질에 주목합니다. 구체적으로 법원이 제시하는 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 위탁자가 사실상 신탁재산을 지배한다
유언대용신탁의 위탁자는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수익자를 변경할 수 있고(신탁법 제59조 제1항), 신탁행위로 달리 정하지 않는 한 언제든지 유언대용신탁을 종료시키고 신탁재산을 위탁자 명의로 복귀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유언대용신탁계약을 체결한 이후로도 여전히 위탁자가 신탁재산을 사실상 지배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나. 사인증여와 실질이 유사하다
유언대용신탁의 법률관계를 실질적으로 살펴보면 민법 제562조가 정한 사인증여와 유사합니다. 수익자는 실질적인 의미에서 위탁자의 재산출연으로 위탁자의 사망 시 그 신탁재산 또는 수익권 상당의 경제적 가치를 증여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6. 유류분 반환청구의 상대방: 수탁자인가, 수익자인가
유언대용신탁에서 유류분 반환청구의 상대방이 누구인지도 중요한 쟁점입니다.
이 점에 관하여 법원은 일관되게 수탁자가 아닌 수익자를 상대방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수탁자에 대한 증여로 본다면, 유언대용신탁 후 1년이 지나 피상속인이 사망한 경우 유류분권리자는 위탁자와 수탁자 쌍방이 유류분권리자에게 손해를 가할 것을 알고 증여한 사실을 증명하여야만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포함시킬 수 있게 됩니다(민법 제1114조).
그러나 이는 사실상 유류분 청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따라서 법원은 신탁계약으로 망인이 수탁자에게 소유권을 이전한 것을 유류분에 있어 제3자에게 증여한 것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고, 유류분 반환청구의 상대방을 수익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7. 유류분 산정 시 유언대용신탁 재산의 취급
가. 증여재산으로 산입
법원은 유언대용신탁에 따른 재산권의 이전이 무상이전에 해당하는 이상, 이를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증여재산에 해당한다고 보는 경향입니다. 수익자인 피고가 유언대용신탁 과정에서 위탁자인 망인에게 이와 관련한 대가를 지급한 바 없는 이상 위 유언대용신탁에 따른 재산권의 이전은 그 성질상 무상이전에 해당하고, 따라서 이는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증여재산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사례가 있습니다.
나. 공동상속인의 특별수익으로 산입
수익자가 공동상속인인 경우에는 민법 제1114조의 1년 제한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공동상속인 중에 피상속인으로부터 재산의 생전 증여에 의하여 특별수익을 한 자가 있는 경우에는 민법 제1114조의 적용이 배제되어, 그 증여는 상속개시 1년 이전의 것인지 여부, 당사자 쌍방이 손해를 가할 것을 알고서 하였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유류분 산정을 위한 기초재산에 산입됩니다.
8. 실제 분쟁에서 충돌하는 주장
실제 소송에서는 보통 다음과 같은 주장이 충돌합니다.
| 구분 | 주장 내용 |
|---|---|
| 유류분 청구 측 | “실질적으로는 사망 후 특정 상속인에게 재산을 무상 이전한 것이다. 유증 또는 사인증여와 동일하게 보아야 한다.” |
| 재산 수령 측 | “신탁계약에 따른 권리취득일 뿐이다. 상속이나 유증이 아니다. 상속재산이 아니므로 유류분 대상이 아니다.” |
결국 법원은 신탁계약의 내용, 수익자 구조, 재산 귀속 방식, 위탁자의 지배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실질에 따라 판단하게 됩니다.
유언대용신탁은 상속설계에 매우 유용한 제도입니다. 그러나 “신탁을 하면 유류분 문제도 사라진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법원은 신탁의 형식보다 실질을 살펴봅니다. 유언대용신탁에 따른 재산 이전이 실질적으로 무상이전에 해당하는 이상, 이는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증여재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는 유류분 반환청구가 제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특정 자녀만 재산을 받는 경우
- 재산 대부분이 신탁재산인 경우
- 다른 상속인들이 사실상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경우
따라서 가족 간 분쟁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라면, 신탁계약 체결 단계부터 유류분 문제를 함께 검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산 대부분을 특정 자녀에게 집중시키는 구조라면 향후 유류분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미리 점검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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