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허가가 나면 잔금을 지급한다”는 계약… 그런데 일부러 협조를 안 하면 어떻게 될까?

토지 매매계약에서는 다음과 같은 특약이 자주 등장합니다.

“건축허가가 완료되면 잔금을 지급한다.”

“개발행위허가가 완료되면 잔금을 지급한다.”

공장부지, 창고부지, 상가 신축 예정지, 전원주택 개발 토지 거래에서 특히 흔한 구조입니다. 매수인 입장에서는 실제 인허가 가능성을 확인한 뒤 잔금을 지급하고 싶어하고, 매도인 입장에서는 허가 전까지 소유권을 유지하면서 거래를 진행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러한 잔금지급 조건에 필요한 협조를 매수인이 해야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매수인이 거부하거나 미루는 경우도 있습니다. (계약을 파기시키고자 하는 경우)

나중에는 “건축허가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잔금 지급의무도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 법원은 어떻게 판단할까요?

조건성취 방해

1. 계약 구조의 법적 성격 — 정지조건부 법률행위

가. 정지조건이란 무엇인가

“건축허가가 나면 잔금을 지급한다”는 약정은 법적으로 정지조건부 법률행위에 해당합니다.

정지조건부 법률행위란 조건이 성취될 때까지 법률행위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다가, 조건이 성취되면 그때부터 효력이 생기는 구조입니다 (민법 제147조 제1항). 즉, 조건부 법률행위인데 조건이 충족되면 효력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 (참고) 반대로 “건축허가를 받지 못하면 계약이 해제된다”는 약정은 해제조건부 법률행위에 해당합니다. 해제조건부 법률행위는 조건이 성취되면 그때부터 법률행위의 효력이 소멸합니다 (민법 제147조 제2항). 판례도 “주택건설을 위한 토지매매계약에 앞서 당사자의 협의에 의하여 건축허가를 필할 때 매매계약이 성립하고 건축허가신청이 불허되었을 때에는 이를 무효로 한다는 약정 아래 이루어진 본건 계약은 해제조건부 계약이다”라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나. 실무에서 자주 발생하는 구조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을은 중도금까지는 지급하였습니다. 그런데 건축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그 이전 단계로 개발행위허가 절차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을 측에서 준비해야 하는 각종 자료와 서류가 필요했습니다.

갑은 지속적으로 관련 자료 제출과 협조를 요청하였지만, 을은 이를 계속 미루었습니다. 그러던 중 을은 오히려 “위임관계를 종료하겠다”, “계약을 더 진행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통보를 하였습니다. (실제 사례에서 을은 계약대금이 과다하다고 생각해서 계약을 무효로 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갑은 소송을 제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건축허가가 잔금 지급 조건이기는 하지만, 을이 스스로 그 조건 성취를 방해하였다. 따라서 조건은 이미 성취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2. 핵심 법리 — 민법 제150조 조건 성취 방해

가. 조문의 내용

이 사건의 핵심 법리는 민법 제150조입니다.

민법 제150조(조건성취, 불성취에 대한 반신의행위)

① 조건의 성취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을 당사자가 신의성실에 반하여 조건의 성취를 방해한 때에는 상대방은 그 조건이 성취한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

② 조건의 성취로 인하여 이익을 받을 당사자가 신의성실에 반하여 조건을 성취시킨 때에는 상대방은 그 조건이 성취하지 아니한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

나. 방해행위의 범위 — 작위·부작위 모두 포함

방해행위의 형태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작위인지 부작위인지, 법률행위인지 사실행위인지를 묻지 않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행위들이 모두 방해행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를 한 뒤 “아직 건축허가가 안 났으니 잔금은 못 준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민법 제150조 위반 사례입니다.

3. 실제 판례에서 법원이 조건 성취 방해를 인정한 사례

가. 건축허가 신청 취하 및 협조 거부 사례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피고가 합의 의사를 번복하고 건축허가신청을 취하하는 등의 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진입로 교환을 전제로 한 건축허가를 받을 수 없게 된 사안에서, 피고가 신의성실에 반하여 정지조건의 성취를 방해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나. 건축준공신청 지연 사례

울산지방법원은 원고가 합리적 이유 없이 주택신축공사 및 건축준공신청을 하지 않고 있는 경우, 이는 건축준공신청이라는 조건의 성취로 인하여 잔금을 지급해야 하는 불이익을 받을 당사자가 신의성실에 반하여 조건의 성취를 방해한 때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다. 공사확인서 수령 거절 사례

수원지방법원은 피고가 별개의 소송에서 원고가 제출한 자료로 양도소득세를 감면받고, 원고가 보낸 공사확인서의 수령을 거절한 행위를 신의칙에 반한 정지조건 성취의 방해행위라고 평가하였습니다.

4. 개발행위허가·건축허가 실무에서 협조의무가 중요한 이유

가. 허가 절차의 복잡성

토지 개발 관련 계약에서는 실제로 “허가” 자체보다도 “허가를 받기 위한 협조”가 훨씬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건축허가 이전 단계에서 이미 수많은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절차들이 선행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절차는 일방 당사자만으로는 진행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토지 소유자의 협조, 매수인의 자료 제출, 위임장 제공, 인허가 비용 부담, 설계 협조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절차가 진행됩니다.

나. 협조의무 위반의 법적 효과

실제 소송에서 법원은 계약서에 협조의무가 명시되어 있는 경우 이를 계약의 필수적인 의무로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원지방법원은 “공유로 등기되어 있는 토지의 개발행위허가 및 건축신고 등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상호 협조하는 것은 이 사건 계약의 필수적인 의무”라고 판시하였습니다.

또한 수원고등법원은 매도인이 개발행위허가 명의 변경 절차에 협조해야 하는 선이행의무를 제때 이행하지 않아 이행지체에 빠진 경우, 매수인은 이행의 최고 없이도 피고의 선이행의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하여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협조 거부 내지 지연 정황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5. 실무적으로 반드시 검토해야 하는 계약 조항 설계

가. 협조의무의 명시

단순히 “건축허가 후 잔금 지급”이라고만 기재하면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기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매도인(또는 매수인)은 건축허가 취득을 위하여 필요한 서류(토지사용승낙서, 인감증명서, 위임장 등)를 상대방의 요청일로부터 ○일 이내에 제공하여야 한다.”

나. 자료 제출 기한 및 미협조 시 책임 규정

자료 제출 기한을 명시하고, 기한 내 미제출 시의 법적 효과(손해배상, 계약해제 등)를 구체적으로 정해두어야 합니다.

다. 협조 거부 시 조건 성취 간주 조항

민법 제150조의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적으로 반영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일방 당사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인허가 취득에 필요한 협조를 거부하거나 지연하는 경우, 상대방은 해당 인허가가 완료된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

라. 인허가 비용 부담 주체 및 계약관계 종료 제한

인허가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지, 계약관계를 일방적으로 종료할 수 있는지 여부도 명확히 정해두어야 합니다.

마. 계약해제 가능 시점 및 조건 불성취 시 처리

인허가가 최종적으로 불가능하게 된 경우 계약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계약금 반환 여부, 위약금 등)도 미리 정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무에서는 계약 체결 단계에서부터 인허가 협조의무와 조건 성취 방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계해두는 것이 분쟁 예방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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