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녀에게 수억 원 송금했는데… 차용증 없으면 증여인가?

가족 사이에서는 큰돈이 오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사업자금을 보내주기도 하고, 전세보증금이나 아파트 계약금 명목으로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을 지원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반대로 자녀가 부모에게 생활비나 사업 운영자금을 송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금전 거래가 대부분 매우 느슨한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가족끼리 무슨 차용증까지 쓰냐”
“나중에 정리하면 되지”
“일단 급해서 보냈다”

실제로는 이런 식으로 계좌이체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가족관계가 틀어지거나, 상속 문제가 발생하거나, 세무조사가 시작되거나, 돈을 돌려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보낸 사람은 “빌려준 돈이다” 라고 주장하고, 받은 사람은 “증여받은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상황이 매우 자주 발생합니다.

이 경우 법적으로는 단순한 표현 하나가 아니라, 그 돈이 실제로 어떤 구조와 의사 아래 이동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됩니다.

가족간돈거래:대여와증여

1. 대여와 증여의 구분

가. 소비대차(대여)와 증여의 개념

민법은 소비대차를 “당사자 일방이 금전 기타 대체물의 소유권을 상대방에게 이전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은 그와 같은 종류, 품질 및 수량으로 반환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고 정의합니다 (민법 제598조).

반면 증여는 “당사자 일방이 무상으로 재산을 상대방에 수여하는 의사를 표시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고 규정합니다 (민법 제554조).

즉, 대여와 증여를 가르는 결정적 기준은 ‘반환 약정’의 존부입니다.

나. 증명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돈을 빌려줬다고 주장하는 쪽(원고)이 대여 사실을 증명해야 합니다. 차용증이 없다고 해서 자동으로 증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차용증이 없으면 원고의 증명이 매우 어려워집니다.

판례도 아래와 같이 판시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예금계좌에 금전을 이체하는 등으로 송금하는 경우 그 송금은 소비대차, 증여, 변제 등 다양한 법적 원인에 기하여 행하여질 수 있는 것이므로, 그러한 송금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소비대차에 관한 당사자의 의사합치가 있었다고 쉽사리 단정할 수 없고, 당사자 사이에 금전의 수수가 있다는 사실에 관하여 다툼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를 대여하였다는 원고의 주장에 대하여 피고가 다투는 때에는 그 대여사실에 대하여 이를 주장하는 원고에게 증명책임이 있다.”

2. 법원이 대여 vs. 증여를 판단하는 고려 요소

판례는 아래와 같이 판시합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금전 수수가 소비대차인지 증여인지 여부가 쟁점이 된 경우, ① 당사자 간의 평소 친밀도 및 신뢰 관계, ② 금전 지급의 시기와 액수의 규모, ③ 원천적인 자금의 출처와 사용처, ④ 지급 당시 부모와 자식 각각의 경제적 자력, ⑤ 반환에 관한 구체적인 약정이나 이자 지급 여부, ⑥ 사후적으로 반환을 요구하게 된 시점과 그 동기, ⑦ 차용증 등 처분문서의 작성 여부 등 수수 전후의 객관적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판단하되, 위와 같은 부모라는 특수한 사회적 사정과 일반인의 법 감정 등을 두루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또한 부모·자녀 관계의 특수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금원을 지급하며 ‘빌려준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이는 자녀의 자발적인 변제를 기대하거나 심리적인 부담을 주려는 의도일 뿐, 만약 자녀가 이를 갚지 못할 때 소송을 제기하거나 강제집행을 하는 등 법적 절차를 통해 회수하려는 확정적인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려는 의사까지는 가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부모의 법 감정이다.”

즉, 부모·자녀 사이에서는 단순히 “빌려준다”, “나중에 갚아라”라는 말을 했다는 사정만으로 바로 법적 의미의 대여금으로 인정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는 부모가 자녀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과정에서 형식적으로 차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고, 자녀가 갚지 못하더라도 실제로 법적 조치를 취할 의사까지 있었는지는 별개의 문제로 보기 때문입니다.

3. 실제 판례 분석 — 증여로 본 사례 vs. 대여로 본 사례

가. 증여로 판단한 사례들

1) 7년간 약 2억 7천만 원 송금한 사례

사실관계: 어머니(원고)가 아들(망인)과 며느리(피고)에게 2017년부터 2024년까지 약 7년간 수십 차례에 걸쳐 합계 276,503,500원을 송금하였습니다. 아들 부부는 피고의 해외 유학 기간 중 별다른 수입 없이 생활하였습니다.

법원의 판단 — 증여:

2) 자녀·손자녀에게 각 5천만 원씩 송금

사실관계: 원고가 자녀와 손자녀에게 각 5천만 원씩 송금하였는데, 수령자들이 모두 증여세 신고를 마쳤습니다.

법원의 판단 — 증여:

3) 유학비용 등 약 2억 6천만 유로 상당

사실관계: 시어머니(원고)가 아들 부부의 프랑스 유학 기간 중 45회에 걸쳐 합계 196,700유로를 송금하였습니다.

법원의 판단 — 증여:

4) 신혼집 전세자금 8천만 원

사실관계: 어머니(원고)가 아들의 결혼 당시 며느리(피고) 계좌로 8천만 원을 송금하였습니다.

법원의 판단 — 증여:

나. 대여로 판단한 사례들

1)  1억 1천만 원 대여

사실관계: 어머니(원고)가 은행에서 대출받아 아들(피고)에게 1억 1천만 원을 교부하였고, 피고는 그 대출금 분할상환금을 직접 납부하였습니다.

법원의 판단 — 대여:

2)  6억 원에 차용증서가 있는 경우

사실관계: 원고가 피고(사실혼 배우자의 딸)에게 6억 2,500만 원을 지급하고 다음 날 차용증서를 작성하였습니다.

법원의 판단 — 대여:

3)  4,200만 원 지급

사실관계: 70~80대 고령의 원고 부부가 아들(피고)에게 4,200만 원을 지급하였는데, 원고는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아 마련한 돈이었습니다.

법원의 판단 — 대여:

4. 판례 논점 정리

가. 차용증 없다고 자동으로 증여가 되지는 않는다

법원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금전 거래에 차용증이 작성되는 경우가 오히려 이례적”이라고 보아, 차용증 부재만으로 대여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

나. 그러나 차용증 없으면 대여 증명이 극히 어렵다

차용증이 없는 경우, 대여를 주장하는 원고는 다음과 같은 간접 사실들을 통해 반환 약정의 존재를 증명해야 합니다.

5. 사해행위취소 맥락에서의 추가 쟁점

채권자가 채무자(부모)의 자녀에 대한 송금을 ‘증여’로 보아 사해행위취소를 구하는 경우에도 동일한 법리가 적용됩니다.

이 경우 증여임을 주장하는 채권자(취소채권자)에게 증명책임이 있습니다. 즉, 자녀가 “이건 빌린 돈”이라고 다투면, 채권자가 그것이 증여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6. 실무적 시사점

가. 부모 입장에서 — 나중에 돌려받고 싶다면

나. 자녀 입장에서 — 증여임을 주장하고 싶다면

다. 채권자 입장에서 — 사해행위취소를 구하고 싶다면

차용증이 없다고 해서 자동으로 증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자녀 간 금전 수수에서 차용증 없이 대여를 주장하는 것은 매우 불리한 지점입니다. 결국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수준의 반환 의사가 쌍방 간에 합치되었는가”가 핵심이며, 이를 객관적 증거로 뒷받침하지 못하면 법원은 증여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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