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매매계약을 앞두고 계약금 일부까지 받았는데, 상대방이 갑자기 “자금 사정이 어려워서 계약을 못 하겠다”고 통보해 온다면 어떻게 하시겠나요?
당연히 황당하고 억울하겠죠. 그래서 나중에 분쟁이 생길 것을 대비해 상대방에게 “계약을 안 하겠다고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확인서” 를 받아두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확인서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1. 실제 사례
가. 사례 개요
- 갑(매도인) 과 을(매수인) 은 갑 소유의 부동산을 매매하기로 합의하고, 계약금·중도금·잔금 및 각 지급일자까지 정했습니다.
- 정식 계약서 작성 전에 을이 계약금 일부를 먼저 지급했습니다.
- 그런데 을이 갑자기 “자금 사정이 어려워 계약서를 체결하지 않겠다” 고 통보했습니다.
- 갑은 이 사실을 증거로 남기기 위해 을에게 “계약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확인서” 를 작성하게 하여 수령했습니다.
- 이후 갑은 을을 상대로 계약 부당파기를 이유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나. 법원의 판단
그런데 하급심 법원은 갑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이유는 바로 그 “확인서” 때문이었습니다.
법원은 확인서의 내용을 보고, 이것이 단순히 을의 일방적 통보를 확인한 문서가 아니라, 갑과 을이 서로 합의하여 계약을 해제한 것(합의해제) 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2. “합의해제”란?
가. 합의해제의 의미
합의해제(합의해제 계약) 란, 계약 당사자 쌍방이 서로 합의하여 기존 계약의 효력을 없애고, 처음부터 계약이 없었던 것과 같은 상태로 되돌리기로 하는 새로운 계약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 그냥 없던 일로 하자”고 서로 동의한 것입니다.
판례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계약의 합의해제 또는 해제계약이란 해제권의 유무를 불문하고 계약당사자 쌍방이 합의에 의하여 기존의 계약의 효력을 소멸시켜 당초부터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던 것과 같은 상태로 복귀시킬 것을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계약으로서, 계약이 합의해제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계약이 성립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계약의 청약과 승낙이라는 서로 대립하는 의사표시가 합치될 것을 그 요건으로 하는바, 이와 같은 합의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쌍방당사자의 표시행위에 나타난 의사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일치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7. 11. 29. 선고 2006다2490,2506 판결)
나. 합의해제가 되면 손해배상은 어떻게 되나요?
합의해제가 인정되면, 원칙적으로 각자 받은 것을 돌려주는 원상회복만 이루어집니다.
즉, 갑은 을에게 받은 계약금 일부를 돌려줘야 하고, 을의 귀책사유로 인한 손해배상은 청구하기 어려워집니다.
판례도 이 점을 명확히 합니다.
“매매계약을 합의해제하는 경우에 이미 지급된 계약금, 중도금의 반환 및 손해배상금에 관하여는 아무런 약정도 하지 아니한 채 매매계약을 해제하기만 하는 것은 우리의 경험칙에 비추어 이례에 속하는 일이다.” (대법원 2007. 11. 29. 선고 2006다2490,2506 판결)
즉, 합의해제를 하면서 손해배상에 관한 별도 약정을 하지 않은 경우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3. 왜 “확인서”가 합의해제로 해석될 수 있나요?
가. 확인서의 내용이 핵심입니다
문서의 명칭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확인서든, 계약해제 통보서든 상관없습니다.
또한 갑이 받은 확인서의 내용이 단순히 “을이 계약을 거부했다는 사실” 만을 기재한 것이라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확인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면 합의해제를 한것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 “쌍방 합의하에 계약을 해제한다”
- “계약을 없던 것으로 한다”
- 갑도 이에 서명하거나 혹은 갑의 요구로 을이 작성한 정황이 있는 경우
나. 묵시적 합의해제도 인정될 수 있습니다
더 조심해야 할 점은 명시적으로 “합의해제”라는 표현이 없어도 묵시적 합의해제가 인정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계약의 합의해제는 묵시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으나, 계약이 묵시적으로 합의해제되었다고 하려면 계약의 성립 후에 당사자 쌍방의 계약실현의사의 결여 또는 포기로 인하여 당사자 쌍방의 계약을 실현하지 아니할 의사가 일치되어야만 한다.” (제주지방법원 2018. 09. 12. 선고 2017나13618 판결)
즉, 확인서의 문구와 작성 경위, 갑의 태도 등을 종합하여 법원이 “갑도 계약을 더 이상 진행할 의사가 없었다”고 판단하면 합의해제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4. 그렇다면 갑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가. 확인서 작성 자체를 피하거나, 내용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확인서를 작성할 때는 반드시 다음 사항을 주의해야 합니다.
*) 아래 내용은 피해야 합니다.
- “쌍방 합의하에 계약을 해제한다”는 표현
- 갑이 계약 해제에 동의한다는 취지의 내용
- 계약금 반환에 관한 약정 (손해배상 청구 포기로 해석될 수 있음)
*) 아래와 같이 기재해야 합니다.
- “을이 일방적으로 계약 체결을 거부하였음을 확인한다”
- “갑은 이에 동의하지 않으며, 을의 채무불이행에 따른 권리를 유보한다”
- “본 확인서는 을의 계약 파기 사실을 증거로 남기기 위한 것이며, 갑의 손해배상청구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나. 내용증명을 활용하세요
확인서 대신, 갑이 을에게 내용증명을 발송하는 방법이 더 안전합니다.
내용증명에는 다음 내용을 담으세요.
- 을이 계약 체결을 거부한 사실
- 갑은 계약 이행 의사가 있음
- 을의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것임
- 일정 기간 내에 계약 이행을 촉구함
이렇게 하면 을의 일방적 파기 사실을 증거로 남기면서도, 합의해제로 해석될 여지를 차단할 수 있습니다.
5. 계약 부당파기 시 손해배상은 어떻게 청구하나요?
가. 계약이 성립한 경우 — 채무불이행 책임
이 사례처럼 계약금 일부가 지급되고 계약 내용(계약금·중도금·잔금·지급일자)이 모두 정해진 경우라면, 정식 계약서 작성 전이라도 계약이 성립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을의 계약 거부는 채무불이행에 해당하고, 갑은 을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부동산 매매계약서에는 “채무불이행과 손해배상” 조항에 “계약금을 손해배상의 기준으로 본다” 는 문구가 있어, 이 경우 계약금 상당액을 손해배상으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나. 계약 교섭 단계에서의 부당파기 — 불법행위 책임
만약 아직 계약이 성립하지 않은 교섭 단계에서 파기된 경우라면,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어느 일방이 교섭단계에서 계약이 확실하게 체결되리라는 정당한 기대 내지 신뢰를 부여하여 상대방이 그 신뢰에 따라 행동하였음에도 상당한 이유 없이 계약의 체결을 거부하여 손해를 입혔다면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계약자유 원칙의 한계를 넘는 위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07. 07. 선고 2020나16494 판결)
다만 이 경우 배상받을 수 있는 손해는 신뢰손해, 즉 계약이 체결될 것을 믿고 지출한 비용(계약 준비비용 등)에 한정됩니다.
부동산 거래에서 상대방이 갑자기 계약을 파기하면 당황스럽고 억울한 마음에 빨리 증거를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확인서 한 장이 오히려 내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하세요.
계약 파기 상황이 발생했다면, 확인서를 작성하기 전에 반드시 법률 전문가와 상담하여 문서의 내용과 표현을 신중하게 검토하시기 바랍니다. 잘못 작성된 확인서 한 장이 수천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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